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기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구구절절한 너희들의 사연엔 관심 없다는 듯 열차는 떠났고 내 손엔 빛바랜 서울 행 KTX 티켓만이 남았다. 다음 차표를 발권 받을 때쯤 어느덧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의 푸념소리가 서서히 멎었다.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친 사람들은 뿌리치지 못할 아쉬움으로 아직도 선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 역시 인도의 열차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떠난 것에 대한 한없는 미련으로 노심초사하던 날이 많았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전역에 깔린 노선이 아직 그대로 사용될 정도로 도시와 도시간의 이동에서 기차의 이용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빈번한 노선의 교차로 인해 운행되는 열차의 대부분이 연착하기 일쑤여서 관광객들 사이에 악명이 높다. 그곳에선  타임테이블조차 무용지물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시각으로부터 세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지연에 관한 안내방송을 해주지 않고 있다. 까닭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다간 기차에 오르기도 전에 홧병이 먼저 생길 것 같아 용기를 내 아무나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기차가 오지 않나요?” 그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렇게 기차가 늦게 오는데도 당신은 아무렇지 않나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재차 질문하자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no problem! 당신이 기다린다면 틀림없이 기차를 탈 수 있을 것이오”

 애당초 그들에게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도전이었던 셈이다. 결국 시계가 한바퀴 더 돌아 네 시간 째가 되어서야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심심찮게 쥐와 바퀴벌레가 지나다니는 3등석 칸은 현지 서민들과 그들 속에서 부대껴보기를 원하는 몇몇의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열여섯 시간을 내리 달리던 기차는 나처럼 지쳤는지 도착 도시에 가까워져 갈수록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급기야 속도 내기를 포기하고 아예 ‘엔진스톱’을 하여 철로 위에 황망히 정지했다. 사막이나 다를 것 없는 평원 한 복판에 마치 그곳이 종착역인 듯 멈춰버린 것이다.  그렇게 멈춘 기차는 언제 다시 떠나겠다는 한마디 안내방송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시 나를 고문했다.

 기다리는 것에 이력이 났다고 자부했지만 그러기에는 여전히 난 이방인이기만 한 모양이다. 누군가 한마디만 해주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마침 통로를 지나던 승무원에게 물었다. “느닷없이 기차가 멈춘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언제쯤 떠날 예정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무표정하던 승무원은 그런 질문에 익숙하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지금 출발하지 않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있소? 아무것도 없지 않소. 그러니 당신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 세마디 말이 조바심으로 가득 찬 나에게 경종을 울렸다. 기차가 제때 출발하지 않아도, 달리던 기차가 이유 없이 멈춰서도, 그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판기 커피에 손을 데는 사고가 일어나는 곳은 우리나라 뿐 이라고 한다. 그 잠깐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커피를 빼려다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조금 늦는다고 해서, 남보다 빨리 가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조급증을 내며 살고 있는가. 느림의 미학을 발견한 인도의 기차 칸에서 마법 같은 주문을 외운다. No Problem!이라고...
     

   김 옥 남 (한국어문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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