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면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는 지금 우리 시대의 학문과 사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화두나 이슈를 짚어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방향까지 가늠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고전강좌》는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시대와 문명, 인간과 자신을 이해하고 오늘의 현실을 사유하는 열린 정신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 두 가지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1939년 문장사에서 발간한 『가람시조집』. 한지절지형 인쇄후 실로 4매듭을 꿰매는 전통방식으로 묶었다.
시조 - 한국의 고유 시형
나라마다 그 나름의 독특한 시형을 갖고 있다. 중국은 5언 및 7언 율시와 절구가 있다. 율시는 8행, 절구는 4행이다. 물론 각운을 맞추어야 한다.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5, 7, 5음절을 3행으로 배행하고 계절을 나타내는 ‘키고’(季語)와 구를 매듭짓는 ‘키레지’(切れ字)를 써야한다. 하이쿠 작가를 ‘하이진’(俳人)이라고 부른다.    
이태리풍 ‘소네트’(sonnet)는 4 · 4 · 3 · 3행(行)으로 도합 14행으로 배행하고 앞의 4행과 뒷 4행은 서로 명제와 반명제 관계를 맺는다. 즉 질문 또는 정서적 긴장을 표현하고 abba/abba 형식으로 압운을 맞추어야 하며 그 뒤를 잇는 3. 3 행은 앞의 4 - 4행에서 제시한 문제를 풀거나 질문에 답하거나 또는 긴장을 해소하는 내용으로 써야 한다. 3 - 3행의 압운은 cde/cde나 cdc/cde 또는 cde/dce, 등등 다양하게 쓰인다.
영국풍 소네트는 4 - 4 - 4 - 2행으로 총 14행 배행이다. 4 - 4 - 4 연구의 압운은 abab, cdcd, efef이며 마지막 2연구의 압운은 gg이다.
이런 시를 정형시라고 한다. 정형시(fixed form of verse)는 규칙이 철저하고 특히 배행 질서가 엄격하다. 이에 반해 자유시는 규칙이 없다. 시상(詩想)의 전개가 자유롭다는 뜻이다. 배행 역시 자유롭다.
한국의 고유 시형인 시조는 어떤가. 가람 이병기는 시조를 ‘정’형시(‘整’型詩)로 규정하였다. 노산 이은상은 ‘정형이비정형(定型而非定型)이요 비정형이정형(非定型而定型)’이란 아리송한 말로 정의하였다. ‘정형이라고 할 수도 없고 정형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가람 이병기가 말한 ‘정형’(整型)은 글자수와 음절수에 매이는 중국의 율과 절구나 일본의 하이쿠와 비교할 때 자수율(=음절수)가 조금 자유스럽다는 점을 감안한 정의로 보인다.
 

대개 시조의 기본 정격은 3장 6구12음보이다. 각행의 자수(=음절수)는 초장 : 3·4/ 3·4, 중장 : 3·4/ 3·4, 종장 : 3·5(~8)/4·3)이고 종장 첫 3음절은 고정 불변이다. 시조는 이런 규칙을 섬긴다. 그런데 현대 시조는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배행의 무질서를 문제 삼아야 한다. 그게 세계 앞에 정형시로 자리매김하는 지름길이다. 하이쿠가 5 ·7 · 5 음절로 정형화한데는 ‘바쇼’같은 탁월한 ‘하이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시조는 고시조에서 창이 빠진 자리에 율을 놓아 문학으로 승화 시킨 시형이다. 정지용은 한국인의 정조(情操)를 가장 맛깔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시형이라고 시조를 극찬하였다.
시조는 외국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시형(詩型)이다. 이런 시조가 배행의 무질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시조의 배행이 각양각색이라면 자유시오 다를 것이 없다. 거두절미하고 가람은 3행 배행에 철저하였다. 그의 시론을 살펴보면 종장을 4구로 분행할 수 있는 여지를 보인다. 그런데 실제 시작(詩作) 태도는 종장 역시 1행으로 배행하였다. 이런 가람 이병기의 배행 태도는 오늘의 시조계에 난무하는 배행의 무질서를 매듭짓는 중요한 유산이라고 나는 믿는다. 가람이 시조혁신의 으뜸이라고 추앙하는 목소리는 드높아도 정작 가람의 유산 계승에는 등을 돌리는 현실이다. 새로운 형식 실험으로 튀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시조의 발전은 내용의 혁신으로
시조계 일각에서는 의미, 이미지, 내용 덩어리를 따라 잦은 분행을 능사로 삼는다. 거의 자유시의 행갈이를 따르자는 발상이다. 심지어 시조는 정형시가 아니라는 논지를 펴는 사례도 보인다.
하이쿠, 율 · 구, 소네트처럼 시조는 정형시이다. 3장 6구 12음보가 정형임을 ‘거의’ 인정하면서도 유독 배행의 통일은 뒷전에 두는 현실이다. 서구식 개념에 따르면 가람이 정의한 ‘정’(整)형시는 ‘준 정형시’(quasi-fixed form of verse) 쯤으로 번역될 법하다. 그런 신개념이 성립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가람 이병기와 동시대를 산 노산 이은상은 한때 양장시조, 즉 2행 시조를 실험하였으나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명길은 1행으로 시조가 된다는 취지로 절장시조를 말했으나 주장 뿐이었다. 최근에는 옴니버스시조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이 눈에 띈다. 그러나 모두 실험일 뿐 세를 얻지 못했다.(엇시조 사설시조는 논외로 삼고자 한다) 시조발전은 새로운 형식 실험이 아닌 내용의 혁신에 있다.
김병희 박사가 2009에 한 시조 전문지의 단시조를 분석한 결과 3행, 5행, 6행, 7행, 9행, 10행 등, 배행이 다양함을 밝혔다. 김 준 교수(서울여대)는 “장과 장 사이의 구분을 무시하고 연속해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수(首)의 구별까지도 의식하지 않고 연이어 쓰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하였다.
기본 시형에서 벗어난 지나친 ‘행갈이’(segmentation)를 어찌 수용해야 하는가.  참외와 오이의 구분법은 간단하다. 외양을 보면 안다. 맛(내용)의 차이는 그 다음 이다. 자유시와 시조의 구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미당 서정주같은 자유 시인이 1970년에 한 시조지 창간을 축하한 권두 시조는 오늘의 시조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버려둔 곳 흙 담 쌓고 아궁이도 손보고/동으로 창을 내서 아침 햇빛 오게 하고/우리도 그 빛 사이를 새눈 뜨고 섰나니//해여 해여 머슴 갔다 겨우 풀려 오는 해여/5만 원 쯤 새경 받아 손에 들고 오는 해여/우리들 차마 못 본 곳 그대 살펴 일르소」

