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걸 교수의 강연으로 시작된 '제43회 세계고전강좌'

 마이클 슈나이더가 쓴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과 마이클 길렌이 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수학』및 퍼지 이론을 통하여 수학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 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은 태어나 살아가면서 한번쯤 실체(reality)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할 때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체로 두 가지 주장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은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자연과정의 임의적인 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은 절대적인 창조자가 만들었으며 그는 지금도 세상의 진행과정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믿는 주장이다. 앞 것은 실체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고 뒤 것은 이 세상에 실체가 있고 세상은 조화롭고 그 실체(신)가 부여한 질서를 지닌 창조물임을 믿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물체들, 즉 고양이와 사자 등의 동물들, 장미와 벚나무 등의 식물들이 각각 무수히 많은 듯하지만, 그 각각은 분명히 그 만들어진 한 형태(이것을 원형이라 말함)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원형을 가진 무수한 산물이 있다. 이것은 곧 하나인 것(the One)이 많은 것(the Many) 이라는 철학적 내지종교적 문제를 낳았다. 하나인 것과 많은 것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많은 것의 특성 :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변하고 창조되고, 태어나고 죽으며, 유한하고 비실재적이다.
 

● 하나인 것의 특성 :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일정하고 창조적이고, 태어남과 죽음이 없으며, 영원하고 실재적이다. 오직 하나인 것은 그 산물인 많은 것에 미친 영향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실체를 찾는 작업은 많은 것의 세계 뒤에 숨어 있는 원형인 하나인 것을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제,『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수학』에 소개된 무(無, nothing)와 무(無)의 상태(nothingness)의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학의 수론이라는 분야에서 무의 뜻은 그림 그리기 직전에 아직 손대지 않은 화폭이나 글을 쓰기 직전의 한장의 백지와도 같은 잠재적 존재, 즉 아이를 낳기 이전의 여자의 자궁이며 우주창조 순간 바로 직전의 공(空) 존재인 분별없는 진공상태(眞空狀態) 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창조 직전의 공(空) 존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도 베단타철학의 불이론(不二論, Adavaita )자인 샹카라에 의하면, 무의 상태는 속성을 가진 신에, 무는 속성이 없는 신에 해당한다.
 

 19세기 독일의 수학자인 프레게는 무를 원소가 없는 집합({0}로 표시함)인 공집합을 사용하여 나타냈는데, 이것은 창조의 순간 바로 직전의 상태로 수들이 나열되기 직전의 잠재상태를 나타낸다.


 한편, 무의 상태는 0을 원소로 갖는 집합 {0}으로 나타낸다. 즉 무의 상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인가 들어 있는 상태이다. {0}은 공집합의 잠재적 상태를 구현한 것으로,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첫 번째 자연수인 1이다. 이와 같이 그는 무에서 자연수를 창조하였다.
 

 영국의 수학자인 콘웨이 역시 프레게와 마찬가지로 무인 공집합에서 출발하여 무의 상태인 1을 만들고 이로부터 모든 정수 및 유리수와 무리수를 만들어 수론체계를 이루었다. 그는 무를 나타내기 위하여 공집합(空集合)을{ }: { }로 나타내고 이것을 숫자의 0 으로 썼습니다. 그는 다음 수 1을{0}:{ }로 나타냈는데,{ }: {}의 왼쪽 빈 곳에 현실화된 잠재적 상태가 오른쪽은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잠재적 상태가 자리 잡도록 한 것이다. 그는 공집합의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뿐만 아니라 인간의식의 잠재적 가능성도 무한함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무의 뜻과 상징 : { }와 { }:{ }은 같은 무 로 나타내고 수 0 으로 상징한다. 또한 뒤에서 언급하는 모나드 와도 같다. 그러므로 { },{ }:{ }, 수 0 , 모나드 는 모두 무 즉 공(空) 또는 진공(眞空)이며, 우주의 원리 ○ 이자 법신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무의 상태의 뜻과 상징 :{0}와 {0}:{ }은 같은 무의 상태 를 나타내고 수 1 로 상징한다. 또한 뒤에서 언급하는 디아드 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0}, {0}:{ }, 수 1 , 디아드 는 모두 묘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콘웨이가 제안한 {0}:{ } 는 진공 묘유를 함축한다고 여겨진다. {0,1} 또는 {0,1} : { }은 묘유 즉 화신불 다음의 보신불이라 생각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둘째, 우주의 실체, 즉 원형들을 수학은 어떻게 해석했고, 해석하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마이클 슈나이더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에서 1에서 10까지를 모나드(Monad), 디아(Dyad), 트리아드(Triad), … 등의 그리스어 수를 통하여, 우주의 성질과 원리가 펼쳐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여기에서는 1과 2에 대한 그의 해석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모나드(Monad) : 원에는 세계의(그리고 우리 자신의) 깊은 완전성과 통일성, 뛰어난 디자인, 전체성, 그리고 신성한 자연이 투영되어 있다. 고대의 수학적 철학자들은 1이라는 수를 원으로 상징했다. 그들은 원이 그 다음에 잇따르는 모든 모양의 원천, 즉 모든 기하학적 패턴이 만들어져 나오는 자궁으로 믿었다.
 

