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은 'Estiquette(나무 말뚝에 붙인 표지: 출입금지)'으로, 옛날 베르사유 궁전 화원 주변에 출입금지라는 뜻으로 말뚝을 박아 출입을 막았다는데서 연유한다.
전시와 공연문화에서 요구되는 에티켓에는 '누구나 휴대전화를 꺼라', '공연시간 보다 10분 먼저 도착하라', '정장을 입어라', '소리 내는 물건을 가져가지 마라' 등등의 견해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과연 휴대전화는 꺼놓고, 남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내지 않으며 훌륭한 차림으로 공연을 관람하면 에티켓을 잘 지킨 것일까? 물론 이런 마음 씀씀이와 배려는 다른 이의 '마음의 화원'을 해치지 않는다는, 예절의 의미를 우리에게 환기시켜준다. 그렇지만 타인의 '마음의 화원'은 단순히 나의 형식적 예절로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에티켓의 첫 출발은 자신이 관람하고자 하는 전시나 공연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작품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느끼려는 적극적인 욕구 없이 표피적인 예의에 머무른 행동으로 에티켓을 다했노라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론적 배경지식이나 주어진 관람 정보를 통해서만 타인의 예술적 작업과 결과물을 이해한다 하는 것 역시 남의 '마음의 화원'을 해치는 것이다. 차가운 가슴에서 작가의 예술행위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참된 감상의 태도를 중요시 하고, '무관심적 관심'이라며 강조했던 것이다. 감상의 대상을 무관심적으로 봐라, 실제적 관심에서 떠나 한껏 그 대상만을 집중해서 강렬하게 바라보라는 주문을 했던 것이다. 그래야 작품을 작가의 마음이 지향하는 예술적 고결성을 상처내지 않고 관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류시화는 인도에서 경험한 한 연주회에 대해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도에서는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청중과 교감이 충분히 이루어 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현을 조율한다는 것과 단지 모포를 두른 인도인들이 운동장에 모여 12시간이라는 그 긴 연주회를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떠오를 때 까지 새처럼 쪼그리고 앉아 듣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에티켓은 예술가의 작품을 잘 듣기위한 진지한 자세 곧 진정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기위한 마음의 조율이 우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