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2월  (16세)  고대소설에 등장하는 도사(道士) 이야기를 듣고 도사 만나기 위해 22세까지 노력하였으나 대종사의 의문을 해결해 줄 만한 도사는 만나지 못함

1910년 11월 (20세)  대종사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부친이 돌아가시고, 잇따라 집안 형편이 기울어지기 시작

1912년경    (22세)  의문을 풀기 위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라도 망하고, 부친마저돌아가시어 대종사는 절망적인 상태로 떨어짐 이후부터 모든 생각이 ‘이 일을 어찌할 꼬'하는 한 생각으로  통일되어 감

1914년경    (24세)  ‘이 일을 어찌할 꼬' 하는 한 생각마저 잊으신 가운데 깊은 명상의 단계에 들어감

1916년 4월 28일 (26세)  이른 새벽에 ‘큰 깨달음'을 이룸. 깨달음의 경지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읊음

1916년 5월  (26세)  시국에 대한 감상을 ‘최초법어'로 발표함

1916년 8월  (26세)  처음으로 집회를 열어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함  8인의 제자를 얻음

1917년 9월  (27세)  8인 제자와 함께 저축조합 운동을 시작함

1918년 4월  (28세)  8인 제자와 함께 간척지 개척운동에 착수함   

1918년 8월  (28세)  경상도 성주 출신 송규가 대종사에게 귀의하여 9인제자의 한 사람이 됨

1919년 3월  (29세)  간척지 개척운동이 성공하여 약 3만여 평의 농토를 확보함

1919년 11월  (29세)  일본 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전북 변산으로 입산함 변산에서 5년 간 원불교를 펴기 위한 제반 준비작업을 함

1924년 6월  (34세)  현 원불교 중앙총부 자리(익산시 신용동 344-2)에서 ‘불법 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으로 원불교를 창교함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은 1945년까지 사용함

1943년 6월  (53세)  ‘불법연구회'라는 이름으로 가르침을 펴신 지 28년만에 53세의 나이로 열반

1946년 5월  현 원광대학교 전신인 유일학림이 개설

1948년 4월  ‘원불교'라는 교명을 선포하여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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