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위기와 자연의 부활

생명 의 경제: 현재의 자원과 미래의 자연삶의 진정한 가치와 생명 자본 현대인들은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는 진보 의 덫에 걸려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는 진보 이데올로기의 양축을 이룬다. 과학과 기술을 믿는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본주의를 믿는 한 우리는 역사가 진보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영원한 복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자유시장의 이데올로기에 금이 간 것이다. 유전공학과 지구온난화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에 물음표를 던졌다면, 현재진행형인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한다. 인류는 계속 발전할 것인가? 우리에게 진정한 발전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면, 삶의 진정한 가치에 기반을 둔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어쩌면 삶의 새로운 기회이기보다는 파국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위기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결과로부터 초래되었기에 문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이 본래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 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의 위기는 우리에게 다시 생명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날 중세 시대의 사람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세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현실 시각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만약 1300년 경 어떤 사람이 교회의 구원약속이 위선이고, 천동설이 허무맹랑한 거짓이며, 귀족제 도는 사회적 과오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결코 어떤 사람의 동의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거짓으로 입증된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믿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본주의만이 우리에게 행복과 복지를 가져다 줄 것 이라는 거짓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계몽시대의 근대인이 신에 대한 인식을 포기하고 실질적인 인간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을 느끼는 구체적인 인간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지구온난화로 신음하는 지구의 모습, 매일매일 사라져 가는수백의 다양한 생물 종(種)들, 자본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심화되는 빈곤과 양극화, 선진국에 만연하는 불만과 복지 병들이 선명한 목소리로 말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자본의 위기는 자연의 한계를 일깨워주고 있으며,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자연의 가치를 인정하는 새로운 경제 를 발전시켜야 한다.
자본주의가 자연에 대한 무제한적 착취로 가능하였다면, 새로운 경제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토대로 해야 한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포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시장경제가 자연에 이로울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녹색 테크놀로지가 말해주는 것처럼 햇빛, 물, 바람으로 느껴지는 자연이 지속적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어떤 경제도 불가능하다. 자연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인간을 더욱 만족시키는 새로운 경제를 우리는 생태학적 경제 (ecological economy)로 부르고자 한다. 생태학적 경제는 인간다운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동시에 인본주의적 경제 (humanisticeconomy)이다.

생명 의 경제: 현재의 자원과 미래의 자연
자본의 경제가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행복을 보장하고자 하였다면, 생명의 경제는 자연을 보존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이 공리주의적 인간 중심주의와 생태학적 생명 중심주의를 대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환경 운동을 겪으면서 어떤 형태의 근본주의도 인간의 실존조건을 왜곡한다는 점을 익히 체험하였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가 자연의 가치를 재발견한다고 해서 과학과 기술 및 경제 행위를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주어진 문제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잘못된 물음을 던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바른 물음은 일반적으로 스스로 해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물음을 올바로 제기해야 한다.
자연의 가치를 재인식하려면, 우리는 자연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적 경제인은 자연을항상 이익의 관점에서 자원 으로만 파악하였다. 자본주의 경제는 통상 값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은 무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은 가치가없는 것인가? 갯벌을 간척하여 경작지로 만들고, 야생의숲과 초지에 경제림을 조성하고, 바다에 온갖 폐기물을버리는 행위는 모두 자연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보지 않고 죽은 물질적 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낡은 경제 패러다임을 극복할수 있는가? 우리는 물질적 자원 으로부터 생명의 자연 으로 시각을 전환시켜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활용하는 화석연료가 자연의 물질적 순환과정의 산물인 것처럼자연의 순환작용 없이는 어떤 경제 활동도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생태학적 경제는 두 가지 전제조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명제: 자연의 물질적 순환과정 없이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이 없으면 경제가 불가능하다. 둘째 명제: 자연적 생산의 경제적 역할을 고려하면, 자연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의 원천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조건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자연이 경제의 전제조건이라면, 자연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익하다.
자연은 그 자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제장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생명은 바로 경제행위와다를 바 없다. 최근 우리는 이러한 살아 있는 자연 생명의 가치를 조금씩 인식하고 있다. 생태가 경제의 장애가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의 자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녹색 성장과 그린 테크놀로지는 자연친화적 기술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위기가 보편화된 지금 생명은 바로 우리가 기대고 꿈꿀 수 있는 최대의 자본이다.

삶의 진정한 가치와 생명 자본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는 우리에게 영혼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자연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자연의 파괴는 우리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는 근본적이다. 인간의 철저한 자기변화 없이는 자연의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푸르게 빛나고 있는 주위와 지구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요구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할지도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발전시킨 과학과 기술의 미래예측능력 덕택에 우리는 — 지금 행위를 하지 않으면 —파국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익히 알고 있다. 위기는 분명 우리를 변화시킬 하나의 기회이다. 금융위기로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면, 우리는 새로운 경제 양식을 찾아야 한다. 환경위기로자연의 인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자연이 바로 삶의 근본적인 자본임을 깨달아야 한다. 생명자본(bio-capital)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생태학적 경제는 새로운 인간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인간유형을 전통적 경제인과 대비하여 생태인(homo ecologicus)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인간유형을 요구하는것인가? 언제 우리는 스스로를 생태인으로 이해하는가?새로운 인간 생태인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근세에출생하여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하였던 경제인은 탐욕과소유의 인간이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현대의 경제 원리는 근본적으로 더 많이 (more)를 추구한다.많을수록 좋다 (The more, the better)는 자본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 근본명제의 붕괴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드디어 더 많은 돈이 반드시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국민총생산액의 순위는 반드시 국
민만족도 및 행복지수의 순위와 일치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설령 믿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까지의 경제사유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실존적 가치, 행복,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은 배제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인간은 자연의 의존적 관계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 자연은 삶의 전제조건이면서 동시에 한계이다. 이 필연적 한계 속에서 인간의 자유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자본주의적 경제인이 인간의 자유를 절대화하였다면, 미래의 생태인은 인간의 자연의 한계를 인정한다. 인간은 결국 자연의 한계 속에서, 즉 다양한 의존 관계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성취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인간성은 항상 자율과 의존의 균형에서 발견된다. 미래의 생태학적 경제가 완전한 구
원보다는 적절한 자족 을 추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생태인은 더 많이 (more) 소유하고자 하는욕망보다는 그것으로 충분해 (enough)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생태학적 덕성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삶의 터전인 지구자연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진우 교수(포스텍 석좌교수)
연세대 독문과 졸업,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 철학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1989년부터 2010년까지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 동
대학 8대 총장 역임.
한국니체학회 회장 역임, 현재 포스텍 석좌교수.
저서: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철학 , 탈현대의
사회철학 , 도덕의 담론 , 이성은 죽었는가 , 한국 인
문학의 서양 콤플렉스 , 이성정치와 문화민주주의 , 지
상으로 내려온 철학 , 프라이버시의 철학 , 니체의 차
라투스트라를 찾아서 외 다수.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