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는 그들의 격동적인 역사와 참 관계가 깊다. 1919년 천안문의 5·4운동 세대가 1930년대 영화의 황금기를 탄생시켰고 1976년 천안문의 자유화 시위가 4세대와 5세대를, 1989년 천안문 사태가 현재의 6세대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영화 감독들을 세대별로 1세대부터 6세대까지 구분하고 있다. 중국의 세대별 감독들 중 혁명적인 업적을 남긴 그룹이 바로 5세대 감독들이다. 중국영화가 국제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5세대부터이다. 그 포문을 연 장본인이 바로 첸 카이거 감독이다.

 첸 카이거 감독의 데뷔작 <황토지(1984)>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자 세계의 관심은 중국영화로 쏠리게 되었다. 유럽이 ‘새로운 발견’이라 부르며 중국영화를 발견해 낸 것에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할 만큼 중국영화는 인정을 받게 되며 세계영화계가 주시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첸 카이거 감독은 북경영화학교 78학번 출신으로 감독과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만을 신봉하던 기존의 감독들과는 달리 작가주의 영화로 중국 영화를 새롭게 해석해 나갔다.

 영화학교 졸업 후, 3년간의 조감독 생활을 한 그는 어렵게 제작팀을 꾸려 저예산으로 제작한 데뷔작 <황토지>를 만들었다. 1936년 중일 전쟁이 시작한 해, 구전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외딴 마을로 찾아든 팔로군 병사와 가난한 농사꾼 처녀의 이야기다. 강한 색채 이미지와 민요의 배합이 이루어낸 긴장감 속에서 암담한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정신적인 고뇌를 표현한 것에 이 영화는 찬사를 받았다. 이 때 촬영 감독이 영화학교 동기인 장 이모우였다. <황토지>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겼고 그에 따라 국제 영화제에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 했다는 이유로 중국내에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다.
두 번째 작품인 <대열병(1986)>도 몬트리올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대중을 만날 기회는 얻지 못했다. 1988년에는 자신의 자전적 영화인 <아이들의 왕>으로 깐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그는 데뷔작부터 차기 작품들까지 일관되게 문화혁명이 가져 온 변화와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의미심장한 상징구조를 변용한다. 그러므로 그의 영화는 중국 사회주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알레고리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그의 영화는 중국정부와는 끊임없는 마찰을 해야만 했다.

 어쨌든 문화혁명은 5세대의 감독들의 문화적인 정서임은 틀림없고 상당 부분 5세대 감독들도 그것에 집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것이 첸 카이거 감독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렇듯 내부로부터의 강한 압력에 시달리는 그에게 그의 재능을 간파한 해외의 자본들이 지속적으로 러브 콜을 하자 미국에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 온 첸 카이거는 해외 자본으로 전작과는 달리 심도 있는 영상미로 전통과 미학사이의 정교한 접목을 시도한 <현 위의 인생(1992)>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에게 화려한 성공을 안겨준 중국 경극을 소재로 한 <패왕별희(1993)>를 제작했다.

 오리엔탈리즘의 유혹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패왕별희>는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과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영화이력과 중국영화사를 다시 쓰고만다. <패왕별희>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다. <패왕별희> 이후로도 첸 카이거 감독은 <풍월(1996)>, 중국 최대 제작비를 들인 <시황제 암살(1998)>,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만든 <킬링 미 소프트리>, ‘짐 자무쉬’, ‘빔 밴더스’ 등 세계적인 6명의 거장감독과 함께 만든 <텐 미니츠-트럼펫> 등 왕성한 활동으로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는 장동건을 주연으로 한 <무극>을 지휘하고 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한국, 미국, 중국 3개국의 공동 투자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2월 개봉예정으로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질퍽거리는 5세대의 마지막 감독의 몸부림이라고 그의 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었던 하나의 의미를 쉽게 져버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 (유럽문화학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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