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페르센: 그는 누구인가?
 예스페르센(Otto Jespersen 1860-1943)은 영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덴마크 인으로 자신이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하지 않았으면서도 영미인보다도 훨씬 뛰어난 영어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영어의 발음, 역사, 문장구조, 영어교육 등 영어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학문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오면서 생애를 끝마칠 때까지 실로 방대한 학문적인 업적을 생산해 낸 진정한 의미의 학자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우리가 예스페르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그가 자서전에서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개인적, 학문적인 생애를 이해하는 일이다. 둘째, 그가 생애의 한 길목에서 방향을 틀어 언어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가 쓴 자서전에는 이러한 그의 심정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폭넓고 다양한 언어들을 접하고 연구하면서 언어세계에 빠져 들어 해박하고 폭넓은 소양을 쌓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던 시대를 뛰어넘어 언어에 대한 그의 사상과 문법철학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가 활동하던 시대의 언어사상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가 살던 19-20세기는 흔히 말하는 역사비교언어학연구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예스페르센은 언어연구에 역사의 개념을 불어 넣으려고 애썼고 추상적인 언어연구가 아닌 구체적이고 입증 가능한 자료에 근거하여 그의 언어관 내지 문법관을 확립해 나가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자료 분석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이 시기에 그는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문법철학을 확립하고 문법의 원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가 쓴 많은 저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예스페르센의 생애와 저술
 예스페르센은 1860년 7월 16일 덴마크 유틀랜드 반도 동북부의 소도시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지방 판사였고 모친은 목사의 딸로 우리에게는 동화작가인 안데르센으로 알려진 사람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고 덴마크어 문법을 쓰기도 한 분이었다. 예스페르센의 치밀한 논리적 사고나 어학적인 소질의 대부분은 이러한 양친으로부터 각각 이어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1877년 코펜하겐대학에 입학한 그는 조부와 부친의 뒤를 이어 법률가가 되려고 4년간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나, 1881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과에서 언어학과로 옮기게 된다. 그는 언어학으로 전향한 후 프랑스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로만스어에 한층 정열을 쏟았다. 로만스어를 비롯한 인구어에 대한 그의 해박하고 폭넓은 소양은 그의 언어관 내지 문법관이 집약된 『문법철학』(이하 PG로 약칭)에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10여 개가 넘는 언어들을 문법적으로 분석한 것도 PG가 가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예스페르센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여러 사람 중에는 코펜하겐대학의 비교언어학교수로 대학시절 그의 은사였던 빌헬름 톰센교수가 있었다. 톰센 교수는 예스페르센에게 영어학을 연구하도록 권한 분이었다. 예스페르센이 로만스어 특히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관심을 돌린 것은 톰센 교수의 영향이 컸다. 예스페르센은 1886년 이래 외국어교수법에 관심을 가져 왔는데, 그가 제창한 직접교수방법에 의한 교수법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1893년 톰센의 추천으로 덴마크 인으로서는 최초로 코펜하겐대학의 영어영문학 교수가 되었고 다음 해 『언어의 진보』(1894)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언어의 발달에 관한 여러 학설을 소개, 비판한 후 언어변화의 일반적인 경향은 진보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언어변화에 대한 그의 진화론적 입장은 『언어』(1922)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언어 전반에 대한 연구를 깊게 하는 한편, 개별언어에도 관심을 기울여 후일 불후의 명저가 된 『영어의 성장과 구조』(1905) 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은 오늘날 영어학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예스페르센은 1920-1921년까지 1년간 코펜하겐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여 덴마크의 교육개혁에도 힘썼다. 1925년 정년 퇴임이후 1938년에 자서전을 낼 때까지 연구와 저술을 계속하던 예스페르센은 1943년 4월 (30일) 83세의 나이로 긴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예스페르센은 생전에 음성학, 영어교수법, 언어학, 영문법, 영어사 등, 영어학 전 분야에 걸쳐 길이 남을 명저(名著)를 많이 남겼는데, 이 중에서 영어에 관련된 저술 몇 가지만 소개하면 『근대영문법대계 7권』(1909-1949), 『외국어교수법』((1901, 1914), 『문법철학』(1924) 이외에 『영어의 성장과 구조』(1905), 『언어:발달과 기원』(1921), 『인류, 국가 및 개인』(1925), 『영문법정수』(1933), 『문법체계』(1933), 『분석통사론(1937)』, 『언어변화의 효율성』(1941) 등이 있다.

