거미정맥류

 이현주(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혓바닥을 닦을 때마다 역주행하는 기분
 
 포스기 앞에 서있을수록 종아리가 투명해진다
 겨울에는 발가락 끝에서도 심장이 뛴다
 25초마다 한 번씩 거슬러 올라야 하는 일이 불가능해질 때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도 1층엔 도착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쭉 펴 봐도 손끝이 발등을 건드리지 못했던 유연성 검사 종아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나는 손을 뻗는다 뻗어야 한다 사장님에게 자꾸 전화가 온다 그럴 시간 있으면 바닥이나 한 번 더 닦아 나는 씨씨티비에 대고 대답을 한다
 
 카운터 위에 붙어있는 인사 매뉴얼 캐릭터들은 모두 웃고 있고 손님들은 내 유니폼에 적힌 이름에 관심이 없다 손금을 보여줘도 바닥에 떨어지는 동전 소리들 나는 하얀색 실을 뱉어내고 있다 의자가 없는 카운터 안에서 물구나무를 선채로
 
 너처럼 뻣뻣한 애는 없을 거야
 
 더 이상 일렬로 그어진 바코드들을 읽을 수 없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와 심장박동이 비슷하게 느껴지고
 너희는 혈관이 얼마나 얇고 가득한지 본 적 없겠지
 
 혀를 뺄 수 있을 만큼 빼고 구역질을 한다
 이 거미줄은 어디로 뻗어가고 있는 걸까
 아무리 계산을 해도 나의 곡선을 알 수 없다
 
 양치질을 할수록 정교해진다 
 
 
시 부문 당선 소감
 

 

시로부터 태어난 어떤 것
 언젠가 친구에게 "평생 시를 쓸 순 없잖아 너무 슬프지 않아? 뭐하고 살아야 되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시를 썼던 날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겠지." 답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시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후의 삶을 버티기 위해.
 가끔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혹은 내가 너무 시만 쓰면서 살았나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허연 시인의 말처럼 결국 "나의 모든 건 시에서 배운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그 이후의 삶은 시로부터 태어난 어떤 것이리라 믿습니다.
 시와 사랑의 힘을 믿는 스물두 살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른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제가 꽤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더 많이 천진하고 더 많이 성숙해지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이후의 삶에 시가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이 슬픔과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를 발견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삶을 구축하도록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존경하는 선생님들, 언제나 나를 견뎌주는 소중한 친구들. 특히 나와 내 시에 확신을 주는 샘과 명. 그리고 한 치의 의심 없이 사랑하는 준에게. 혐오와 고통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너희 덕분에 땅을 딛고 일어난다.
 저는 여전히 시를 씁니다. 그리고 너무 큰 욕심이 아니라면 평생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후의 삶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 시를.
 
 
시 부문 심사평
 
  수준 높은 어법과 절박한 상상력
 올해 김용문학상 시 부문 응모작에서 감지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한동안 떠들썩했던 활달한 시적 목소리들에 굵은 주름이 잡히면서 시가 탄력을 잃고 있다는 현장을 목격한 기분이다. 그럼에도 정체된 시적 갱신의 힘이 미래의 시인들에 의해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나름의 성과일 것이다. 그렇다고 응모작들이 비수 같은 날렵함으로 우리 시대의 정곡을 돌파하는 중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직 덜 다듬어진 인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인식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형형한 응시의 활력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우려와 기대의 한 가운데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적 동력 쪽으로 한 걸음을 옮겨 디뎠다. 그 결과 「XnX」 외, 「어린이 생존수영」 외, 「두대」외, 「거미정맥류」 외, 「대수학의 공식」 외 등을 일차로 가려 뽑았고, 각각의 시적 개성이 얼마만큼 자기 목소리를 확보하고 있는지 따져 물었다. 「XnX」는 "망가트리는 일에선 으뜸이고/새로 만드는 일에선 선수지"라고 한 것처럼, 일상의 사유와 감각을 강하게 흔들어대는 힘이 있었다. 「어린이 생존수」은 빈틈없이 전개되는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표백"되는 존재를 호명하는 목소리에서 극한까지 밀려간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두대」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공동체적 삶의 현장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품이었다. 재개발 현장이라는 익숙한 시적 공간을 기존과는 다른 버전으로 형상화해내는 힘이 있었다. 「거미정맥류」는 응모작들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중층적으로 구성된 시였다. "역주행하는 기분" "물구나무를 선채로"처럼 일상적 상상의 전복을 도모하는 상상력은 헐거운 곳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대수학의 공」은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어법이 시적 진심을 부각시켰다. 이 시에서 다루는 '대수학'이 자기충족적 세계인 것처럼, 이 시는 화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읽혔다.
 대학생들에게 우리 시의 새로운 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만해지고 둔감해진 세계로 나아가는 시적 걸음을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심사위원들은 기성의 주름이 덜 잡힌 시를 찾는데 오래 고민했고, 마지막까지 「거미정맥류」와 「대수학의 공식」을 앞에 두고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결국은 「거미정맥류」의 정교하고 안정감 있는 시적 세계에 더 끌렸다. 거짓 열정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청춘의 절박한 고뇌가 심각하게 와 닿아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응모작 대부분이 당선권에 근접해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위로와 격려를 함께 전한다.
 
 심사위원: 강연호(시인,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신(시인,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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