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가 누구인지 몰랐다. 한 선배의 극성스런 칭찬으로 책을 구입하긴 했지만, 낯선 이름의 작가에게 신뢰감이 생기지 않아 한 동안 읽기를 주저하던 터였다. 세계현대문학전집의 작가들, 이른바 공인된 작가들을 읽기에도 시간은 늘 빠듯했다. 그러다가 새벽 늦게까지 통 잠을 못 이루던 지난 겨울에야 나는 카버를 읽어볼 결심을 했다. 일상이 무기력하고, 한편으로는 극도의 초조를 경험하던 때였다.
「이웃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정상적인 빌과 알린 밀러 커플의 이야기다. 교외에 있는 아파트 이웃인 스톤 부부가 맡겨놓고 간 집을 돌보면서 그들은 점점 도착적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몰래, 그리고 점차 대담하게 그들은 스톤 부부의 아파트에 숨어들어가서 그들의 사생활을 엿본다. 술을 훔쳐 마시고, 옷장의 옷을 꺼내 입고, 은밀한 사진을 발견하기도 한다. 욕망이 달아오른 밀러 부부는 스톤 부부의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난 뒤에 실수로 열쇠를 안에 둔 채 문을 잠가버리고 만다. 두 사람은 타락한 낙원에서 추방된 것처럼 복도에 서서,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에 몸을 떤다. 작가 자신이 ‘질병’이라고 칭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위협적 요소들에 대해 우리는 무방비상태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카버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스물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카버의 작품들에 그려진 삶의 모습은 불안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고압전류로 흐르고 있다. 내가 본 그의 소설은 감동적이거나 독자의 뒤통수를 칠 정도의 반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자본주의사회가 불러온 고독과 사랑의 부재라는 테마를 소리없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까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진정한 불행은 외롭다는 데 있지 않고, 외로워할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독이든, 고독의 부재든, 사랑할 시간의 부재든 간에 결국 우리의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낳는다. 카버의 소설에서, 아이들의 개를 몰래 갖다버리는 아버지, 파경을 앞둔 부모를 기쁘게 하려는 철없는 아이, 이웃의 사생활을 엿보며 기쁨을 얻는 부부 등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은 소통불능의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치유 불가능한 마음과 건조한 일상을 대변한다.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는 독자가 있다면 카버의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자신 안의 우울한 회색빛 세계를 찬찬히 응시해보기를 바란다. ‘새벽 세시에 켜는 촛불’이라고 이 글의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강 건 모 (한국어문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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