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은 6천 년 전쯤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메르인에 의해 만들어진 우르크(Uruk) 문화기입니다. 현대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양태는 언제부터 무엇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이 장구한 역사 속에서 불과 100여 년 동안 이룬 자본주의와 기술적 진보에 의해서입니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닙니다. 20세기 들어 스포츠 스타란 새로운 계층이 생기고, 사람의 몸에 대해 이토록 상품화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문화 비평가 앨리스 캐시모어는 현대인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습니다. 현대인의 삶이 너무 뻔하고(predictable), 지나치게 예의바르며(civil), 너무 안전하다(safe)는 것입니다. 문명화 과정을 통해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며 안전한 환경이 도래했고, 대리만족을 얻어야 하는 현대인은 스포츠에서 쟁취하는 승리와 환호를 찾게 됐다는 겁니다. 
 2019년 하반기부터 발현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한낱 미물인 줄 알았던 병원균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했습니다. 그들을 박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의 연속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올림픽마저 이듬해로 연기했습니다. 물론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합니다. 방사능 이슈로도 꿈쩍하지 않았던 그들이 공생(共生)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참에 우리 모두 자연재해로 인한 인재(방사능)를 막지 못한 인간의 나약함을 깨달으면 어떨까요? 더불어 지구란 생명체가 벌이는 균형 잡기(코로나19)를 우습게 봤던 인간의 탐욕을 인정하고, 온 인류가 환경파괴란 절체절명의 위기를 공감하면 어떨까요? 만약 개최된다면 환경 올림픽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00여 년 동안의 폭주해서 달려온 이 지점, 2500년 전의 철학자인 노자(老子)를 떠올립니다. 바이러스 사태를 보면서 몇 가지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과 상선약수(上善若水)입니다. 천혜의 지구 환경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 같지만, 천지는 인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일부입니다. 또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습니다. 성인처무위지사(聖人處無爲之事)는 어떻습니까? 성인은 무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위(無爲)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나친 목적이나 욕망을 갖고 하는 행위(有爲)를 배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가고자 하는 인위적인 길에서 잠시 멈추고, 반대의 길 혹은 더 나은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개최된다면 소박한 올림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너무 뻔하고, 지나치게 예의바르고, 항상 안전할 것만 같았던 생각을 바꾸게 했습니다. 삶이 뻔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있고, 강대국보다 선도국가에서 기준을 찾고, 언제나 안전한 삶이 될 수 없음을 알게 했습니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에서 벗어난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카이로스적 시간을 놓치지 맙시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지금부터라도 만(滿)을 지양하고, 허(虛)를 지향하는 데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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