 원은 우주의 초월적 본성을 말해주는 심오한 진술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차원의 중심으로부터 무한히 많은 원주위의 점들로 팽창해가는 원은 무에서 만물이 생겨난 신비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원은 하나의 몸속에서 유한과 무한을 나타낸다.
 

 "1" 이라는 값은 모든 수의 부모이기 때문에 원은 모든 모양의 부모이다. 이것에 뒤따르는 모든 모양과 패턴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모나드 안에 그려 넣을 수 있다. 세계를 유니버스(universe, 라틴어로 한 바퀴 라는 뜻)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이 하나의 우주를 플라톤은 "전체 중의 전체" 라고 불렀다.
 

 점은 전체 중의 전체의 근원이자 원의 본질이다. 그것은 이해의 경지를 넘어서는 알 수 없는 대상이며,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향해 접혀 있다. 그러나 점은 마치 씨앗처럼 팽창해나가 원으로 자신을 완성한다.
 

 디아드(Dyad) :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2" 또는 다른 것 의 원리를 디아드(Dyad)라 불렀다. 그
들은 신성한 모나드로부터 스스로 떨어져나가 통일성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2를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디아드가 원래의 전체성으로부터 분리해 나오는 성질을 대단함이라 불렀고, 원래의 통일성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불가피한 갈망의 속성을 고뇌라 불렀다. '고뇌' 는 '번민' , '모자람' , '거짓' , '착각'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반영되어 있다.
 

 디아드의 원리는 양극성(polarity)이다. 양극 사이의 긴장은 서로 반대되는 관계나 대조나 차이의 형태로 모든 자연사와 인간사에서 생긴다. 양극 사이의 긴장은 모든 탄생과 창조의 뿌리에 있다. 예로써, 성(性)이 서로 반대인 두 사람이 만나야 아이가 태어나고,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따뜻하고 습기 찬 공기가 만나야 비가 내리며, 날실과 씨실이 만나는 곳에서 천이 짜인다.
 

 사람의 본성은 외부의 속성을 반사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본질에는 반대극 사이의 원형적 긴장이 있다. 예로써, 양극성은 사랑과 증오, 책임과 비난, 강함과 부드러움 등 우리의 언어 속에 깊이 젖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아드는 모든 창조과정의 기초를 이루며, 그것은 하나인 것과 많은 것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마지막으로 퍼지이론을 소개한다. 기존의 수학이론이 참과 거짓(참인 명제에 대하여 값 1을 주고, 거짓 명제에 값 0을 줌)에 바탕 한다면, 퍼지이론은 0에서부터 1까지의 값을 취할 수 있는 기존의 수학이론의 일반화로 간주할 수 있다. 예로써, '미인' , '빨간 사과' , '옛날' 등과 같은 것은 기존의 수학이론 입장에서는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퍼지이론 입장에서는 '각각 0에서부터 1까지의 값' 을 줌으로써 연구의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다. 그러므로 퍼지이론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의 많은 현상(산물)들을 하나인 것 의 현현으로 탐구함으로서 실체인 하나인 것 의 특성, 속성 등을 찾아가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수학을 크게 해석학, 대수학, 위상수학, 통계학 등으로 분류하는데, 얼핏 보기에 이들 분야들이 각각 정량적인 관점에서만 연구하는 것처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수학은 우주라는 '하나인 것'의 현현한 모습인 많은 것을 통하여 그 하나인 우주를 찾아가는 학문 중의 한 분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쓰기센터가 주최한 2012학년도 1학기 제43회 세계고전강좌 의 뜨거운 열기

허걸 명예교수 (수학정보통계학부)
 

<필자소개>
연세대학교(1969.03~1972.12), 전북대 대학원, 연세대 대학원 수학과 졸업
원광대학교(2007.01~2009.02, 원불교학 박사과정 수료)
원광대학교 교수(1981.09~1995.05), 교수협의회회장 역임
국제학술지 AFMI의 공동 편집위원장(2011.01~현재)
한국지능시스템학회 자문위원(2012.01~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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