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21세기의 종교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교 개념은 '다시 연결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그리스도교적인 맥락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이 하느님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주제화한 것이다. 종교는 인간과 신을 다시 결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 하느님과 인간은 왜 서로 멀어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부친살해' 가설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태고적 난폭한 아버지'를 살해하고 먹어 해치운 사건이 '토템 식사'를 통하여 기억되고 되풀이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종교 개념이 아버지를 죽이고 그 보좌를 찬탈하는 역성적 사건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종교 개념 자체에도 반목과 투쟁, 화해와 결합이라는 양극적인 모습이 드러나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종교의 본질, 즉 종교의 과거적 본성은 상극의 정치신학을 지향해 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종교 개념은 프로이트의   부친살해 가설을 전제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신의 반지』라는 책에서 예루살렘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오늘날의 세계대전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에 앞서 자크 데리다는 1993년 캘리포니아의 리버사이드 강연에서 메시아사상을 앞세운 세 유일신교의 긴박한 종말론 경쟁이 세계질서를 재편해왔다고 강조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동 조상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기원이 되는 아브라함의 선택은 유일신 사상과 선민사상을 그 특징으로 하지만, 그 세 유일신교의 사소한 차이는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차이로 확대된다.
 유대교 사상에서 유일신은 그리스도교에 들어오면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으로 변화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분이신 하느님의 다른 위격(persona)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특징이다. 사람들은 대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반대적인 종교라고 말하지만, 중동지역의 세 유일신교 가운데서 불교와 가장 유사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사람의 아들(人子)이 하느님이 된 사건은 사람이 성불하여 붓다가 된 사건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바벨론 남부의 우르(Ur) 지역에서 아브람(Abraham)을 선택하여 메소포타미아 북부 하란(Harran)과 유대 지역으로 인도한 사건은 대개 기원전 19세기에 발생했다. 그러나 출발한 곳과 도착한 곳은 다른 지역이 아니라 한 땅에 속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팔레스타인 문명권은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는 쿠란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은 하나의 이름과 마주치게 된다. 아브라함이 종에게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이사악에게만 정통성이 부여되는 반면에, 이슬람교에서는 이스마엘에게도 부여되는 점이 다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은 결코 다른 존재와 가족 같은 것을 두지 않는다고 선포한 사실이다. 이슬람교의 유일신 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을 명백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조상에서 나온 세 개의 유일신교

  슬로터다이크가 지적한 것처럼 이 세 종류의 일신교는 같은 조상을 섬기고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상극적인 관계 속에서 지내왔다. 그래서 세계 지배종교로서의 유일신교가 남긴 트라우마는 너무나 크다. 이것을 우리는 '상극의 정치신학'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구성하는 세 가지 중요한 계기는 바로 선민사상, 정통주의, 근본주의이다. 이 세 이념은 자신들의 종교를 유일한 진리라고 고백함으로써 타종교를 근본적으로 배척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첫째 선민사상(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를 불러와서 결국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낳았지만 또다시 끝을 모르는 중동전쟁을 불러왔다. 둘째 정통사상과 교황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종교재판과 동서 교회분열을 겪었으며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30년 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셋째 문명간의 전쟁을 불러일으킨 근본주의는 가장 강렬한 상극의 이름이다. 반이슬람주의는 십자군전쟁과 9ㆍ11테러뿐만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근본주의는 지젝이 강조한 것처럼 가장 신앙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반신앙적이고 상극적인 것이다.

 선민사상, 정통주의, 근본주의 - 상극의 정치신학적 이념들

  종교는 하느님과의 일치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종교의 과거는 오히려 하느님을 죽이는 일에 몰두하는 상극의 정치신학을 추구했다. 우리와 다른 것이면 모두 부정하려는 학살의 논리가 상극의 정치신학이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일치는 아직 오직 않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종교의 본질과 과거적 본성으로부터 종교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과연 시온주의, 정통주의, 근본주의가 낳은 폐단과 폐해들을 극복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종교에서 기대했던 바를 미래 종교에서 성취할 수 있다고 낙관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종교의 미래와 그 핵심적 과제들에 대한 물음이다.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세계 속에 있는 하느님』(1997)에서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을 다루면서 나치의 '유아살해' 사건을 고발한다. 1941년 8월 23일 나치는 우크라이나의 멜라야 체르코프에서 90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총살하여 구덩이에 매장했다. 유아들과 7-8세 이하의 어린이들이었으며, 그들의 부모는 앞서 총살당하였다. 이 사건은 나치가 1942년 1월 20일, 홀로코스트 실행을 의논했던 '반제(Wannsee)-컨퍼런스'보다 훨씬 앞서 일어났다. 유아들까지 살해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몰트만은 나치가 전쟁이 불리한 1944년 말에 그 많은 조직과 인력을 홀로코스트에 투입한 것은 그 전쟁의 목적이 유대인 청소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살해를 '하느님에 대한 살해 시도'라고 규정했다. 2010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존 콘웰이 "히틀러의 교황"(Hitler's Pope)이라고 불렀던 피우스 12세를 교황 요한바오로 2세와 함께 성인으로 추대하려다가 유대인 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 사건은 홀로코스트 문제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우슈비츠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주 힌두쿠시 산맥에 축조된 세계 최대 크기의 두 마애석불이 종교의 이름으로 파괴된 사건이 일어났다. 2001년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불상 파괴 지시에 의하여 파괴된 것이다. 지젝은 『죽은 신을 위하여』에서 바미안 석불의 파괴 사실을 성토하고 있지만, 그러나 근본주의의 비판 근거를 찾아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유일한 진리로 믿었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닌 가짜 우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바미안 석불 파괴나 9.11사태조차도 정당한 신앙 행위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들에게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은 매우 훌륭하고 축복받을만한 사람들로서 칭송의 대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테러리즘을 '신의 폭력'으로 미화해도 좋은 것일까?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테러사태들

