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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자기의 개념과 실존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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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02  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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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자기의 구조
 1849년에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발표한다. 그는 익명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향하는 사람들의 절망을 보여준다. 이 저서에서 절망은 인간적인 죽을 병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는 인간을 정신으로, 정신을 자기로 간주하면서, 전통적인 자기관과는 달리 자기를 자신을 자기 자신과 관계시키는 역동적 활동체 로 주장한다. 자기는 영혼과 육체, 무한과 유한, 가능성과 필연성의 종합이라는 것이다.
 필연성은 인간을 제약하는 구체적인 자연-사회-정치-문화적 환경, 성, 종족, 개인적인 경험, 정서적 안정감, 재능, 관심, 능력, 단점을 포함하는 환경, 조건, 처지 또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자기는 상상의 도움으로 유한성과 필연성을 초월할 수 있다. 상상은 자기가 자신의 유한성을 반성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그리는 방법이다.
 키르케고르는 자기를 상상을 매개로 자신의 이상적 자기를 자신의 현실적 자기와 관계시키는 관계자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자유가 문제된다. 자신의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를 관계시키는 역동적 활동체가 자유롭지 않다면 자기는 이상과 현실을 관계시키는 관계자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유 존재라는 것은 결단의 개념을 내포하는데, 결단은 유한성과 무한성, 가능성과 필연성, 그리고
영혼과 육체를 종합하는 자기의식적 행위이다. 이런 결단의 순간 정신은 시간의 흐름에 종속된 실재와 미래에 나타나는 영원한 이상을 종합한다. 결단의 유무에 따라 실존은 심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으로 구분되며, 결단의 강약에 따라 윤리적 실존과 종교적 실존으로 구분된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종교적 실존을 제외한 실존들은 절망에 지배되고 있다. 심미적 실존은 직접적 심미주의와 반성적 심미주의태로 구분되는데, 직접적 심미주의의 상징은 돈 후안이며, 반성적 심미주의의 대표자는 유혹자 요하네스이다. 윤리적 실존의 상징은 빌헬름 판사이고 종교적 실존의 상징은 아브라함이다

심미주의:직접적 심미주의와 반성적 심미주의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돈 후안은 직접적 심미주의를 상징한다. 그의 삶은 욕망 즉 생리적 필연성에 의해 지배되며, 직접적, 즉각적 방식으로 충족된다. 돈 후안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것만으로 향락을 즐긴다.
 그에게 욕망의 대상은 손 안에 있다. 욕망의 주체와 대상은 구분되지 않는다. 직접적 심미주의자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이나 음모를 꾸밀 필요가 없다.
 돈 후안은 언어로 가능성을 상상하지도 사유하지도 않는다. 그를 지배하는 욕망은 선반성적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모른다. 그에게는 현실성과 가능성을 관계시키는 관계에 대한 자기의식이 있을 수 없다. 직접적 심미주의가 세 단계를 거치면서 욕망의 주체와 욕망의 대상이 구분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의식으로 규정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직접성이 무르익어서 정신이 더 높은 차원의 형식을 요구하는 순간, 정신이 자신을 정신으로 파악하려는 순간이 가능성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찾아온다. 유혹자 요하네스가 대표하는 반성적 심미주의에는 반성이 현존한다. 이 단계에서 욕망의 대상은 주체와 분리된다.
 반성적 심미주의자는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반성하고, 이는 반성적 심미주의에서 자기의식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유혹자 요하네스가 일기를 쓰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끝없는 반성과 책략을 기록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돈 후안과 요하네스의 차이가 드러난다.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반성적 심미주의자의 반성은 무한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가능성을 한없이 쫒아 다니며, 그 결과 가능성은 그에게 환영이 되어버린다.
 반성적 심미주의자는 현실에서 물러나 상상의 유희를 벌인다. 그의 삶은 참다운 실존이 아니라 실존의 가능성, 환상적 실존일 뿐이다. 욕망의 주체와 대상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자기의식이 현존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은 결단의 매개에 의해 현실성과 관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의식은 잠재적이고 불충분하다.
 실존의 가능성에 머물러 있는 반성적 심미주의의 반성은 결단에 의해서만 정지될 수 있다. 반성적 심미주의에서 자기와 외부 세계를 구분할 줄 아는 자기의식은 결단을 예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현실성을 외면하는 탓에 결단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잠재적 자기의식으로 머물러 있다. 요컨대 직접적이든 반성적이든 심미주의에는 결단이 결여되어 있다. 심미주의자는 결단에 의해서 생성된 존재가 아니며, 자기로 규정될 수 없다. 자기의식은 결단에 의해서만 진정한 의미에서 성취될 수 있으며, 자기는 결단에 의해서만 생성될 수 있다

