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7.11.21 화 20:09
원광대신문
기사모아보기   
학술
사유되지 않은 것을 사유하라가라타니 고진,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원대신문  |  webmaster@wknews.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10.05  18:48:2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일본의 비판적 지성,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새로운 타입의 비평가이자 사상가로 입지를 굳힌 계기가 된 저작이 바로 1978년에 발표한「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다.「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4),「내성(內省)과 소행(遡行)」(1980), 「은유로서의 건축」(1981), 「언어 · 수 · 화폐」(1983)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그는 일본의 사회적 변화에 적확하게 대응하는 비평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들 저작은 당시 일본에 소개된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과 같은 프랑스 현대 사상과 어깨를 겯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지식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가라타니 고진의 독자성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일본 안에 갇힌 '자가 중독'의 사상을 경계한 것, 그리고 문예평론가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다른 영역과 '교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둔 운동이 결정적인 좌절을 맛보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 분야의 업적으로서 한 획을 그은『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와 더불어 철학 분야의 기념비적 작품인『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내놓는다. 1970년대 일본의 신좌익 운동이 붕괴하면서 모두들 마르크스의 종언을 부르짖을 때, 그는 『자본론』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여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 저술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마르크스를 떼어내어 「경제학 · 철학 초고」에서 『자본론』에 이르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읽는' 일에 열중한 결실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마르크스였는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속한 자본주의 경제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깊이 고찰하고자 한 사람이었다. 자본주의는 사람이 부정한다든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교환'이라는 데 내재하는 근원적인 패러독스에 의해 잉태된 것으로 오리혀 인간의 조건과 관련이 있다."(『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산출판사, 1999, 8쪽. 이하 인용에서는 쪽수만 밝힘)
 자본주의에 절망하고 시장에 절망한 가라타니 고진이 마르크스를 출발점으로 삼은 까닭은 마르크스가 가치형태론을 자명한 전제로 삼는 고전경제학에 대립하여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해 "신학자가 악의 기원을 원죄로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명해야 할 사유재산, 소유욕, 노동, 자본, 토지소유 같은 것을 역사상의 사실로서 전제해버린다"고 간파했던 마르크스와 같이, 가라타니 고진도 자명하다고 전제해버린 것을 의심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사유하기 = 읽기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펼치면 「서장」에 '읽는다'는 것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독서나 독해가 단지 글자를 읽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읽는 행위는 "작품 이외의 어떠한 철학이나 작자의 의도도 전제하지 않고 읽는 것", 다시 말해 외재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또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다.
 "『자본론』이라는 작품이 탁월한 이유는 자본제생산의 비밀을 폭로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흔하디흔한 상품의 '아주 기괴한' 성질에 대해 마르크스가 놀랐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상품 또는 가치형태를 발견한 것이다."(23쪽) 이로부터 가라타니 고진은『자본론』이 '읽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경제학이 '아직 사유하지 못한 것'을 사유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는"나에게 마르크스를 '읽는 것'은 가치형태론에서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읽는 것"(30쪽)이라고 하면서 『자본론』에 자신만의 '읽기'를 적용하고 있다.
 가라티니 고진의 독창성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상업자본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본주의를 고찰함으로써 '교환'에 주목한 데 있다. 가치형태는 어디까지나 상이한 체계 및 시스템이 서로 매개되어 성립하는 교환과 변환의 과정 위에 성립한다. 따라서 교환에는 반드시 외부와 타자의 문제가 개입된다. '사기/팔기'라는 교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비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환 자체가 인간의 근원적 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교환의 개념을 상품에서 언어로 확장했다. 언어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가치체계를 등가 형태 속으로 끌어들여야만 교환이 성립한다. 따라서 교환이라는 개념 자체에 하나의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 사이, 즉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타자와의 교환(곧 커뮤니케이션)은 근본적으로 곤란하다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 내포되어 있다.
 교환은 예측할 수 없는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가 '노동'을 근본에 놓고 '교환' 과정에서 생산물의 가치가 발견된다는 측면을 경시했기 때문에 복수성(타자성)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에 빠질 위험을 열어놓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교환'에 주목한 것이야말로 그가 시도한 마르크스 '읽기'가 낳은 성과였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마르크스는 한물갔다'는 둥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할 때,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를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읽고자 했다.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읽기란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것 자체의 기원을 읽고자 하는 시도를 가리킨다. 기원을 추궁하고 근원을 의심하는 일, 아마도 그가 말하는 '읽는다'란 바로 이러한 행위를 가리킬 것이다.

자명한 것을 의심하기
 가라타니 고진은『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경제학을 언어론적으로 취급함으로써 더욱 근본적인 이론적 문제에 매달리는 한편, 문학비평을 통해 일본의 현실 상황에 개입해왔다. 근대문학의 '내면'이나 '주체' 개념을 공격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의식은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 자체를 의심한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자연스레 비롯되었다. 사실 문학을 작가의 자기표현이라고 보는 관점 자체가 근대적인 것이므로, "근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면 '작가' '자기' '표현'과 같은 장치 자체의 자명성을 의심해야만" 할 것이다.
 특히 '내면'이나 '주체'를 비판하는 일, 더불어 타자와 맺는 관계의 절대성에 주목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서양철학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는 주체 형성에 매개되어 있는 근원을 묻거나 의심하지 않고 주체의 존재나 현상에 안주하는 사유방식을 강도 높게 질타한다. 왜냐하면 서양철학이야말로 보편적 합리성이라는 명분 아래 타자를 배제할 뿐 아니라 체계 내부로 타자를 끊임없이 흡수하여 동화시키는 '갇힌'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서양철학은 타자성 자체의 소멸을 꾀하는 자기 내적 대화[內省]=자기 독백(monologue)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이한 체계 및 시스템을 매개하여 성립하는 교환 및 변환 과정에는 반드시 외부와 타자라는 문제가 개입된다. 교환 자체가 인간의 근원적 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근원적 관계성'을 맺은 '타자'를 실감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을 때다. 공동체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서로 공유하는 코드나 규칙 안에서 발화하고 해석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내적 대화를 벗어나려면 공동체의 윤리나 관습을 의심하고 공동체 외부에 서서 생각하는 일, 코드나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공동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타자'와 만남으로써 자기 독백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
 가라타니 고진은 끊임없이 이론적 작업을 실천과 결합시키려는 고민 속에서 2000년 6월에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2003월 1월 해산) 운동을 일으켰으며, 최근에는 지난 2011년에 발생한 일본의 3.11대지진 이후의 탈(脫)원자력발전 데모에 참가하고 있다. 시민의 자연발생적인 운동이며 직접민주주의의 행동으로서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일본의 데모를 고무하고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행보는 마치 끊임없이 '사유되지 않는 것'을 사유하는 가운데 미래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경원(문예비평가)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홋카이도대학 문학부 외국인연구원,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저서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낱말편 1, 2)』(공저, 유토피아) 등과, 번역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가난뱅이의 역습』(이루),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갈라파고스), 『일본변경론』(갈라파고스) 등 다수.

< 저작권자 © 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원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70-749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44-2 | TEL 063-850-5551~4 | FAX 063-850-70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찬근
Copyright 2005 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wknews.net
원광대신문사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