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라는 표현에 가장 쉽게 떠올려지는 것은 어디 한 곳 붙여 먹을 때 없을 것 같은 매끈한 말투와 그 보다 더 나아가 정으로 엮이지 않는 각박한 사람 사이일 것이다. 요즈음은 서울깍쟁이라는 이 표현이 자주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는 이 깍쟁이 식의 생활방식이 서울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더 보편화되었거나, 그것을 더 이상 깍쟁이라고만 타박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농경문화나 공동체문화의 느낌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 대도시로 이주해 산 경험이 있거나, 아예 우리처럼 나라 전체가 단기간에 도시화가 이루어진 경우에, 우리는 서울깍쟁이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느껴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고향마을에서 방문해 온 친척동생 같이, 꽉 짜여진 도시의 삶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상대, 뭔가 나의 도시화된 삶의 방식에 서운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상대, 도시화된 나로서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무례하게 느껴지는 작은 습관들을 가진 상대가 며칠간 내 집에 머무르거나 할 때, 생활방식의 차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인 서울깍쟁이들도 대도시에 살아온 외국인들에 비하면 아직 공동체문화의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음주문화나 여가문화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끼는데, 우리는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무너져 뒤엉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렬한 음주문화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단기간에 농경문화와 공동체문화를 상실해가는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적인 반응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특성은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한국영화를 보면 유달리 그 주인공의 개인적인 사연, 가족관계나 1차적인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주인공들은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인간적이라는 단어로 칭해지는 신파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서구의 영화나 가까운 일본의 영화만 봐도, 주인공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2차적인 집단, 독일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게젤샤프트 (gesellshaft)의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들은 사랑 이야기를 해도 이러한 사회적 인간관계의 기초 위에서 플롯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들은 주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영화나 드라마의 인물들은 웬만하면 가족 이거나 또래집단의 특성이 강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영화에서 플롯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한국 영화는 장르적이라거나, 형식이 내용보다 눈에 띄는 영화가 많지 않은 이유다. 관객들은 도시의 삶처럼 구조화되고 양식화된 영화의 플롯, 혹은 더 나아가, 헐리우드에서 발전시킨 장르적 특징, 이미 꽉 짜인 양식화된 구조와 약호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 서울깍쟁이한테 인간적인 정이 안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주인공이 농경문화나 공동체문화의 일원처럼 자신의 1차적인 인간관계와 그것에서 파생되는 희노애락을 진하게 나누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한국영화가 캐릭터 중심, 그것도 사연으로 점철된 캐릭터, 갖게 되는 큰 이유중의 한 가지다. 그리고 그들은 걸쭉한 사투리로 말한다. 
 

권 병 철 (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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