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르상티망의 사회, 한국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철학자 니체의 용어로서, 강자(승자)에 대한 약자( 패자)의 질투심과 시기심을 가리킨다. 인간성의 보편적 그늘이랄 수 있는 르상티망이 개인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현상으로 확대될 때 정치문제로 비화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르상티망을 억제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조장하는 사회인가? 2007년 이후 무고 사건이 폭증하고 있는데, 무고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숫자가 2007년에 819명, 2008년에 1144명이었다. 참고로 몇 년 전 일본 전역에서 무고죄로 기소된 숫자가 그해 한 해에 총 2명이었다.
 고소·고발 건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 지역경찰청 2003년 자료에 의하면 4만여 건의 고소사건 중 22%만 기소되고 나머지는 불기소나 기소유예 되었지만 고소인들은 그런 경우에도 항고나 재항고로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방을 집요하게 괴롭히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2004년도 국가별 총 고소 사건은 한국이 60만건 이상, 일본은 1만여 건이었다. 질투와 원망의 만연은 전 국민이 항상적 불만족 상태에 놓인 '앵그리 사회'를 고착시킨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털면 먼지 안 나는 놈 없는' 인간성의 보편적 약점에다 한국적 르상티망이 가세한 우리사회는 언제나 과열상태다. 

  무엇이 분노를 확산시키는가?

 정권 출범시 이명박정부는 최고 공직자인 대통령을 '한국화(韓國號)의 CEO'(최고경영자)로 불렀다. 국가운영을 회사경영에 비유하는 어법은 국가와 정치의 근본적 존재 이유인 공공성(公共性)의 이념을 왜곡한다는 치명적 한계를 갖는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적 질타를 받은 근본적 이유는 공공 마인드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이명박정부의 인사정책에서는 대통령과의 사적 친소관계가 공적 영역을 식민화시킴으로써 국가권력이 사사화(私事化)된다. 4대강 사업과 내곡동 사저(私邸) 파문이 증명하는 것처럼 국가정책 자체를 자신과 측근·특정 정파의 사적 이해를 위해 운용함으로써 권력행사의 공공성 원칙이 파괴된다.
 공공성 원리의 형해화(形骸化)는 한국의 오래된 폐단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은 조선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찾기 어려운 덕목이다. 지배계층의 공공의식 부재는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닌 선사후공(先私後公)의 사회문화적 타락상을 낳는다. 공공선에 대한 존경심 결여는 서민들의 공중의식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나라 전체가 냉소와 위선의 도가니가 되고 국민 전부가 르상티망의 포로가 된다.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소유자들의 병역면제 비율이 서민층에 비해 몇 배 높은 현상도, '상놈만 군역(軍役)을 졌던' 봉건 조선의 유산이 현대한국에서 재현되어 공공성을 파괴하는 경우다.
 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의 40여%가 부정부패나 독직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았다는 통계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한 공직(公職)의 사적 전용(私的 轉用) 현상을 입증한다. 고위공직자 후보청문회에서 저촉되지 않는 대상자가 거의 없다시피 한 부동산 투기는 사회지도층이 서민들을 수탈하는 격으로서, 공공성 파괴의 집약판이라 할 수 있다.
 형해화한 공공성이 경제적 효율성에 의해 잠식되는 정도에 비례해 자본은 국가와 민주질서를 식민화한다. 양극화가 우심해지는 가운데 열악한 사회안전망 탓에 무한경쟁의 탈락자가 양산된다. 국부를 독점한 극소수 재벌이 국내총생산을 독과점하면서 활황을 누리는 데 비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상황은 갈수록 열악해진다. 제조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줄어드는 '노동의 종말' 현상과 연결된 성장률의 감소는 고교 졸업자의 80% 가까이 대학에 가는 세계 최고의 진학률과 맞물려 거대한 청년 실업예비군을 만들어낸다.
 항시적 고용불안과 퇴직 위기에 시달리는 중년층,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퇴직자들과 노년층의 스트레스도 너무 심각하다.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극소수의 대기업과 상류층이 잘 나가는 가운데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으로 인식된 정치적 기득권 집단에 대한 환멸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르상티망은 급격히 악화된다.
 현실에 대한 불만, 리더십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상승작용을 일으켜 한국사회를 총체적 분노사회로 만든다. 사회 저변에 광범위한 절망과 분노가 빠르게 쌓이고 있는데 제도정치가 그 분노의 출구를 제공하지 못할 때 사람들이 정치 바깥에서 희망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인으로선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지만 공공성의 모범으로 여겨진 안철수 씨가 무소속 대통령 후보로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안철수 현상'의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대선 주요 후보자 3인 모두 경제민주화에 동의하면서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공약한 것은 '분노사회 대한민국'의 大폭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정치적 행보다.
 정의롭지 못한 정치, 극심한 경쟁과 양극화, 불공정한 경제사회적 관행,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상호 연계되어 21세기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스트레스·피로·울분·혈기의 분출이 가득한 분노사회로 만든다. '묻지 마 범죄'와 증오 범죄가 늘어난 것은 한 상징적 징표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성범죄의 급속한 증가도 우리사회의 폭력성을 시사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유흥업의 全방위적 팽창이나 '갈 데 까지 가는' 특유의 술 문화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한국적 분노사회의 단면이다.

