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정 근 (원광학원 이사장)

 원광대신문이 창간 49주년을 맞았다. 험한 길 참한 눈으로 버겁게 지탱한 삶이다. 이제는 꽉 차야 할 때이다.

 꽉 채우는 충만은 실은 텅 빔의 반대편 개념이다. 늘 대학신문이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신문이 소속 대학을 단위 삼아 그것도 철저하게 지역사회와 격리된 학문공동체의 기관지이면서도 일반 저널리즘을 답습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신문이 대학을 감시하는 파수꾼이고 싶어 한다. 그 원뜻은 감시 기능을 통해 발전을 유도하는 애교 차원의 감시일 것이다. 나라에는 국가이익 즉 국익(國益)이 있듯 학교는 학교 이익이 있고 대학 신문은 그 교익(校益)에 앞장서야 한다.

 이미 알려져 있듯 우리대학은 도덕대학을 표방하는 종교대학이다. 물질개벽이 치성할 때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이입단계의 물질주의가 치성할 때 원불교는 그 역(逆)으로 정신개벽을 외치며 세운 소우주(universe)이다.

 나는 대학신문이 소우주를 감시하는 파수꾼이 아닌 '인도(guide)의 일꾼'이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원광 공동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하고 지도하는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마치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을 안내하는 것과 같다. 인도견의 임무는 주인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하는데 있다.

 대학을 지칭하는 '유니버시티(university)'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세계' 공동체를 뜻한다.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견지하고 균형을 이루는 민주 훈련의 요람이다. 그럼으로 대학신문은 다양한 대학 기관 부서 가운데 한 부서에 지나지 않는, 신문사만의 작업 산물로 한정할 일이 아니다. 상당한 중심을 세운 지혜 집단의 산물이어야 한다.

 대학은 시대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고 신문은 시대의 사건을 담는다. 이 두 가지를 갈등 없이 구현되는 공개장이 대학신문이다. 교직원, 학생, 동문,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맞대는 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조 정 근 (원광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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