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참회 촉구 … 따뜻한 배려의 손길 필요


 한·일 양국의 다양한 현안문제는 한결같이 근세 일본제국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후소(扶桑)사 일본사교과서 역사왜곡, 그리고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대한 내각총리의 참배 등이 그러하다.  
 따라서 이들 현안은 여러 분야에 걸쳐있고, 또한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어야할 사항이다. 다만 종교의례와 관련해서 보면 문화형성의 배경을 중심으로 하는 문제의 본질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대립과 공방으로는 문제해결이 쉬울것 같지 않다. 그러면 해결의 실마리는 어떻게 마련해야 되며, 일본내의 문화인들,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현안문제는 모두 일제의 침략이 뿌리
 지난 8월 21~22일, 한신대학교에서 「종교와 의례」를 주제로 열린 한일종교연구포럼 주최, 국제학술대회는 이러한 현안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모임이었다. 연구자 19명의 발표와 이에 대한 논평이 있었고, 양국의 역사학·종교학·사회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 150여 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포럼의 심포지움이 10여차례 진행되면서 학문적으로 정착되자, 2001년부터 격년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이번에 제3회를 맞이한 행사였다. 이미 폭넓은 인적교류를 통해 양국의 사정에 정통한 연구자가 다수 배출되었고, 10년이상 정을 나누고 방법론을 상의해온 연구자들은 이미 친구요 동지가 되어 있었다.

 그간에 『한일양국의 근대화와 종교』등 몇편의 학술서적 출판은 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간에 포럼은 「근대체험과 종교」를 이슈로 삼아왔고, 이를 바탕으로 이번 대회에서는 「근대사회와 종교의례」, 「종교의례 조사방법론」, 그리고 「국가와 사망자의례」라는 3개의 분과를 마련하였다. 그 중에서 신사참배문제는 마지막 분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과연 신사참배를 다룬 분과가 가장 활기찼다. 양국의 현안모임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국가간의 공방이 아니라 신사참배와 관련된 국가의례의 본질과 현상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일본측 대표로 참석한 일본종교학회장 도쿄대학 시마조노 교수는 야스쿠니신사문제와 관련하여 『또다른 추도시설은 필요한갱라는 이름으로 각계의 견해를 집성출판해낸 전문가이다. 어떤 이론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그리고 일본인들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본연구자들의 진지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근대국가와 국가신도, 그리고 야스쿠니신사
 그러면 야스쿠니신사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뿌리는 어디에 두어져 있는가? 이를 말해주는 것이 일본의 근대국가 형성과 관련된 국가신도의 성립이다. 한국 등은 조정(朝廷)이 무너지자 종교지도자들이 국가사직을 걱정하면서 민중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데 대하여, 일본은 제국주의 근대국가의 형성이 전제됨으로써 종교지도자들이 국가체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며 조상숭배나 개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해왔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한·중·일 삼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도 개념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타난다. 예컨대 고자와(小澤浩) 교수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내셔널리즘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가리키지만, 일본에서의 그것은 국수주의라는 개념이 전제된다고 본다. 물론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까지의 일본, 혹은 적어도 1884년 청일전쟁 때까지의 일본에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보는 바와같은 '건전'한 민족주의의 씨앗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지유신으로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게는 '국체론(國體論)', 즉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지배하고, 만민이 그에 따라서 번창해 온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국가'라는 독선적인 사상과 함께 내셔널리즘은 곧 국가주의 국수주의라는 도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의 고유정신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야마토고코로(大和心)」를 강조하고 있었다. 국학(國學)을 중심으로한 그들의 시도는 천황이 직접정치와 종교를 지배하고 있던 고대사회를 이상화한 나머지, 종교적인 권위로써의 천황과 그 조상신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여기에서 이른바 복고신도(復古神道)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국가신도(國家神道)이다.

 메이지유신의 주체세력은 신도와 불교를 분리하면서 신교의 자유와 정교의 분리를 주장하는 불교 등을 탄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전개된 국체론은 천황중심주의, 국가주의를 전개했고 여기에서 '국가신도'는 '종교를 초월한 종교'로써 모든 사상과 신앙 위에 군림하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순국 영령으로써 A급 전범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의 창건 역시 이러한 흐름속에 이루어지며, 자연히 국수주의 침략주의적 성격을 띄게 된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인 희생자 2만1천명
 야스쿠니신사가 창건된 것은 1869년의 일이다. 도쿄쇼콘샤(東京招魂社)로 지어져, 1879년 명치천황에 의해 야스쿠니신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제2차세계대전에 패망(1945)한 이후 종교법인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전몰자 246만명의 혼령이 합사(合祀)되어 있다. 전사자를 천황제국가의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2차대전 중에 희생된 한국인 2만1천명(대만출신자는 2만8천명)이 이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야스쿠니신사문제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자 자민당 정부는 1969년 이른바 「야스쿠니신사법안」을 제출하여 그 종교성을 배제하고 내각총리의 감독아래 의식행사 비용을 국비로 충당하려고 하였으나, 부결되었다. 따라서 1985년 나카소네(中曾根) 수상으로부터 시작된 내각총리의 공식참배는 종교적 국가의례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가신도를 통해 제국주의화로 가는 흐름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우려 역시 이로 인한 것이며, 고이즈미(小泉) 내각총리의 참배가 계속된 가운데 오사카시민들이 2001년부터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상징한다.

 그러면 국민의 감정을 선동해온 한국정부는 야스쿠니신사문제, 아니 거기에 합사된 한국인 유해봉환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한류열풍이 한국인과 재일한국인, 그리고 한국제품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는 오늘, 새로운 추도시설과 의례를 고안하는데 대한 정책은 어떤 것인가?
 전사자를 호국신으로 숭배하는 신앙습속 때문에 진퇴양난에 처한 일본인들에게 진정한 반성과 참회를 따뜻하게 촉구할 필요가 있다. 평화생산의 동반자로 나아갈 따뜻한 배려의 손길이 우리국민과 정부에 절실한 때이다.

양 은 용 (한국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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