 예스페르센의 언어관·문법관
  예스페르센이 언어에 대해 지닌 기본적인 언어관은 첫째, 언어는 진보한다. 둘째, 의미도 문법분석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 언어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이다. 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언어』(1922)에서 예스페르센은 인간의 언어는 그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에서 현대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진보적 과정을 거쳐 왔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언어에 변화가 일어날 때 항상 진보적인 변화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볼 때에는 진보적임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언어를 완전히 기술하기 위해서는 형태와 의미가 하나의 동일한 현상이 갖는 두 가지의 면모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외적형태(O)의 기술로부터 시작하여 이러한 형태의 내적 의미(I)를 검토해야 하며(O→I), 또한 내적인 의미로부터 시작하여 그 의미를 나타내는 외적 형태를 연구하여야 한다(O→I)고 주장하고 전자의 접근방법을 형태론, 후자의 접근방법을 통사론으로 구별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언어를 사회적 활동으로 본 그의 언어관이다. 그는 슐라이허(Schleicher)의 언어유기체설이나 소쉬르의 'parole-langue'라는 양분설을 반대하고 언어를 '의도를 가진 활동'(『언어』(1922), 언어는 본질적으로 '인간 활동'(PG, 1924), 또는 '사회적 활동'(『언어변화의 효율성』(1937)이라고 하여 언어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언어가 생성소멸의 과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슐라이허가 언어를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물체라고 주장한 데 대하여 예스페르센은 언어는 이러한 생물체와는 달리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 수행하는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슐라이허의 언어유기체설을 일축하였다.
 예스페르센의 언어관 내지 문법관이 집약된『문법철학』(1924)에는 그의 언어관 내지 문법의 원리에 근거하여 문법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의도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예스페르센의 문법이론 중 대표적인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품사론(word class)', '위계설(three ranks)', 그리고 '수식-주술관계설(junction-nexus)'을 들 수 있다. 서구문법의 품사분류의 역사는 희랍문법에까지 소급해 올라가면 2천년이 넘는다. 예스페르센은 부사,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의 공통점을 부각시켜 이들을 '불변화사'라 하여 하나의 품사로 묶어 분류하여 낱말의 품사를 실사, 형용사, 대명사, 동사, 불변화사 등 5품사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품사분류는 전적으로 논리적인 것만은 아니고 문법적인 것이어서 언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위계설이란 'extremely hot weather'와 같은 표현에서 다른 낱말을 수식하지 않은 'weather'는 1위어(primary), 1위어를 수식하는 'hot'과 같은 낱말을 2위어(secondary), 그리고 2위어를 수식하는 'extremely'와 같은 낱말을 3위어(tertiary)라 하여 낱말을 다른 낱말과의 관계로써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예스페르센은 3위어 이상의 위계어를 설정하는 것은 문법적으로 필요치 않다고 보았다. 한편, 그는 이러한 위계관계에 따라 수식관계 표현(junction)과 서술관계 표현(nexus)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전자는 하나의 그림에, 후자는 하나의 과정 또는 드라마에 비유하였다. 이를테면 스위트(H. Sweet)가 'I like quiet boys.'와 달리 'I like boys to be quiet.'에서 소년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경우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것을 예스페르센은 'quiet boys'는 전자에 해당하고 'boys to be quiet'는 후자의 관계라고 분류함으로써 그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언어가 진보하는가 아니면 퇴보하는가의 문제와 예스페르센이 언어학자인가 또는 영어학자인가라는 문제는 오늘날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자의 경우 언어변화의 방향을 퇴화하는 것으로 본 초기 인구어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예스페르센은 복잡한 굴절형태의 소멸은 언어의 퇴화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현상으로 보았다. 후자 즉, 언어학자/영어학의 문제에 있어서 필자의 생각은 양쪽 모두라고 하겠으나 굳이 한 쪽을 택하라면 영어학자를 택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박영배 교수(국민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및 동 대학원졸업
·국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국영어사학회장, 한국중세르네상스영문학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장 역임
·저서 : 『영어사』(한국문화사 1998, 2000, 2010), 『앵글로색슨족의 역서와 언어』(지식산업사 2001), 『고대영어문법』(한국문화사 1997), 『영어사 연구의 방법과 응용』(한국문화사 2009), 『영어 어휘 변천사 연구』(한국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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