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호/ 『최순덕 성령 충만기』 /문학과지성사

 ‘비루하고 염치없는 주인공, 교양 없고 막돼먹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눈길이 간다. 복잡다단한 플롯보다는 조금 더 단순한 쪽에 근대보다는 전근대에 소설적 애정이 맞닿아 있다.’(작가의 말)는 소설가의 고백은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의 경향과 성격을 요약해준다. 표제작인 「최순덕 성령 충만기」나 등단작인 「버니」를 비롯하여, 「햄릿 포에버」, 「옆에서 본 저 고백은-告白時代」모두 비루한 현실을 더 비루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의 배후에는 이들보다 더 악랄한 세계가 있고, 이 만만치 않은 세계를 (맞서는 것이 아니라) 견디기 위해서 인물들은 악착같이 ‘위악’으로 포장한다. 이 소설집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들은 시쳇말로 ‘세상이 좆같다’는 걸 안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도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응하기 위해서 보도방을 차리고, 본드를 불고, 앵벌이로 나선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은 제한적이고 결국은 그들은 실패하고 만다. 가해자인줄 알았던 화자들이 모두 결국은 피해자가 되는 이 아이러니는 프로선수들이 이미 접수한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아이러니의 담론’은 이 소설집을 지배하는 내적 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표제작인 「최순덕 성령 충만기」에서도 적용된다. 이 소설은 성령의 계시에 따라 아담(교문 앞, 혹은 학교 담벼락 아래서 여학생들에게 인체의 신비를 알려 주던 추억의 ‘아담’)을 죽자구나 쫓아다녀 결국은 자신의 반쪽으로 맞이하게 되는 ‘덜 떨어진 인물’ 이브 ‘최순덕’의 이야기로 요약된다. 기독교적 이상에 ‘들림’으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의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는 성경의 성스러운 의고체에 담겨 전달되면서 독특한 블랙유머를 자아낸다. 세상의 이치를 조금도 모르는 덜떨어진 여자가 속세에 찌들대로 찌들어 결국 아담(바바리맨)이 되고 만 중년남성과 맺어짐으로써 성령이 충만하게 된다는 이 꼬질꼬질한 로맨스를 읽어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참으로 우습구나 하는 생각 혹은, 아, 나만 이렇게 우스운 인간이 아니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우리 모두는 참으로 우습구나 하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짓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기호 소설의 장기는 이러한 환상의 실패담, 현실에서 밀려난 인간들이 실패한 줄도 모르고 떨떠름하게, 쩔쩔매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데 있는 듯 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그 풍부한 입심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예측가능한 캐릭터와 이분법적인 갈등이 배치되는 가운데, 비교적 단조로운 현실고발성을 드러내는 아쉬움을 남긴다.
 

 강 건 모 (한국어문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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