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적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자신의 내면에서 밀려오는 물음을 듣는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 이렇게 사는 삶이 의미 있는 것일까? ,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 나는 현재 행복한 것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 명예, 권력, 건강, 장수,성공, 쾌락 등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특히 근대화라는 압축적 경제성장을 체험한 우리는 유난히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며 살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경쟁과 인간관계의 상실, 인성의 황폐화 등 많은 것들이 오늘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을 분석하며, 그 원인으로 경쟁, 권태와 자극, 피로, 질투, 죄의식 등을 지적한다. 현대에서 강조되는 경쟁은 잔인하고 집요하며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며 삶의 여유와 기쁨을 주는 여가마저 오염시킨다. 권태와 자극 역시 삶을 소모적으로 만든다. 일상의 단조로움이나 권태를 이기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삶을 소모적이고 파괴적으로 만드는 술이나 도박, 여흥을 찾는 것이다. 현대에서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신경의 피로 다. 격렬한 노동, 근심걱정, 스트레스, 자극에 대한 집착, 불만족등은 삶의 불안과 심신의 피로를 가중시키게 된다. 질투 역시 불행의 원인이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습관은 내 삶의 가치를 상대화시키고 약화시킨다. 죄의식(죄책감) 역시 열등감을 만든다. 이것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감정이나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사람에게 원한을 품게 되며 남을 칭찬하지 않고 시기하게 된다. 불행은 이러한 부정적인 가치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자신 안에서 찾으며, 쓸데없는 생각이나 공상을 버리는 정신훈련 을 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라트너(J. Rattner)는 행복과 불행의 문 제를 사랑과 미움으로 분석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삶의긍정적 가치로 차 있으며 행복의 영역에 속해 있다면, 미움과 같은 부정적 가치나 감정으로 차 있는 사람은 불행에 가까이 서 있게 된다고 보았다. 독일의 로고테라피(Logotherapie)의 치료사인 뵈셰마이어(U. Boschemeyer)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세상의 모든 것과 화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용서는 자신을 아프게 하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 즉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이며, 타인과 화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삶을 긍정하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데 반해,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간다. 근본적인 행복이란 인간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이해나 근원적인 관심에 달려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분열 없이 통합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행복은 다가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부나 명예, 존경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의 동요가 끝나지 않으면 진정한 기쁨이 생기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 명예, 외모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여도 정작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엔 가진것도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여도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다. 재산이나 권력, 명예 등과 같은 가치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란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우리의 마음(영혼)에 달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eudaimonia) 은 일종의 좋은(잘) 삶과 좋은(잘) 행위 이다. 우리가 행위하는궁극 목적은 좋은 삶 을 사는 것, 즉 잘 사는 것 이다. 잘 사는 것은 매 순간 우리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고 좋은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영혼의 능력( 프로네시스Phronesis )에서 얻어진다. 행복은 어느 순간에 엄습하는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오랜마음의 훈련을 통해 다가오는 좋은 삶의 활동 자체라 할 수 있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균형 잡힌 정신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잘 관리하고 있는가?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는 행복이 근본적으로 영혼의 관리술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한다. 그는 자신의 영혼의 움직임들을 추적하지 않는 자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행복은 언제나 우리의 힘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행복은 우리의 마음(영혼)의관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마음 다스리는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행복은 내가 누구인지 묻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내 자신을 알게 되고 내가 내려놓아야할 일을 자각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에 대한 관계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집착이 없어지게 되고 삶에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조용히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한 가운데 영혼이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하고 자신 안에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에너지가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행복은 고요 속에서 자신과 만나는 과정에서 열리는 자각의 느낌이요, 긍정적 자기 확신의 내적 체험인 것이다. 이러한 내적 체험은 긍정적 감정으로 표현된다.


  긍정적 감정과 인간적 가치는 삶의 의미를 알려주고삶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긍정적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삶을 긍정한다는 것을, 즉 지금, 여기 에서의 삶을 기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부정적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니체가 운명애(amor fati) 를 강조하고 있듯이 자신의 현실을 긍정하고 능동적 의지를 통해 삶을 창조해 갈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된다. 삶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유발하는 인간의 내적 체험이 다름 아닌 충만한 삶이다.


  독일의 철학자 슈미트(Wilhelm Schmid)에 따르면 행복에는 우발적 사건이나 일회적 느낌으로서의 우연의 행복 , 육체적 안락이나 감각적 만족과 같은 쾌적감의 행복 , 그리고 정신적 태도에서 비롯되는 충일감의 행복이 있다. 충일감의 행복 은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쾌락의 전관(全觀)적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호흡처럼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라는 삶의 양극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균형이다. 쾌적함과 만족만이 행복의 요소가 아니며, 고통과 불행이 단순히 회피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은 이 양자의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내 삶이나 의식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체험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는데, 삶의 의미가 결여되었다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어떤 방식도 거의 견뎌낼 수 있다 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이나 시련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내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나 시련을 이겨내고 그 가운데서 찾는 내 삶의 의미와 연관해 나타난다. 행복은 각자의 삶의 맥락에서 일어나는 삶의 극복과 의미 찾기의 놀이인 것이다.


  삶의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뿐만아니라 삶의 기술도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에는 나 자신의 뜻으로 어쩔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일어나지만, 하루에도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도 수없이 일어난다. 이때 긍정적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은 오늘의 일상에 대해 감사해 한다. 일상의 삶에 대한 긍정과 감사의마음은 여유로움뿐만 아니라 삶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용서할 줄 아는 너그러움을 준다. 감사는 어렵지만 매우 강력한 삶의 기술이며, 배울(학습) 수 있는 삶의 가치이다.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법, 삶의 어려움을극복하는 법, 긍정적 가치로 살아가는 법, 부정적인 과거나 고통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행복을 물질적 풍요나 자신의 기대나 욕구가 충족될 때 불시에 찾아오는 감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재산이나 권력, 명예, 건강과 같은 것이 충족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가치에 집착하면 할수록 행복은 멀리 달아나고 만다. 무도병에 걸린 사람이 신경계 이상으로 신체와 손발의 움직임이 맞지 않아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이듯, 잘못된 인생관이나 삶의 태도, 습관을 가진 사람은 손발이 맞지 않는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아름답게 삶을 산다는 것,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일어나는 세계관의 변화를 요청한다. 성공이나 행복, 살아있다는 것(생명), 감사와 같은 것의 의미를 자신의 내적 목소리로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이 나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자각적활동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세속적 의미의 가난이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함, 진지함, 깨어있음, 삶을 긍정하려는 노력, 사랑과 헌신, 감사의 가치를 인지하는 능력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가치가 다름아닌 행복이다. 세속적인 성공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고 매사를 감사하게 여기고 행복해 하는 태도가 우리의 삶 그 자체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행복은 내 존재가 이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여겨질 수 있는 삶의 예술에서 얻어질 수 있는 성공의 미학이다.


김정현 교수(원광대 철학과)
 

필자소개>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철학박사.
현재 원광대 철학과 교수, 한국니체학회 회장.
세계표준판 니체전집 편집위원 역임.
저서: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 기술 시대의 의사 ,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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