가람 시조문학의 의미
이 시조는 “소리와 의미와 운율이 아주 자연스레 흐”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풍격과 메시지가 넘치는 시이다. 그러나 좀 더 주목할 점은 자유시를 썼던 미당이 시조의 3행 배행을 적확하게 지킨 점이다. 
가람은 첫 시조집(『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을 펴면서 장별 배행과 수별 구분을 원칙처럼 충실히 지켰다. 그 점이 오늘의 시조가 이어받아야 할 가람의 유산일 것이다. 임종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시조는 3행이지만 절구의 한시는 4행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시조다움의 형식이 3행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절구의 한시는 시조와 달리 4행으로 구성되어야만 하는 필연이 있다는 말이다.……3행으로서의 시적 논리는 그것이어야만 하는 당위에서 비롯된 것이 시조이고……4행으로서의 시적 논리는 4행이어야만 비로소 절구한시의 형식미가 갖추어짐을 의미한다」

이 말은 시조의 3행 형식이 문학의 예술성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임종찬은 “예술미의 통일성과 전체성, 사회성, 단결성은 오직 형식에 의존하게 된다”는 니콜나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 : 독일의 철학자)의 미학이론으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 했다. 3행을 벗어난 형식 일탈은 곧 시조의 예술미 즉 문학성의 일탈이라는 뜻으로 확대됨직한 논거이다. 앞서 살폈듯 자유시를 썼던 미당 서정주 역시 시조 3행 배행을 지켰다. 시조는 정해진 틀 속에서 자수(음절수)의 자유를 누리는 한국고유의 시형(詩型)이다. 배행은 어찌 됐던 3장 6구 12음보만 가추면 그만일까. 시조는 외형에서 자유시와 금방 비교된다.
서양의 ‘sonneteer’는 정형시인을 뜻 한다. 한국에서 ‘시인’(poet,  poetess)은 자유시인을 뜻하고 ‘시조시인’은 시조 작가를 뜻한다. 서로 구분한다. 자유시와 시조의 가시적 구별 기준은 첫째 외형, 즉 배행의 고정성이다. 앞에서 살폈듯 일본의 하이쿠는 5,7,5음절 3행이다. 중국의 율시는 5언 8행, 7언 8행이다. 절구는 5언 4행, 7언 4행이다. 물론 운이 붙는다. 소네트는 14행이며 각행은 10음절이다. 외국의 정형시가 그러함으로 시조도 그러하자는 뜻이 아니다. 배행문제와 관련하여 가람의 말을 직접 유추해보자.

「시조는 한 체계로서 세 종류, 즉 평/엇/사설시조로 된 것과, 그 어느 것이나 3장, 즉 세 줄거리로 된 것은 3단론법을 기조로 한 명석한 우리 민족의 조리성(條理性)과 미묘 풍부한 우리 언어성을 밝힌 것이다.」

이런 논지에 바탕한 가람은 3행 배행 시조쓰기를 철칙으로 삼았다. 옛시조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문법 체계 확립이 불비했던 시절에 그냥 세로로 내려쓴 노래글로 남아있다. 이런 옛시조가 세 줄거리로 구성된 점에 착안한 3행 배행 원칙은 삼단논법에 의지하여 한국인의 뜻부림(情操)를 맛깔스럽게 갈무리하는 방법이다.
금년은 가람 탄생 120주년의 해이다. 가람을 기리는 일은 가람의 3행 시조는 가르침으로 되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의 시조계가 받들어야할 유산일 것이다.
 박영학 교수(신문방송학과)

<필자소개>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학사 졸업. 성균관 대
학교 신문방송학과 커뮤니케이션론 박사/석사  
-가람시조문학회장
-현재 사회대 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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