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따스한 봄날이기엡 노란 도트 무늬 원피스가 잘 어울린 그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오드리 햅번은 1929년 5월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 아버지와 네델란드의 남작가문 출신의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 후, 햅번은 부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6살 때, 햅번은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교외의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를 마치고 10세에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 이후로 그녀는 정식 학위를 인정받는 학교를 다니진 못했다. 말하자면 그녀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인 셈이다.
나치 치하에서 어머니 가문은 거의 모든 재산을 날리게 되었고, 햅번도 심각한 궁핍으로 영양실조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모든이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가 이렇듯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조금은 믿기가 어려울 것이다.
햅번이 16살일 때 나치의 점령은 끝났고, 햅번은 런던에 있는 발레 학교를 들어간다. 그렇지만 외가의 멸문으로 인해 스스로 학비를 부담해야만 했다.
그녀는 사진 모델, 코러스 걸, 댄서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드라마 강의도 들었다. 그 계기로 그녀는 몇 편의 영국 영화에 출연하고 학교에서는 장학생으로도 선발된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장학생으로 발레 학교를 다녔던 그녀였지만 커다란 키로 인해 프리마돈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혹자들은 그녀의 요정 이미지 때문인지 햅번이 작은 키라고 생각하지만 햅번은 꽤 큰 키다.
그 후 그녀는 모델 일을 시작했고 모델로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1950년에는 6편의 영화에 단역으로도 출연하지만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다. 햅번은 1951년 프랑스 여류 소설가인 콜레트 여사의 눈에 띄게 된다. 콜레트는 요정같은 햅번의 아름다움을 눈여겨 보고 자신의 소설<지지 Gigi>의 브로드웨이 각색작에 주연으로 선발한다.
연기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불구 하고 햅번은 호연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화려하게 스크린에 데뷔한다. 그 첫 영화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그 유명한 <로마의 휴일> (1953년)이다.
유럽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사랑스러운 공주 이야기를 찍고자 고심하던 와일러 감독에게 신선한 햅번의 외모는 감독이 그렸던 공주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 이미지는 곧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만다. 50년대 할리우드는 찬란한 배우의 시대였다. 비비안리, 마릴린 먼로, 그레이스 켈리, 에바 가드너,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 클락크 게이블, 수잔 헤이 워드 등 수많은 별들이 있었다.
그 당시 여배우들의 미모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고 섹시한 것이었다. 그녀들간의 라이벌 의식과 자존심 싸움도 대단하여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이 그녀들 모시기에 애를 먹었다고들 한다. 그녀들을 제치고 햅번은 와일러 감독의 요정으로 탄생한다.
섹스 심벌인 그 당시 여배우들과는 달리 말라깽이 햅번에게는 유럽의 우아함이 있었다. <로마의 휴일>의 대 성공으로 햅번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그 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다. 1953년부터 1967년까지 여러 편의 성공적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사브리나 1954>, <수녀 이야기 1959>,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어두워잘 때까지 1967>등에서 네 번 더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됐다.
햅번은 영화에서 뿐 아니라 패션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햅번 스타일’,‘햅번 룩’을 창조한 것이다. 그녀의 패션은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을 정도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지방시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햅번의 의상을 담당했고 한 때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햅번 룩’를 만들었다.
커다란 눈을 가진 스크린의 요정, 그녀가 진정 더 아름다운 것은 젊은 날의 청초함 보다 눈가 깊이 패인 주름을 안고 돌아 온 그녀의 고귀함이었다.
그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세계아동기구의 친선대사로서 어린이 구호에 앞장 선 모습은 스크린에서 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었다. 전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아름다운 햅번을 다시금 기억한다.
이 영 (유럽지역어문학부 강사)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