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 - 한국 대학출판의 기획방향

비관적인 대학 인구의 감소
 대학 정원 미달은 학생등록금을 대학 재원의 주요 몫으로 삼는 지방의 열세 대학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신입생 등록률 80%미만 대학이 51곳이었다. 202개 4년제 대학 가운데 60%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은 21개(10.4%)였다. 신입생 정원의 절반도 못채운 대학이 11개(5.4%)였다.

 특히 수도권 대학 전체 등록률이 97.6%인데 비해 영남권 91.1%, 중부권 86%, 호남권 76.1%였다. 수도권이 지방에 비해 월등 앞선 현실이다. 전체적으로 4년제 대학 4개 가운데 1개는 60%도 못 채운 실정이다(李周浩 의원, 의정자료 「4년제 대학 등록현황」 참조).

 국립대학을 제외한 서울 및 대도시 중심의 이른바 명문 사립대학들은 이런 고민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렇다고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과감한 폐과(廢科), 인접·유사학과의 통합, 개설 강좌수의 축소, 등등  하나같이 축소 지향형이다.

 오늘날 우리사회 현실은 60~70년대 '산아제한(産兒 制限)' 정책의 과잉 달성을 넘어서서 '산아 회피(産兒 回避)' 풍조가 넓게 자리 잡는 중이다. 전체 인구 감소를 크게 걱정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대학 인구 감소는 고스란히 대학출판부로 전이되어 고통으로 이어진다.

노마딕 현상과 페이퍼 북
 복사기 산업의 신장과 대학별 도서관의 확충이 상대적으로 대학 출판물의 판매 시장을 위축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가장 최근 들어 급격한 변화는 현대인의 삶의 양식이다.

 그 첫째가 현대인의 유목화(遊牧化)이다. 1만 년 전에 자리를 잡은 (농경) 문화는 머지않은 장래에 유목을 중심으로 재건될 것이다. 지난 30년 전부터 인류의 5퍼센트가 유목화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외국인 근로자의 정착, 정치적 망명자, 자기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 하이퍼(초상류)계급의 성원들이다. 미국은 주민 5명 당 1명이, 유렵은 10명 당 1명이 해마다 이사를 한다. 30년 후에는 인류의 1/10이 부유하거나 혹은 가난하거나를 막론하고 유목민이 될 것이다(21세기 사전, 자크 아탈리).

 선진사회 모형의 판단 기준이 인구 이동 비율에 둔다면 설사 정상적인 경제 활동 기반에 반하는 부동산투기열이 빚은 특이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의 노마디즘 현상은 심화일로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이동 비율은 유럽 못지않다.

 한편 해외 동포가 어림잡아 7백만, 해마다 해외여행자가 7백만, 연간 외국인 입국자가 5백만, 약 20개국에서 몰려든 외국인 노동자가 30여 만 명임을 감안하면 우리의 사회 구조는 이미 노마디즘 단계에 진입한 것이 틀림없다.

 이런 노마디즘 현상이 한국의 출판 문화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 한다.
 첫째, 노마디즘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분해 또는 해체하여 이른바 부부 중심 단위에서 독거 사회로 이행 중이다. 또한 평수가 넓은 아파트를 찾는 잦은 이사 횟수 못지않게 생활용품의 최소화가 책을 등한시하는 경향이다. 책이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던 시대 흐름이 퇴조하였다. 잦은 이삿짐 꾸리기 가운데 가장 큰 애물단지가 책이다.

 둘째, 가상공간 속의 유목민화한 청소년층이 독서를 기피하는 현상이다. 책 읽기에 치중하던 여가시대는 크게 바뀐지 오래이다. 다양한 전자기기(電磁機器)가 등장하여 여가시간을 점령하였다. 더불어 건전한 시민 양성이라는 고전적 제도권 교육 기간은 향후 생업과 연결되는 일종의 투자 기간으로 전락하였다. 학교 교육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득점력 배양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시험 출제 범위를 벗어나는 독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다. 책을 멀리해도 되는 이유이다.

 셋째, 독서 기피 만연이다. 이른바 겉핥기식 쿼터리즘(quarterism) 현상이다. 스치듯 흘러가는 독서 시간은 대개 15분 남짓하다는 뜻이다. 어지간한 전문 전공 지식은 웹공간에서 쉽게 직조(織造)한다. 오늘의 대학생은 읽지 않되 직조에 능하다.

  대학인구 감소가 대학출판계의 고민거리


  소속대학 연구자와 학생대상 마케팅 '한 몫'


  소속대학 다른 공동집필 교과서 개발해야

대학 출판부의 미래
 우리사회가 경험한 출판 기술의 변화는 다양했다. 대·나무·옥간(竹/木/玉簡)-필사-목판-목활자-금속활자-등사-납활자-타자-청타-워드프로세서-PC本, 등을 경험했고 또한 경험하는 중이다. 그런 새로운 기술은 예외 없이 관련 산업 기반의 부침을 불러들였다.

 새로운 전자 출판의 등장은 당분간 종이책 시장을 계속 넘볼 것이다. 또한 종이책을 근간으로 삼던 대학 출판 시장은 기왕에 누리던 안정적 지위를 존속하기 어렵다. 사회 전반의 출판 시장과 구분되는 대학출판 시장의 독자성은 기대 이하로 떨어지는 추세이다. 이런 위기는 대학 출판부가 대체적으로 소속 대학 연구진과 학생을 주요 시장으로 삼는 안일한 마케팅도 한몫한다.

 대학출판물의 주요 원고 생산자인 교수 사회의 변화도 이런 위기를 부채질 했다. 책 집필보다 상당수의 논문 성과를 축적해야 살아남는 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논문을 모아 책으로 생산하기에는 전문 학술 출판물의 구매층이 매우 엷다는 뜻이다. 또한 대학출판부가 교수집단을 이끌어 나갈만한 투자 역량이 취약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 경험에서 배울 일이다. 인쇄술의 등장으로 파리의 4천여 필사자(筆寫者)들이 태업을 벌렸으나 유럽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인쇄기 홍수기를 맞았다. 전자 출판의 등장은 급속도로 전자 출판 시장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시기에 페이퍼 북 중심인 현존 대학 출판부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첫째, 원료 없는 생산은 불가능하다. 대학 출판의 살 길은 소속 대학의 원료 생산자들을 잘 관리하는데 있다. 소속 대학 교수들의 원고를 외부 출판사에 빼앗기지 않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일을 말한다.

 둘째, 대학 출판부가 중재하여 소속 대학을 달리하는 4~5명의 교수들을 묶어 공동 집필 교과서를 개발하는 일이다. 이미 시중 출판사가 사활을 걸고 감당한 분야이다. 지역별 권역별로 서너개 대학 출판사가 연대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셋째, CD롬과 같은 전자책이 종이 책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다면, 종이 책은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는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전자책도 제작할 일이다. 종이책 중심의 마인드를 서서히 바꾸어나가자는 뜻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공존의 길을 걸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기획력은 다양한 원고 생산 집단, 즉 교수 집단을 등에 업고 있다는 강점을 살리는 일이다. 대학 출판부의 사활은 새로운 출판 기술의 도입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출판 자원인 원고 생산 집단을 관리하는 기획 투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박 영 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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