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멜버른에서 머물 때이다. 여러 사람이 집을 함께 나눠 쓰는 형태인 쉐어를 할 때 같은 집에 살았던 애덤, 아침에 일어나서 곧장 주방으로 간다. 주방에서 빵 또는 씨리얼에 과일을 곁들여 먹는다. 식탁 위 바구니에는 그가 사온 과일들이 늘 탐스럽게 놓여있다. 나는 곧잘 그가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 이국적이라고 생각했다.

 낮에는 방에 들어앉아 내내 기타를 연주한다. 수 시간 동안 기타를 치다 출출하면 다시 나온다.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어 먹고 거실에 앉아서 신문이나 TV를 본다. 또는 뒷마당에 가서 기타를 연주한다. 그는 아주 가끔 외출하는데 술집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돈을 벌어온다. 물론 많이 벌지는 못할 것이다. 기타가 그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그의 연주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 그는 기타를 사랑한다.

 가끔 애덤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집에 온다. 둘은 다정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한참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맥주병을 들고 주방, 거실, 뒷마당으로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둑어둑해지면 헤어진다. 음식 한 번도 내게 권한 적이 없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왜 둘이 결혼하지 않느냐는 엉뚱한 생각뿐이다. 애덤의 나이는 삼십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에티켓상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단조로운 하루가 끝나면 일찍 잠자리에 들고 외박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같은 집에 사는 또 다른 아저씨 데미안, 그는 더더욱 하는 일이 없다. 사십대로 추정. 역시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다. 늘 맨발에 머그컵을 들고 다닌다. 방에 주로 머물고 애덤과 달리 그의 주요 활동공간은 앞마당이다. 데미안은 앞마당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사색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은 그의 삶이 궁금해서 그의 사색을 깬 적이 있다. 그는 도시에서 바쁘게 일하다가 몸이 좋지 않아서 8개월 동안 쉬고 있다고 했다. 그도 가끔 이야기 벗이 그립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너와 이야기 나누는 건 재밌지만 너무 피곤해서 방에 들어가서 좀 자야겠어"라며 일어났다. 나는 데미안이 뜬 자리를 물끄러미 내려보면서 그가 도대체 뭘 해서 피곤한 걸까 생각했다. 나도 곧장 들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나와보니 데미안이 또 벤치에 앉아 사색하고 있었다. 외로울 거란 나의 추측과는 달리, 항상 밝게 웃고 여유로와 보이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그가 지금의 삶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 소설 속 캐릭터처럼 이례적인 사람들 말이다. 똑똑하면 어쩔건데? 열심히 일해서 뭐하게? 매일같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하등 질문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 진정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똑똑하지 않아도, 하루에 10시간씩 노동하지 않아도, 매일 늦게 일어나도 잘 사는 그들을 보면서 말이다.

 물론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호주인도 많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분명 사고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어떠한 환경이 인류를 저마다 다르게 살게 하는지 하나만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그들까지 공감할만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앞으로 인간에 대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할지를 깨달았다. 인간의 본질, 모든 창작자의 판도라의 상자다.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굳이 영어로 언어를 통일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김 미 라 (한국어문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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