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감옥'. 역설적인 이 두 단어의 조합만큼이나 이 책은 매력적이다. 판타지 문학의 대가 미하엘 엔데의 마력은 이 책에서도 충분히 발휘된다. 미하엘 엔데, 하면 판타지 세계부터 떠올린다. 비현실적인 판타지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과 가상은 무엇인지, 그 경계는 어디인지 묻게 된다.

 이 책은 8개의 중단편 소설로 묶여 있다. 이 여덟 개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리는 무한한 판타지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그 중에서도 내게는 「미스라임의 동굴」이 인상적이었다.

 카타콤 같은 지하 동굴에 사는 그림자들의 이야기이다.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굴(GUL)'이라는 약을 주사 받는 그림자들은 그로 인해 기억과 고통을 잊어버린다. 기억을 찾아내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지고, 그들은 현재의 삶에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진실을 밝히면 안 되는 일, 기억을 찾으면 안 되는 일, 그것이 그림자 세계의 감시자(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거짓과 진실이 밝혀진 후 다른 그림자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이브리에게 역시 고통이다. 이브리는 그 주사약이 받지 않는 특이한 체질을 갖고 있는 그림자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게 된 이브리는 모든 그림자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 주사약을 만드는 버섯들을 짓밟아 버린다. 그리고 찾아온 고통,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지하 동굴. 그런데 그게 진실이었을까? 진실이란 것이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마지막에 홀로 빛 속으로 던져진 이브리는 외침과 함께 사라진다. 다른 그림자들은 그 외침이 황홀해서 내지른 기쁨의 탄성인지,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인 절망감 때문에 내 뱉은 탄식이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가 전부인지 생각해 본다. 어쩜 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세계, 3차원이나 4차원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젖어든다. 환상이란 어린이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도 가끔, 현실의 삶이 버거울 때는 환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때로는 그 환상이 현실처럼 느껴져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단지 위안을 주기 위해서 판타지 소설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미하엘 엔데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독, 절망과 냉소들을 판타지 소설을 통해 위로하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시간의 노예, 권력의 노예, 혹은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어떤 철학적 담론보다도 더 심오한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준다.

 판타지의 뿌리는 결국 현실이다. 형식은 판타지이지만 내용은 또 하나의 현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현실에 기초하여 전개된 환상의 세계는 우리에게 단순한 흥미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강 건 모 (한국어문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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