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오르기 교수와 필자

 게오르기 알렉산드로비치 쁘리즈드니코프 교수는 페테르부르그 쁘로프사유즈 인문과학대학의 학장이며 국립 연극예술 아카데미의 교수이기도 하다. 뿌쉬킨스키 돔 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박선영 박사의 주선으로 그를 만났다. 러시아의 원로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인 게오르기 교수에게 러시아의 국가 이상, 러시아 대학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발론스키 쁘라쩨스'는 러시아의 교육 개혁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학은 이 이름의 교육 개혁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다. 이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진행하기 보다는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다. 눈에 띄는 개혁은 대학의 학제를 5년제에서 4년제로 바꾼 것이다.

 세계의 대학들과 학제를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 교육 개혁의 목표를 한 마디로 하면 '유럽화'라고 한다. 그런데 '유럽화'의 내용은 '미국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실용주의로 시장 중심적 개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철학, 역사, 문학, 언어 관련 과목을 줄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인간 중심적 교육과는 거리가 멀게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기초과목 수업도 줄이게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많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개혁이 교육 붕괴 위기를 초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게오르기 교수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르놀트'라는 수학자는 러시아 국회에서 '이런 개혁은 러시아를 멸망시키는 교육을 하자는 것으로 러시아에 반하는 범죄 행위'라고 연설했다고 한다. 또 지난 5월 러시아 교육부 장관이 페테르부르그 과학원에서 교육 개혁의 당위성을 가지고 연설할 때 그 곳의 교수들은 야유하는 의미의 휘파람을 불었고 어떤 사람은 연설도중 퇴장한 사건도 있었다고 전한다.

 게오르기 교수는 말했다. 인문학, 자연과학의 과목들은 35년 쯤 지난 뒤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의 시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단적으로 말하여 택시 운전하는 사람에게 무슨 철학 교육이 필요하겠느냐고 말하는데, 게오르기 교수는 택시 운전 하는 사람도 인간화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만 올바른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강변한다.

 한때 레닌주의 이데올로기 보급에 나섰던 사람들이 인간성의 완성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하는 태도의 변화도 놀라웠지만 시장 중심적 개혁의 문제점을 논하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보는 그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그에게 러시아의 국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라시아'라는 개념에 대해 물었다. 게오르기 교수는 학자들이 2백달러의 급료로는 연구에 전념할 수 없어 회사에 취직하거나 외국으로 떠나는 나라에서 무슨 '이상'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자조 섞인 반문을 한다. 많은 교수들이 돈 때문에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유행하는 풍자를 소개했다. 미국의 대학은 '러시아인 교수들이 중국인 학생들에게 미국 정부를 위한 교육을 하는 곳'이란다. 한바탕 웃고 나서 게오르기 교수는 다시 정중한 설명을 시작했다. '유라시아'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해석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필자가 이해하는 '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지도적인 국가가 되겠다는 패권주의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서 소비에트 종주권을 휘두를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게오르기 교수는 좀 더 겸손한 태도로 말한다. 러시아는 유럽의 일부이기도 하고 아시아의 일부이기도 해야하는 지정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러시아는 유럽의 일부도 아니고 아시아의 일부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러시아가 유럽과 관계할 때 '러시아의 유럽'이 되었고, 아시아와 관계할 때는 '러시아의 아시아'가 된다는 것이다.

 또 미래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소비에트적 패권주의를 부정하고 문화적 다양성의 독자적인 한 부분으로서의 '유라시아'를 설파하려 노력하였지만, 필자가 이해할 때는 '유라시아'를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다른 독립된 문화 주체로 세우려는 러시아의 민족적 자존심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럽도 러시아에 동화되고 아시아도 유럽과 동화되는 러시아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현재의 러시아는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하기에는 경제적 역량도 모자라고 시민적 역량과 도덕적 능력도 모자란 상태에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자기들의 정부에 대해 비웃고 비판하면서도 민족적 이상을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충분히 유념하고 주시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게오르기 교수와 대담한 내용 중 국가 이상과 교육 개혁의 두 가지 주제만을 소개하였다.

 그와 대화하면서 우리나라를 돌아보았다. 통일국가라는 민족적 이상은 기득권자들의 권력 이기주의에 매몰되고, 동아시아 중심국가라는 국가 이상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걸 맞는 교육 개혁은 이뤄 내지 못하면서 입시제도만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경박한 지식인과 정치가들의 놀이판이 되어 버린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러시아와 무엇이 다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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