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실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변명이지만, 엄밀하게 얘기해서 다양하고 깊은 책읽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항상 스스로에 대한 책읽기의 문제점을 인식하지만, 독서의 양질을 따지는 일에는 부끄러움과 부족한 생각이 동시에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어느 신문 상에서 일본의 독도 망언에 관한 만평을 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 유익하지 못한 책이 있는가, 하는 학생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일본 교과서가 그렇지 못한 책이라며 분개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진 짤막한 내용이었다. 순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역사적인 문제의식도 있었지만 교과서라는 교육적 측면의 교재에서 자행되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서로 다른 과점과 의식의 차이.

 물론 세상에는 그 두 부류와 구분으로만 나누어지는 책도 사람도 없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너일 수도 있고 네가 나일 수도 있는, 그보다 더 다원화된 세계를 우리는 함께 싸우고 화해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의 혐의에 죽을 때까지 연루되었으며 살아가는 동안 부단한 책읽기의 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책을 쓴 작자가 엄청난 독서광임을 알고 있다. 묘한 열등감과 경외심이 생기는 감정의 교차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적이 되는 것,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고, 또 잠시 후에 말하리라.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거기에 쓰여 진다. 인간성도, 진실도. 그런데 내가 곧 이 세계일 때보다도 내가 더 진정하고 더 투명해지는 때란 언제일까?”> 작자는 슬며시 책읽기에서 사람의 진실로 확장되는 의의를 부여한다. 그것은 아마도 삶의 범위와 방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얻는 것이리라. 양질의 책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은 확실히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책은 밥이다’라고 언급한 작자 역시 <일찍이 영혼이 고매하였다면 책 따위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여 욕심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무엇 때문에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가 뻐근해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책을 읽는단 말인가? 책읽기는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며, 많은 기력을 소비하는 일이다.>면서 자신이 겪은 책읽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또한 책읽기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이율배반적으로 제시한다. <나는 여전히 어리석기 때문에 두루 책을 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애써 구한 것은 마음을 다독이며 부지런히 읽는다. 따로 사시는 늙은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며칠 지켜본 뒤 “참, 고단한 삶을 산다”고 탄식했지만 이는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다.>

 책이 중압감을 전해주든 행복을 선사하든, 어떠한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발적인 수고로움을 찾는 존재이다. 문제는 역시, 책을 읽고 사고하며 행동하는 인간이므로. 책에게 돌을 던지는 대신에 책의 끼니도 거르지 말아야겠다.
 

천 명 구 (인문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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