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견과 정당화의 맥락

글쓰기 초심자가 쓰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도 주저하는 이유는 표현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메모하기와 주제 찾기를 ‘요리과정’으로 비유하면 ‘장보기’와 ‘재료 다듬기’다. 능숙한 글쓰기 요리사는 적당한 도구를 선택해 삶고, 볶는 일련의 과정을 실행한다. 그는 감정의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조리 기구(글쓰기 방법)를 사용해 재료를 변화시킨다. 인상적인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많이 먹고(多讀), 실습하며(多作), 고민(多商量)해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요리사는 탄생한다.(특유의 감을 잡는다)

글쓰기에도 감(感)이 있다. 맥락(context)이다. 맥락은 재료(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채소의 신선도 유지, 생선과 육류의 냄새 잡는 법 같은 것이다. 맥락이 요리에 스며들 때 재료는 고유의 맛으로 어우러진다. 좋은 요리는 재료들의 ‘대화’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현대사회의 의사소통은 대화의 상대가 환경과 관점을 공유할 때 원활해진다.

 

▲ 맥락을 이해하면 의사소통이 쉬워진다

‘문 닫고 들어오세요.’처럼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으나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있다. 오해의 소지가 ‘대화의 전․후’를 통해 해소되는 것이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문장도 ‘무엇을 위해 그것(말, 행위)을 했는가?’를 이해하면 알 수 있다. 즉 맥락은 ‘결과’ 보다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여우를 초대하여 긴 호리병에 음식을 차린 두루미처럼 일방적 의사소통은 오해를 부른다.(우리는 굶주린 여우의 다음 행동을 알고 있다.) 맥락은 해석 전에 소통 된다.

문맥은 문장의 맥락이다. 말하기와 달리 글쓰기는 정확한 어휘 사용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요리사는 재료 다듬기부터 배웠다. 요리(글쓰기)의 시작이 재료(어휘)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재료는 특성에 따라 다루는 법이 달라지듯 비슷해 보이는 어휘도 쓰임이 다르다. 자주 혼동되는 어휘 중 ‘귀지/귓밥’이 있다. 귓밥은 ‘귓바퀴의 아래쪽으로 늘어진 살’이다. 다른 말로 ‘귓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귀지를 귓밥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건전지 바꿔라"를 "시계밥 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밥’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활론적 세계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은 맥락이 작용하기 때문. 그러나 글쓰기에선 어림없다.

 

▲ 문맥에 맞는 어휘를 고르자

선거가 끝났다.(아직 한 번의 기회는 남았다) 학내 구조조정 문제도 출구 전략을 고민할 때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밤새우며(‘밤새다’가 아닌 ‘밤을 새우다’가 맞는 말) 속을 썩였다.(음식이나 재능은 ‘썩히다’, 속-마음과 골머리는 ‘썩이다’) 하버마스가 주장한 실질적 합리성에 근거한 ‘맥락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선택이 전화위복이 될 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돈을 내주다’, ‘겪다’는 ‘치르다’이다. 과거형도 ‘치뤘다’가 아니라 ‘치렀다’이다)한다는 걸 안다. 십자가에 예수를 매달았던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다수당의 횡포를 견뎌야 했던 지난 4년이 그러했듯이, 반백년 우리 학교의 역사에 또 다른 백년 후를 상상해야 한다.

 

박태건(글쓰기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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