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우리집 안방 한쪽엔 검정과 회색으로 이뤄진 세상이 있었다.
 네개의 다리를 가진 나무집 안에 존재하던 TV라는 그세상을 통해 나는 그의 죽음을 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국화의 더미… 슬픔에 대한 강요였다.
엄청난 국화의 진혼 앞에서 나는 어쩌면 진실로 슬펐으리라.
 그때 그 시절의 그는 거대한 사람이었고, 강한 사람이었고, 혹은 영웅이었다. 그는 영웅이었는가? 그를 떠나보낸 또 다른 그가 영웅이었는가? 여기까지가 부산한 극장 통로를 올라 자리에 앉기까지 내 머리를 스쳐간 상념들이다. 유년의 흐린 기억에 오버랩된 역사적 인물의 죽음과 그것을 영상화 했다는 감독에 대한 한없는 두근거림과 뭔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야릇한 기대감…
 영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저 들었던 이야기들의 들었던 대로의 나열. 내가 이 영화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단하나, 이 푸른 시절에 국가라는 곳이 영화에 시커먼 컷을 하나 삽입 시켜 주신 것이다. 국가의 이 짓거리는 말도 안되는 방종이다. 마약에 쪄들어 은장갑을 여러 차례 끼시던 그 위대한 분의 아들이 이제 정신 차리고서 효도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거 참 우수운 일이다. 또한, 그 놀이에 장단 맞추는 이 나라가 아직도 제 3공화국의 어릿 광대인 듯하여 더욱 우습꽝스럽다. 영화 [화씨 9.11]예를 들고 싶지도 않다.
이런 논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짜증스럽기만 하다. 이 나라에 사는 국민들이 제대로 보여 달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답 아닌가.
 처음 이 영화의 제작이 알려지면서 모두들 폭탄과도 같은 영화가 만들어 질거라 기대를 했었다. 이 영화는 상영금지 가처분이라는 폭탄을 터트렸을 뿐 별다른 파괴력은 없었다. 
 물론,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로 물어보기엔 조금은 범상한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발설했다간 아주 무식한 인간취급 받기도 딱 좋은 영화이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유명하신 언어적으로 아주 잘 발달되신 영화관계자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열심히들 옹호하고 비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블랙 코메디라는 무덤덤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난
물었다 이 영화를 블랙 코메디라 해도 괜찮은 것인가? 백윤식씨가 응가하는 장면을 보고 블랙 코메디라고 하는 것인가? 갑자기 홍모 개그맨이 등장해서,, 그런 것인가? 역사를 다루는 블랙 코메디는 허망하면서도 어느 한 구석 진한 전율감이 전해져야 한다고 본다.
 임상수 감독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그랬을까? 나로서는 이해기가 곤란했다. 부패한 권력의 자화상을 단 하루에 담아 보이겠다는 시도는 임상수 감독다운 신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건에 대한 집요함이 없어 보는 이들은 마냥 지루하기만 하였다. 코메디가 집요해서는 안된다고 보는가! 아니다. 블랙 코메디의 장점은 쉽게 다루는 듯하나 날카롭게 꼬집는 집요함에 있다. 내가 영화를 보는 동안 임상수 감독의 집요함을 놓쳐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 잡지에서 독재자 할아버지와 그 주변부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웃어 주는 세련된 영화라고 '그 때 그 사람들'을 평하고 있었다. 혹시 임상수 감독은 준비없이 저질러 버린 한 인간의 아둔함을 질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권력을 휘둘러대던 그 때 사람들보다 제대로 죽이지 못한 그를 원망하고 있는 듯 하다. 대통령을 쏜 그를 비웃는다 해도 영화는 블랙 코메디다운 힘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제대로 죽이지 못한 그처럼 임상수감독도도 제대로 된 블랙 코메디를 완성하지는 못한 듯하다
 어쨌든 ‘1979 10월 26일 대통령 피격 사건’이후 이 땅은 10년이 넘는 어두운 시절을 다시금 보냈어야 했다.

이 영 (유럽지역어문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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