빌헬름 판사의 윤리적 실존
 결단이 부재하는 심미적 실존과 달리 윤리적 실존의 특징은 자기의 선택에 대한 결단이다.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자기는 자연적, 사회적 환경에 던져지고, 그것에 둘러싸인다. 그것은 현실이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지만, 실존자는 현재의 자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선택 이후의 자기와 선택 이전의 자기는 동일한 자기가 아니다. 자기는 자신의 선택으로 자기의식적인, 책임 있는 자기로 거듭난다. 책임 있는 자기는 선택과 더불어 현존한다.
 이제 자기는 현실에 끌려 다니거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키르케고르가 구체적 현실을 입고 그것에 보편성을 침투시킨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윤리적 실존을 대표하는 빌헬름 판사가 제시하는 윤리적 보편성의 사례는 결혼을 유지하고 지켜주는 사랑의 의무이다. 직접적 심미주의자는 찰나의 순간의 감성적 만족을 구할 뿐 배우자에게 변함없이 충실해야하는 사랑의 의무에는 무관심하다. 윤리주의자 역시 사랑의 감성적인 면을 알고 있지만 그의 사랑은 보편적인 의무가 수반된다. 사랑이 보편적 의무가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순간적 욕망에 지배되지 않는다. 하느님이 죽음으로 갈라놓을 때까지 배우자를 사랑하겠노라는 결혼 서약을 통해서 자기는 통일성을 성취한다. 자기는 더 이상 순간의 기분과 다양한 가능성으로 분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인 윤리적 의무에 적용될 수 있다. 욕망은 자기가 추구하는 윤리적 이상에 의해 통제된다. 자기는 윤리적 이상을 실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따름으로써 욕망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번에 성취되지 않는다. 따라서 윤리적 실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강하게 단련할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의 종교적 실존
 빌헬름 판사는 절대적 타자를 모른다. 그는 윤리적 질서와 신을 구별하지 않으며, 신과 인간의 절대적 동일성을 믿는다. 그러나 신과 인간 간에는 절대적 차이가 존재한다. 자기는 절대적인 목적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목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계해야 한다.
 창세기에서 신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 사악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이는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에 반하는 것이다. 이사악을 번제로 바치려 한 아브라함의 행위는 윤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윤리적으로 그는 아들을 죽이려 한 범죄자이다.
 아브라함은 결단을 통해 윤리적 의무를 무한히 체념하고 신에 대한 절대적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편적 세계를 넘어 하느님 앞에 홀로 섰다. 그의 이러한 비약은 언어로 이해될 수 없는 역설이다. 언어는 보편성을 뛰어넘는 개별자의 비약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종교적 실존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현실은 윤리성이다. 윤리적인 것은 뭇사람에게는 높은 이상으로 다가오지만, 그에게는 유혹일 뿐이다. 그는 이 유혹을 뿌리쳤기 때문에 보편성을 초월한 외톨이가 되었으며, 비약의 순간에 신과 그 사이에 오고 갔을 언어는 영원히 이해될 수 없는 언어로, 역설로 남는다.
 

임규정(군산대 철학과교수)

   
 

<필자소개>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세인트 올라프 대학키르케고르 도서관 객원 연구원 역임.
한국패션뷰티학회 상임이사, 범한철학회회장, 군산대학교문화사상연구소 소장.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키에르케고르의 사랑의 개념에 관한 일 고찰」, 「키에르케고르의 주체성의 지양과 죄책감 에 대한 고찰」,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 구조」등이 있고, 저서로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등이 있으며, 역서로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 『유혹자의 일기』(공역),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카사노바의 귀향』,『니체』, 반철학으로서의 철학 , 라틴아메리카 철학 , 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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