 근본적 해결책으로서의 공화정(共和政)의 철학

 공적인 것의 이념은 국가 운영과 정치적 리더십의 지평에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공후사(先公後私)는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변함없는 덕목으로 여겨졌다. 공공성과 정치 리더십의 본성에 관한 고대 중국과 희랍의 통찰은 의고(擬古) 취향을 넘어서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다. '公은 公이고 私는 私다'라는 표현도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관류하는 기본 원리에 대한 진술이다. 공동선의 강조, 공동체에의 헌신, 공익의 추구는 모두 공공성의 구현으로서의 국가의 본질과 리더십의 됨됨이를 측정하는 불변의 잣대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울려 퍼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도 공공성의 이념과 직결된다. 공화국(republic)이라는 용어 자체가 '공적인 것'(res publica)의 소산이다. 한마디로 공화국은 '모든 시민을 위한 나라'인 것이다.
 한 사회가 선진국이 되고 평범한 시민들이 자족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보통사람 스스로 공동체에 대한 귀속감과 자부심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시민적 자존감과 연대의식을 통해 생성되는 무형(無形)의 사회자본의 존재는 성숙한 사회생활을 가능케 할 궁극적 준거점이다. 우리에게 찾아보기 어려운 공화주의의 습관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상호적대적인 삶을 일반화시켰다. 그 결과 한국인의 삶은 각박하고 분노와 폭력이 팽배하며 이웃은 경쟁자이거나 적으로 현현된다.
 공화주의 정치철학은 이에 대한 궁극적 대응이다. 헌법문서의 차원에 머무름으로써 박제화 되어 온 공화국의 꿈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은 우리사회 진화의 현 단계에서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공화정의 이상과 실천은 분열을 줄이고 적대감을 치유하며 분노를 다스리고 폭력을 통제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제고하는 원천적 자원이다. 통일시대의 한국을 '시민 모두를 위한 좋은 나라'로 만드는 정치철학적 기획이기도 하다.

 공화 없이 분노와 폭력을 줄일 수 없다

 한국사회는 갈등과 분열로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분노와 폭력의 근저에는 '공화국의 철학'의 부재가 자리한다.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공화정의 재구성 도정에서 변함없이 보존되어야 하는 가치 가운데 핵심이 나라의 존재 이유로서의 공공성의 구현이다. 민주 시민들 스스로 동의한 정당한 법질서 속에서 누리는 책임 있는 자유는 공화정의 진면목 가운데 하나다.
 자유와 법치가 공존하는 나라에 대해 시민들이 자부심과 애국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외부세계와 내부의 비주류에 대해서도 열려있고 관용하는 자발적 나라사랑은 공화국 시민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非지배(non-domination)의 중핵이다. 공화국의 시민들은 남에게 강제로 지배당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남을 강제로 지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 평등한 자유시민인 것이다.
 이런 그림은 21세기 한반도에서 구현되어야 할 사회정치적 이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한국 공화주의의 미래는 자유로운 한국시민들의 실천에 달려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현재적 미래에 부응하는 집합적 실천임과 동시에 동북아와 세계시민사회의 평화와 공존에 봉사한다.
 공화국의 이념이 결여된 좋은 국가란 존재불가능하며, 공화정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공화정의 이상과 실천 없이, 국가도 없는 것이다. 세계사와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공공성의 원칙이 국가와 리더십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화두임이 명약관화하다.
 당당한 리더십과 주체적인 폴로워십(Followership)이 민주적으로 어우러질 때 진정한 공화국이 가까워진다. 공공성에 몸을 바치는 지도자만이 국민과 역사 앞에 의연할 수 있다. 공공 마인드를 갖춘 리더십은 대화와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악한 권력게임이 아니라 공공성의 실현이 정치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정치적 인간'을 우리 시대는 요구한다.
 18대 대선 최대의 화두가 공공성의 회복이라는 사실은 이를 명징한 방식으로 증명한다. 공공성의 정신으로 무장한 소통과 통합의 정치 리더십, 그리고 그것과 수평적으로 어우러진 시민적 리더십이 창출해내는 사회적 역동성이야말로 좋은 나라의 핵심이라는 통찰은 고금동서에서 언제나 진리였다. 현실의 도전에 주체적으로 응전하는 정치적 인간, 즉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대한민국을 구원할 수 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필자소개> 
 ·前 한신대 대학원장
 ·現 한신대 철학과 교수 및 한신대 학술원장
 ·조선일보 '윤평중 칼럼' 집필
 ·저서로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담론이론의 사회철학』,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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