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사의 지위와 책임

 흔히 도선사를 항해사의 꽃이라 한다. 도선사라는 직업은 현직 항해사의 최종 목표일 뿐만 아니라 예비 항해사인 학생들에게조차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선사는 해양 전문가이자 선박운항 전문가로서 항계 내의 해상교통 안전과 항만의 효율적인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 인사인 것이다.

 그러나 도선사의 법적 자격요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도선사가 되려면 1급 항해사의 면허를 소지하고 6천 톤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서 5년 이상의 승선경력을 지닌  사람 가운데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에 합격하여 일정한 도선구에서 6개월간 입·출항 선박에 승선하여 200회 이상의 실무수습을 마친 다음, 도선사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 도선사가 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통상 20년 이상인 것이 보통이란다. 이처럼 도선사의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운용하고 있는 것은 도선업무가 국가적으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도선사의 전문 기술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도선사의 민사상 책임과 관련하여 선원 등의 경우와는 달리 도선사의 책임이 제한되어야 할 이론적 근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상 도선사에 대한 직접청구가 배제되고 구상청구도 사실상 배제되고 있지만 이는 선주가 책임보험에 강제 가입되어 있고 국제보상기금이 제2차적인 보상을 피해자에게 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선주에게 책임을 집중시킬 필요에서이다.

 그러나 도선업무의 공익성과 비교법적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영국의 도선법과 같이 도선사의 책임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국 도선법은 선박충돌의 경우 뿐만 아니라 부두와의 접촉이나 오염사고의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하여 강제도선사 개인의 책임을 당해 도선료에 1천 파운드를 합산한 금액으로 제한하고 있다(영국 도선법 제22조 1항). 이에 대하여 도선기구의 책임은 사고 당일 도선기구의 소속 도선사의 수에 1천 파운드를 곱한 금액으로 제한된다(동조 3항).

 도선사의 형사상 책임과 관련하여서는 도선업무의 공익성을 고려한 도선사 보호규정이 마련될 필요가 있으며 도선사의 행정상 책임과 관련하여서는 책임이 경합하는 경우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선사에 대한 이중징계를 금지한 대법원의 판시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 외에 도선사가 부담하여야 하는 민사책임에 대한 담보방안 내지 도선사의 위험을 분산하는 제도로써 도선사배상책임보험과 같은 책임보험제도의 도입도 이제는 고려할 만 하다고 본다. 거기에 도선용 사다리(pilot ladder)에 접근하기까지의 위험을 고려한 개별보험가입도 필요할 것이다.

도선 제도의 개선 방안
 이상의 법제도적 측면 외에 보다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도선제도의 개선방안으로 항해사 등 선박운항자의 인적 과실에 따른 위험상황을 필터링하여 해상교통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기상악화나 시계제한시 원웨이운항방식을 또 혼잡시간대에는 입출항선박순위제를 실시하는 등 항만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국제해사기구(IMO)와 국제항로표지협회(IALA)에서 권장하는 국제인증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국제적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해상관리요원을 확보·양성하는 등 도선사의 자질향상 및 도선시스템 구축과 관제구역 세분화를 통한 정확도 제고, 선진항만에 걸맞는 관제·도선능력의 확충 등 최근 관계부처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해상교통관제 및 도선제도 혁신방안도 적극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선사 제도는 여전히 가장 비용이 절약되는 안전한 시스템이며 선진 도선시스템의 구축은 해상교통의 안전과 해양환경의 보호를 위한 필수적 설비이기 때문이다.

 장장 세 시간 여에 걸친 오랜 인터뷰가 끝났다. 학술적 정리는 물론 필자의 몫이다. 요즘 온 사회와 언론이 바다를 주목하고 있지만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여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선사 이래 까마득한 세월을 온전히 침묵해 오면서 바다는 도도히 쏟아져 흐르는 탁류의 강물에서 한 방울의 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수용하지만 오늘은 그의 불만이 뭍을 건넌대도 할 말이 없을 듯 하다. 뭍사람의 경각이 절실한 시점이다.

나윤수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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