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 천
(인문학부 교수)


선언의 배경과 이득
그렇다면 노무현 참여정부의 균형자론이 어떤 이득이 있다고 판단되었길래 과감하게 이런 선언을 했을까?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04년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여 4개월 동안 정치적 식물인간이 되어 망신을 산 경험이 있길래 이런 쓰라린 망신을 만회하고 여론의 지지를 회복하려는 안간힘을 쓰는 연장선상에 나온 발언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동정과 이해가 갈 것이다.
그 만회의 전략은 독창적인 노무현식 외교적 스타일의 모색에서 찾을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런 외교적 선언은 단기적으로 경제적인 코스트를 전혀 지불하지 않으면서 국민적 자존심을 한껏 고양시키면서 나름대로 국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국민적 지지를 상승시킬 수 있다. 실제로 여론 조사에서는 전문가들은 무모하다고 했지만, 젊은 층으로 갈수록 그 발언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언론이 발표한 대통령의 지지도가 처음으로 50%를 상회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론’ 선언은 국민적 주목을 받았고, 특히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의 문제점
외형적으로 국민적 자존심을 한껏 고양시키는 이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첫 번째 문제점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잘못된 국력 평가에 기초한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전략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한반도는 단순히 강대국이 아니라 과거에 제국적 위상과 영광을 갖었던 경험을 지닌 국가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고 있다. 과거 역사는 중국과 일본이 언제든지 팽창주의를 추구하는 제국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살펴볼 때 미국이 한국을 버렸을 때, 한국은 일제 식민지라는 지옥의 낭떠러지로 떨어졌고 식민지의 질곡으로부터의 해방도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제국을 패망시킨 결과 얻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외교부와 정부관계자들은 한국의 국력을 과소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한다. 특히 한국의 라이벌인 일본과 중국의 국력 성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비교적 관점이 배제된 국력 평가에 기초한 국가전략은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축구와 같은 운동경기의 국제적 성적표를 국력의 바로미터로 착각하는 오도된 풍토가 매스컴의 과잉 보도 경쟁의 와중에서 민족주의 과잉 열풍을 몰아치게 했으며 그 결과 스포츠성적(월드컵 4강)=국력 4강으로 착각하는 착시현상이 광범하게 번지고 말았다.
앞서 지적한대로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타 국가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 군사력의 지표인 국방비를 보면 2005년 기준으로 미국 4천100억달러(2005년 이라크 전쟁 비용 1천50억달러 제외한 액수), 일본 430억달러, 중국 300억달러(비공식 600억달러), 러시아 170억달러, 한국 150억달러, 북한 18억달러(비공식 50억달러)이다. 그러므로 노무현 정부가 중국과의 막대한 교역량에 심취되고 또 중국의 남북한 중계인 역할에 기대가 부풀어서 “이제는 중국이다”라고 외치면서 남북한이 중국과의 동맹을 결성한다 하더라도 미일동맹을 배제한 미국의 독자적 군사력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미국의 불신감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한국의 균형자론이 미국에게 탈미자주화(脫美自主化)노선으로 비칠 것이 분명하다. 미국측 입장 보다는 미국을 견제해야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의 폐기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동북아 지역의 균형자는 미국이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한민족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50년 6월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치뤄진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개입으로 간신히 주권을 지켰으며, 이승만이 결사적으로 반대한 휴전협상의 댓가로 얻은 한미동맹과 주한민군 때문에 그 후 그나마 한국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생존을 유지하고 오늘날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하여 동북아 지역의 균형자로서 지역적 안정을 유지해 왔다. 또한 국제경제질서는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좌우되지만 그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을 경우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힘은 바로 미국의 군사력이다. 
세 번째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균형자 역할로 인해 추구되는 균형외교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정책사안별로 연합함으로써 한반도통일을 위한 전략과 비젼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대내외에 심어주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나 희망을 아예 외면하고 심지어는 북한의 급속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대내외에 선언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대변인 역할을 자원봉사해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노무현의 균형자론이 내포한 치명적 결함은 남북한 분단시대의 현상유지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이고 이것은 분단시대를 현상 유지하겠다는 ‘반(反)통일적 분단고착적’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런 균형자 외교라는 전략적 외교용어를 창안한 핵심센터가 어디인가? 하는 점에 있다. 분명한 것은 외교부의 반기문 장관이나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이런 현란한 외교용어를 창안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반기문 외무부장관은 이미 대통령의 외교교사의 역할을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그는(속마음이야 어떻던 간에) 3월 30일 ‘외교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지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아부성 발언으로 외교계의 화제를 만들어낸 인물이 되었다. 대통령이 스스로 창안했거나 아니면 NSC 내부에서 토의를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가? 대통령이 독일, 터키 순방을 마치고 오는 길에 ‘미국보다 친미적인 사람들이 국내에 있다’고 폭탄발언을 했는데, 그 이후 언론들은 외교통상부의 일부 언론을 지목하였다. 그 발언 이후 반기문 장관은 언론 매체에 나와서 ‘외교부 내에 국익을 해칠만큼 친미파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친미적 성향의 관료들이 포진한 외교부를 제치고 다른 부서와 상의하면서 균형자론을 추진했다는 추론이 성립된다. 한국외교를 실질적으로 책임질 외교부가 새로운 외교의 가이드라인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은 몰론 한걸음 더 나아가 방해세력(친미파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면 과연 이런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수족을 설득시키지 못한 대통령이 어떻게 온 국민들이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하는 균형외교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까? 산너머 첩첩산중이 보일 뿐이다.

연성국력론이 과연 대안인가?
비판에 시달린 참여정부는 소프트 파워 개념의 ‘연성국력론(軟性國力論)’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적 가치관과 정당한 도덕적 권위로부터 나오는 무형의 영향력을 말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도덕성’ 등으로 일·중, 미·중 간 갈등을 중재하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그러나 노무현의 균형자론은 주변 강대국들이 인정하지 않을 때는 외교적 낭패를 당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당장 반발이 있었다. 한국이 핵도 없고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아닌데, 어떻게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비아냥이다. 당장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한국의 외교는 기능 불능상태에 빠져 버린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북한 핵보유에 대해서 아무런 정책대안도 없는 상태이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엄청난 원조와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라는 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또 일본 우익이 미일동맹의 강화를 철썩같이 믿고 행동하는 독도 영유권 도발과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준엄하게 응징할 수 있는 외교적 지렛대가 있는가? 최근 일본의 교과서 파동과 중국내의 반일감정으로 긴장이 고조된 중일대립에 대해서 한국은 어떤 외교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나? 그렇다면 일본 30-40대 아줌마들의 ‘영원한 연인’ 배용준씨가 그의 열광하는 일본 팬들에게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설득하면 일본인들이 ‘하이 소오데스’할 것 같은가?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