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캠퍼스갤러리'코너에서 '변기가 아름다운가, 비너스가 아름다운가'란 제목의 글을 쓰면서, 누드 여성이미지의 그림에 '비너스'란 제목을 붙여온 오랜 역사적 풍습에 대해 언급했었다.

 우리는 미술관이든 문헌에서 많은 여성누드에 '비너스'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을 보고, '아 비너스 여신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보기로 한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그리스 이름은 아프로디테)는 서양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예술의 주요 개념 중 하나가 미(美)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미술의 역사에서 미의 개념이나 비너스라는 소재는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다. 고대 유럽에서 비너스는 정말 살아있는 여신으로 믿어졌고, 이상적인 미를 대변했다. 신전과 도시 곳곳에서 비너스 누드상이 자연스럽게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고대 이후 회화나 조각에 표현된 비너스는 상당히 의미가 다르다.

 기독교의 엄격한 금욕주의와 도덕주의가 강조되던 중세 때는 물질이나 육체를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것으로 보았다. 당연히 미술작품의 주요 고객이었던 종교, 정치 지도자들은 누드미술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인문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여성누드 작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었고, 미술가들 역시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원했다. 문제는 여성누드의 묘사는, 여전히 풍기문란과 부도덕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작가와 고객은 누드작품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았고, 누드를 '성(sex)'이 아니라 신화와 문학, 미의 상징이라는 고상한 말로 '포장'할 방법으로 많은 여성누드에 '비너스'라는 제목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비너스'로 불려진 상당수의 여성누드작품의 모델은 실제로는 윤락여성이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활동했던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는 우르비노 공국의 기도 2세가 소유했던 그림이다. 유럽미술사에서 여성 누드를 가장 잘 표현한 대가로 불리는 티치아노의 누드모델은 흔히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베네치아의 커티전(courtezan, 고급 윤락여성)들이었다.

 국내에서 케이블 TV에서도 종종 상영되는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원제 Dangerous Beauty>이란 영화는 16세기 베네치아에 생존했던 유명한 커티전을 근거로 만든 것이어서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티치아노가 그린 여성은 소위 '전형적인 비너스 포즈'로 명명된 에로틱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녀는 '티치아노의 머리카락(Titian hair)'이라는 영어 숙어의 기원이 된 불타는 듯 약간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을 하고 있다. 한 손에 꽃송이를 들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이 비너스의 오른쪽 발치에는, 윤락여성을 모델로 했음에도 아이러니컬하게 '결혼에 대한 충실함'을 상징하는 강아지가 누워있다.

 또 다른 그림인 마네의 '올랭피아'(1863)는 티치아노의 비너스를 재해석한 그림으로 19세기 후반에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모더니즘의 도래와 어울리게 마네는 이전까지 지속돼 온 미술의 '포장'과 '가식'들을 벗어 던졌다.

 윤락여성을 그리고 '비너스'로 명명하는 대신, 실제 파리에서 누구나 알아보던 유명한 매춘여성을 모델로 삼았고, 대담하게 관객을 마주보게 함으로써 전통사회의 위선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조 은 영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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