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상이라는 표현 매체로 삶을 표현하는 영상예술이다. 그러나 영화는 점점 단순하게 산업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물론 이 시대에 영화의 예술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단순한 소모품이나 기분전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영화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탄생 자체가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는 다른 예술처럼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계적 호기심과 사업적 야망에서 비롯되었다. 1893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진을 볼 수 있는 기계인 ‘키네토스코프 (Kinetoscope)’를 만든 에디슨, 1895년 11월 1일 ‘비오스코프 (Bioskop)’라는 영사기를 발명한 스크라다노프스키(Skladanowsky) 형제, 1985년 12월 28일 촬영과 영사기를 겸한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로 파리의 그랑드 카페 지하실에서 최초로 영화를 상영했던 뤼미에르 형제가 일반적으로 영화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화의 탄생은 늘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기록한다. 그 이유는 뤼미에르 형제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영화를 보여주면서 처음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영화를 혼자 보았고, 스크라다노프스키형제는 영화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었지만,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는 25분짜리 영화 관람료로 1프랑을 받았다. 상영 첫 날 100석짜리 객석은 겨우 35석이 찼다. 그도 대부분 그들의 친지나 사진 관련 업자들뿐이었다. 그러나 신문에서 세기의 발명을 대서특필하자 카페 앞은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영화는 움직이는 사진을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주는데서 시작했지 미적추구나 보편적 미의 전달과 같은 예술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또한 영화는 당시 유행하던 무대 버라이어티 쇼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영화는 상업적 요구에 의해 탄생했고 발전하였다.

 영화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영화는 서커스처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상영되었다. 영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미국에서 단 돈 5센트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만들어졌다. 이런 초창기 극장을 ‘니켈오데온(Nickelodeon)’이라고 한다. 이 극장은 아침 8시에서 자정까지 영업을 했고, 15분마다 프로그램과 관객을 교체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약 8천여 명의 관객을 받아들였다. 영화가 발명되고 5년도 채 안되어서 미국에는 약 1만여 개의 니켈오데온 류의 극장이 생겨났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급속하게 대중오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07년 영화는 첫 위기를 맞는다. 늘 같은 식의 영화가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싸구려 영화가 윤리적으로 추잡하고 국민교육에 좋지 않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예술영화 단체(Compagnie des Films d'art)’가 결성되었고, 능력 있는 극작가와 연기자를 영입하여 좀 더 높은 질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영화는 예술이면서 동시에 산업이 된 것이지 단순하게 산업이 된 것이 아니다. 영화가 단지 관객의 넋을 빼는 요지경으로 계속 간다면 머지않아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예술성은 사라지고 산업성만 남아가는 이 시대에 영화 초창기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상 복 (한국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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