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세 가지 유형의 인간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권력을 추구하며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과학 기술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사회는 첫 번째 사람들로 인해 경제 성장을 이룩했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로 인해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세 번째 사람들 덕분에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왔다.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의 거의 다수가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뛰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돈과 경제, 권력과 정치, 기계와 기술은 꼭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곧 인생의 목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곧잘 불행하게 된다. 왜 이 돈이나 권력이나 기계와 기술이 사회나 인간의 삶에 어려움을 가져오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권력도 우리가 소유해야 하고, 기계와 기술도 특허를 받아 내가 소유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렇게 소유를 하다 보면 우리는 마치 소유가 인생의 목적인 듯 착각하게 된다. 우리는 돈을 위해 살다가 돈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된다. 정치권력을 찾아가다가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또한 과학 기술도 정치권력이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서 소유하고자 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의 핵 반대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는 결코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소유는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인생에는 목적이 있고,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찾고자 하며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이 있다. 돈이나 권력, 기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가시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물량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생의 목적을 정신적 가치에 두는 사람은 학문과 진리, 예술과 미의 가치, 도덕과 선의 가치를 추구한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 물량적 가치를 넘어 우리가 소유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세계의 진리를 추구한다. 돈이나 권력은 소유하며 없어지는 것이지만, 정신적 가치는 결코 소유할 수 없고 다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사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나 인도 등 그 당시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지만 현재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몇 안 되는 제자들을 데리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며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우리는 그를 만학의 아버지라 칭하며 2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저서를 읽으며 공부한다. 물리학, 윤리학, 철학, 기상학, 시학 등 우리가 학문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제일 큰 정치권력을 가졌던 알렉산더는 남겨 놓은 것이 없지만, 조용히 저술하며 거대한 정신세계를 책으로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는 2300년 동안 인류를 도와주고 정신적으로 지도를 해준 것이다.
정신적인 가치, 즉 학문적 가치나 예술적 가치는 매우 귀중한 가치라 할 수 있다. 시대를 넘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예술적 가치의 귀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나 괴테의 작품도 시대를 넘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 예술의 가치는 기업가의 가치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삼성그룹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이들의 작품은 정치적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 우리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학문과 예술의 가치는 경제적 혹은 정치적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경제와 같은 물량적 가치는 삶의 수단이지만, 학문이나 예술, 도덕적 가치는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역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삶의 목적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가치가 바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격, 개성의 가치이다. 이것은 절대로 그 자체의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 중의 목적이다.
이것은 가치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가치는 단지 수단만 되는 물량적인 가치, 수단도 되고 목적도 되는 정신적 가치,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인간적 가치 등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가치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는 우리 모두다. 이는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출발점으로 한다. 파스칼은 우주는 나를 생각할 수 없지만 나는 우주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우주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슈바이처 박사도 아프리카에서 평생 이러한 생명의 가치를 온몸으로 실현하며 살았다. 우리는 생명의 가치, 개성의 가치, 인격의 가치를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문학이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의 가치를 가장 높이 보는 것이다. 이는 학문 가운데 학문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인문학적 가치,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가치가 실현되어야 하며, 우리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장사를 하거나 기업을 해도 괜찮고, 정치를 하거나 그 무엇을 해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말이다. 내가 기업을 한다는 것 때문에, 내가 기술을 개발하는 것 때문에, 내가 교육자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내가 예술가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내가 학자가 되었다는 바로 그것 때문에, 즉 우리가 하는 일상의 어떤 일이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장사를 하거나 기업을 해도 돈을 많이 벌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의 록펠러가 부자였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행복해진 것처럼 우리가 무슨 직업을 가져도 좋고 무엇을 해도 좋은데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하고 있다고 하는 인생의 목적, 그것을 우리는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 어느 도시에 있는 동상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로스앤젤레스 부근 리버사이드시티라는 도시의 시청 앞 공원에 동상이 세 개가 있다. 맨 앞에는 마르틴 루터 킹의 동상이 있는데, 그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며 인권운동을 했다.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있다.
그곳에 어떻게, 왜 도산 선생의 동상이 있는 것일까?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미국에 건너간 그는 제일 처음 오렌지카운티라는 곳에 있는 오렌지 농원에서 노동을 하며 거기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 도시에서는 한국의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한국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분의 정신을 칭송하기 위해 동상을 세운 것이다. 그 뒤에는 인도의 간디 동상이 있다. 이 동상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동상들이다. 그 마음의 동상은 왜 생겼을까? 마틴루터 킹은 정말 흑인을 사랑했고, 도산은 누구보다도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가졌으며, 간디는 정말 인도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 사랑의 열매가 세 개의 동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인간 마음의 동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인간 삶의 목적이라고 하는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민족이나 국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나 자신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와 자기 가정만 걱정하면서 살게 되면 그 가정만큼 밖에 커지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같은 사람이 내 직장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서 살게 되면 그 직장과 지역사회만큼 커질 수 있다. 같은 사람이 항상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게 되면 그 사람은 민족과 국가의 지도자로 커질 수 있다. 그것이 평생 내게는 간단하지만 가장 큰 교훈이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이와 같은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 큰일을하겠다고 욕심내지 말고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며,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귀중한 과제일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하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을 위해,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삶, 그것을 원광대학교의 학생들이 먼저 실천해서 학생 여러분의 인생을 귀하게 만들고 또 우리가 보람 있는 역사를 가꾸는데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
<필자소개>
일본 상지대학 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연구교수 역임
현재 연세대 명예교수
저서로 철학입문 , 철학개론 , 윤리학 , 헤겔과
그의 철학 , 종교의 철학적 이해 , 역사철학 , 모두를
위한 서양철학사 등의 연구서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면 , 인생이여, 행복하라 , 세월은 흘러도 그리움
을 남기고 , 인생, 사랑의 나무를 키워가는 것 등의 수
필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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