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

 평범한 인간의 두뇌처리 능력은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만 처리할 수 있다. 글을 단문으로 써야 하는 이유다. 내가 아는 K는 수시로 카톡(문자메시지)를 한다. 나와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 가끔 TV를 보면서 '카톡을 날린다.'(식당 안의 뭇 여성들에게 세심한 눈길을 주는 것도 포함한다.) 한 번에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힘든 나에게 K의 멀티플레이는 놀라움 그 자체다. 그러나 부러워하지 말자. 이런 습관이 신경쇠약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복숭아 과육 속에 씨앗이 하나이듯 한 문장에는 한 가지 생각을 담자. 글이 지루하다는 것은 문장이 길다는 의미다. 말 하듯이 조목조목 설명하는 걸 글로 옮길 경우 전달의 효과가 떨어진다. '나는 지난주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K선생과 숭산기념관에서 열리는 니체학회에 가기로 했는데 K선생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카톡을 날리는 바람에 혼자 가서 열심히 공부했다.' 이 문장은 겪은 일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떠오르는 대로 마구 쓰다 보니 장황해진 예다. 이 경우 1) '~의 이유는 셋이다. 하나는 ~이고, ~이다.'로 나누어 열거하거나, 2) '나는 지난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K의 문자가 왔다.'는 식으로 끊어 쓰면 이해가 쉬워진다.
 주술구문이 반복되면 메시지가 혼동된다. '~할 수 있는', '~한다는 점에서', '~하기 위해', '~에 대한', '~로 볼 때', '~함으로써'는 두 가지 이상의 생각이 연결된 구문이다. 이 표현들은 주의해서 써야 한다. (문장이 길어지거나 어법에 맞지 않게 되는 주범이다.) 생각을 줄이고 나누면 단순해진다. 단순한 생각이 명쾌한 문장을 부른다. 단순한 문장을 덧붙여 생각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 글쓰기다. 명쾌한 문장은 간결하다.

▲ 단락은 대나무의 마디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 5월 18일 우리학교에서 열린 '니체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질문자는 이 문장이 니체의 '자살 예찬'이 아닌지 물었다. 철학적으로 볼 때 생물학적인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유래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이란 말은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단락도 마찬가지다. '한 생각'이 '한 단락'과 함께 죽어야 새로운 의미가 태어난다. 그것은 창조적 에너지로의 변화다. 니체는 새 삶을 위해 극한의 변화를 소망했을까?
 단락은 생각의 단위이며 생각의 꺾임이다. 논리의 전개, 인물·장소·시간의 전환, 특정 문장의 강조 시에 단락은 시작하고 끝난다. 문장의 시작과 끝이 주어와 서술어의 조화로 이루어지듯 단락의 시작과 끝도 생명체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미상관으로 이뤄진 단락은 명쾌하다. 이것을 단락의 완결성이라고 한다.
 명쾌한 단락을 대나무의 마디라 해도 좋겠다. 큰 바람 앞에선 아무리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라도 쓰러지지만 대나무는 끄떡없다. 마디가 힘을 분산시켜주기 때문이다. 글이 길어질수록 대나무의 마디 같은 단락이 필요하다. 마디의 끝에서 새 대가 균일하게 자라듯 긴밀하게 구성된 글은 힘이 세다. 단락은 죽어서 산다. 3주기를 맞은 대통령의 죽음이 그러하듯이.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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