  야콥 타우베스는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된 데는 바울로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타우베스는 그리스도교의 근원을 예수가 아닌 바울에서 찾는다. 그는 바울의 급진적인 율법 비판을 유대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논박이라기보다는 유대교의 해방적 잠재력으로 해석한다. 바울은 로마에 맞서서 이 세계를 다스릴 메시아를 요청하여 로마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했으며, 동시에 법과 혈연에 기반한 이스라엘 민족의 자기규정에 내재한 한계를 상대화하여 예루살렘에도 맞섰다. 타우베스는 발터 벤야민이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제시한 '법 구성적 폭력' 또는 '신의 폭력' 개념을 적용하여 바울로가 법정초적 폭력, 즉 신의 폭력을 사용했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바미안 석불을 폭격한 탈레반도 신의 폭력을 사용한 것인가? 그리고 신의 폭력이라면 무조건 정당화되는 것인가?
 1302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선언했으며, 플로렌스 공의회(1438~1445)는 이를 확정했다. 교황 요한23세가 1962년에 소집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종교대화의 길을 모색하여 타종교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공식화했다. 이를 계기로 1517년의 종교개혁으로 분리된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하고, 1054년에 분열된 동방정교회와도 화해를 시도했다. 이 공의회의 사상적 지주였던 칼 라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주창하여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개방적 태도를 천명했다.

 교회 밖에도 구원 있다 - 변화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

 스가 『신앙의 평화』(1453)에서 위대한 종교지도자들의 천상대화를 통하여 여러 종교신앙들의 공통적 근거를 탐색한 바 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임마누엘 칸트는 참된 종교란 오직 하나이고, 다양한 여러 신앙의 형태들이 가능하다고 보면서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가톨릭교, 루터교와 같은 역사적인 계시신앙들은 이성적인 도덕신앙으로 발전되어야 강조했다. 그 뒤를 이어서 에른스트 트뢸취, 폴 틸리히,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존 힉 등의 종교사상가들이 종교대화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특히 존 힉은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종교에서 추앙되는 신들이 결국 최고 존재자, 즉 '영원한 일자'의 서로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라이문도 파니카는 신성한 종교적 진리가 하나 이상의 종교에 나타나며, 힌두교 안에서도 '미지의 그리스도'가 출현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만 찾아오는 메시아가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 대화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종교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서 종교대화를 추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의 본질적인 차이를 배제할 경우에는 그 종교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상대방의 종교적 신앙과 의례에 동참하는 것이 참된 종교대화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보다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한스 큉은 『세계윤리구상』에서 종교대화와 종교일치의 가능 조건을 '인간적인 것'과 도덕에서 찾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참된 인간성은 참된 종교의 전제이고, 참된 종교는 참된 인간성의 완성이다. 한스 큉은 종교야말로 인간적인 것의 실현을 위한 최적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대화와 종교일치를 위한 최소조건 - 인간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그러나 도덕이 종교의 전부는 아니다. 키에르케고르의 경우에서처럼 종교적 실존은 언제나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비약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종교인들이 자신들에 의하여 고난 받고 있는 이웃을 그리스도나 메시아로 여긴다면, 또한 모든 종교인들이 타자를 살아있는 부처[生佛]로 존중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유대인들이나 게르만족, 그리스도인들이나 불교인들,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과 일치하고 부처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도록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김 진 교수(울산대학교 철학과)
<필자소개>
·독일 루어대학 철학과박사
·한국칸트학회 회장
·저서 및 논문 : 『칸트의 요청이론』, 『칼 마르크스와 희랍철학』, 『철학의 현실문제들』, 『종교란 무엇인가』, 『칸트와 불교』, 『퓌지스와 존재사유』, 『칸트와 생태주의』, 『아펠과 철학의 변형』, 『다석 류영모의 종교사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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