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60주년 기념 대학생 기자단 중국항일유적 탐방

  8월 5일, 국가보훈처와 문화일보에서 공동 주최한 '광복 60주년 기념 대학생 기자단 중국항일유적 탐방'에 참가해 중국 북부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위치한 731부대를 찾았다. 광복 60주년 특집을 맞아 731부대 생체실험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본다.

                                                                                                           / 편집자
 
※ 중국대륙의 완전점령을 위한 수단, 생체실험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32년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가 생물 무기를 만들기 위해 계획한 부대이다. 일본 군부는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기획에 있어서 적과의 전쟁에 되도록 적은 물자와 병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만 중국대륙의 완전점령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런 상황은 일본 육군성으로 하여금 특수무기에 의한 중국 내 저항세력의 무력화를 기획케 했고 그 기획의 산물이 바로 세균전에 의한 신속타격이었다.

※ 생체실험의 아픔 - 윤동주 시인까지...
 수천여 명의 병력을 거느린 731부대는 모두 8개 부서로 구성됐다. 1부는 페스트, 콜레라균 등 각종 전염병균에 대한 연구를 중점 실시해 300~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감옥에 수감된 마루타(まるた, 통나무, 일본군들은 생체실험으로 끌려온 병사들을 칭할 때 사용함)들에게 세균실험을 자행했다. 2부가 이들 세균을 사용하는 실행부서였다. 4부인 생산부는 말 그대로 병균과 세균을 대량생산하는 부서였다.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인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731부대에서는 1940년 이후 매년 600명의 마루타들이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최소한 3천여 명의 중국, 러시아, 한국, 몽골인이 희생된 것으로 소련의 일제전범재판 결과 드러났다. 심지어 소수의 미국인까지 실험대상이 된 것으로 최근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또한 소련의 일제전범재판에서 731부대 관계자들은 마루타 감옥이 만들어진 후 살아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특히 독립운동가 윤동주 시인도 생체실험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동아일보(2005년 2월 15일자)에 따르면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에 동참한 의사 다케다 마사카쓰 씨는 "고인이 강제로 맞았던 주사는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실험했던 혈장 대용 생리 식염수였을 것이다"며 "당시 규슈제국대 의학부 의사들이 연구에 가담해 여기 수감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생체실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1945년 8월 9일 일본 육군성은 일본의 패전을 미리 알고 부대 시설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공병대가 긴급히 투입돼 8월 9일부터 13일까지 본부동을 제외한 주요 건물들은 모두 폭파됐다.

※ 생체실험 - 이보다 잔인할 수 없다
 그들은 세균실험, 극한실험, 생체실험 등으로 3천여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산된다.
세균실험으로는 첫째, 페스트균실험으로 항공기로 마을에 페스트균을 뿌리고 진행과정을 조사했다. 둘째, 우물에 콜레라균을 뿌리고 진행과정 조사한 콜레라균 실험이 있다. 셋째, 세균폭탄을 만드는 과정 및 효과에 대한 연구 및 실험한 세균폭탄 실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세균전이실험으로 건강한 사람과 세균에 감염된 사람을 한 곳에 가둬두어 어떤 식으로 세균이 옮아가는지 실험했다.

 극한실험으로는 압력실험인 특수압력실을 만들어 놓고 사람의 각 부위가 얼마만큼의 압력까지 견딜 수 있는지 실험을 했으며, 한겨울에 옷을 벗겨 밖에 묶어 놓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한 동상실험이 있다. 또 독가스에 얼마나 견디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한 독가스실험이 있다.

 생체실험으로는 동상실험인 동상에 걸린 사람의 치료방법 연구가 있는데 이때의 실험은 약을 사용하지 않고 뜨거운 물을 붓거나 불 위에 올려놓는 등의 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화상을 입은 후 치료방법을 연구한 화상실험이 있다. 또 머리를 열어 뇌의 각 부위를 자극해 인체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알아내기 위한 신경실험을 했다. 마지막으로 뇌를 비롯한 인체의 장기에 탄환이 박혔을 때의 반응을 연구한 탄환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 731부대의 일본군, 인육 먹었다는 소문 돌아
 일제말 중국 동북부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생체실험에 사용된 희생자들의 고기를 먹었다는 위안부 출신 피해자의 증언이 나왔다.

 19세 때 함북 함흥에서 ꡐ처녀공출ꡑ로 강제 동원돼 해방 때까지 5년 동안 중국 지린성 인근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던 황금주 할머니(78세, 서울 강서구 둔촌동)는 2004년 2월 11일 연합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황씨는 "해방을 1년 정도 앞두고 군부대 지원이 뚝 끊기더라고요. 식량배급도 안되니까 위안부들뿐만 아니라 일본군인들도 먹을 것을 구하느라 야단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위안소 바깥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서 나갔더니 군인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더라고요"고 말하며 황씨가 직접 먹기까지 한 고기가 사람인 줄은 얼마 뒤 일본군인들이 수군대는 말을 듣고 알았단다. 또한 황씨는 "어느 날부터 갑자기 포대에 싸인 고기들이 트럭에 실려오더라고요. 가뜩이나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이었는데 그 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졌을까요?"라고 반문했다.

※ 일 법원, 731부대 존재 인정. 그러나 국가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아
7월 19일 731부대의 세균실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중국인 유족 180여 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1인당 1천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 소송했으나 도쿄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고등법원은 기각 이유를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배상시행(1947년) 전의 행위에 대해 일본은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생체실험을 당한 희생자는 총 3천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명단은 1천4백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한국인은 겨우 6명의 명단만 밝혀져 있다. 하루빨리 731부대와 관련된 자료들이 공개돼 731부대에서 희생된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이 풀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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