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베이 명소 '국립중정기념당' 전경
 코로나19로 인해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과거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행동들이 해서는 안 될 것이 되어 버렸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계획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계획하였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고, 아예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출국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중국역사를 전공하기에, 과거에는 매년 한 두 차례 자료수집을 위해 타이완(臺灣)에 다녀왔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자료수집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크다. 
 1992년 단교 이전까지 우리는 타이완을 자유중국(自由中國), 중국을 중공(中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둘 모두 정식 국호는 아니지만, 자유민주국인 타이완과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을 대비하여 붙인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타이완의 또 다른 이름인 포모사(福爾摩沙)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타이완이 포모사로 불리게 된 것은 이른바 대항해시대인 16세기부터이다. 당시 타이완 부근을 항해하던 포르투갈인들은 초목이 울창한 섬을 멀리서 바라보며 일하 포모사(Ilha Formosa)라 명명하였다. 일하(Ilha)는 포르투갈어로 섬(島), 포모사(Formosa)는 아름답다(美麗)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타이완의 또 다른 이름이 미려도(美麗島)이다. 이후 오랫동안 유럽인들은 타이완을 포모사라 불렀고, 지금도 포모사라는 명칭이 제한적이나마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별칭과는 달리 타이완의 역사는 슬픈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1624년 타이완에 상륙한 네덜란드인들은 네덜란드어로 Tayouan이라 칭하는 곳에 보루(堡壘)를 세우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1662년까지 39년간 타이완 남부지역을 식민지배하였다. 현재 타이난(臺南)의 안핑(安平)에 속하는 Tayouan은 한자로 대원(大員), 대원(臺員) 혹은 대만(臺灣)이라 기록되었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타이완이라는 명칭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네덜란드인의 진출에 맞선 동방무역의 경쟁자 스페인도 1626년 타이완에 진출하였다. 스페인은 1642년 네덜란드 세력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16년간 단수이(淡水)와 지룽(基隆) 등 타이완 북부를 지배하였다. 
 네덜란드의 타이완 식민지배는 1662년 종식되었다. 오늘날까지도 타이완과 중국에서 공히 민족영웅으로 추앙받는 정청공(鄭成功)이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고 타이완에 정씨왕국(鄭氏王國)을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정씨왕국은 20년 만에 와해되고, 타이완은 청(淸)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갑오중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馬關條約)에 따라 타이완을 일본에 할양하였다. 1945년 해방까지 우리는 36년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타이완은 그 보다도 더 오랜, 장장 반세기에 걸쳐 일본의 식민지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네덜란드의 식민지배시기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원래 타이완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은 단 한 차례도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였다. 슬픈 역사를 가진 타이완, 그 섬에서 가장 쓰라리고 아픈 역사를 가진 이들이 흔히 고산족(高山族)이라 불리는 타이완 원주민인 것이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학사일정에  변화가 발생했다. 불과 몇 주의 대면수업 끝에 결국 종강을 앞두고 다시 비대면수업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금년 겨울방학은 어느 해보다도 기나긴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내년 봄 새 학기에는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신 교수(원광대 HK+ 동북아다이멘션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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