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영원한 동시대인 셰익스피어: "a writer of all ages"

 영국의 르네상스기(Renaissance)인 16세기가 낳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2)는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에 속한 작가"라고 평가된다. 400년이 지난 오늘날은 물론이고, 어느 시대이고 셰익스피어가 동시대인으로서 감동과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유는무엇일까? 그는 실제인물이라기 보다는 영국이 꾸며낸 한 신화적인 인물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갈 정도로, 그가 남긴 빼어난 시들--두 편의 장시와 50여 편의 소네트(sonnet)--외에도 지구를 몇 바퀴 돈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통찰력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는 극들을 서른 여덟편이나 남겼다.

 엘리자베스(Elizabethan) 시대가 추구하는 시대정신은 두 가지 상반된 가치관을 동시에 표방하고 있다. 하나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중 일인자인 말로우(Christopher Marlowe)의 대표작 파우스투스 박사 (Dr. Faustus)가 제시해 주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영웅상의 추구로서 '저 깊고 어두운 우주의 마지막 영역'까지 탐색해 내고자 무한히 손을 뻗으려는 열망이요, 또 하나는 아카디아(Arcadia)적인 이상으로서 "바위에서 설교를 듣고 흐르는 시내에서 책을 구하며 목동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목동과 목녀들의 전원생활을 찬양하는 자세이다.

 셰익스피어 극이 상연되던 극장은 여왕으로부터 모든 계층의 인물들이 한자리에서 관극하던 진정한 의미의 공설극장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특정 관객층의 기호에 극을 맞추려는 노력이 강요되지 않은 채 작가로서의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한편, 전 계층의 인간 모두를 포용하며 인간 각자의 영혼에 호응할 극을 제시해 주어야 할 무한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오직 상연을 목적으로 극을 썼고, 그의 극이 올려진 무대는 거의 빈 무대로서 비특정적인 무대는 중립적이며 유동성을 띤다. 관객석 복판으로 튀어나온 네모난 널빤지의 플랫폼과, 이 플랫폼 무대 뒤로 난 두 개의 문과 그 위에 자리한 발코니와 같은 연기 공간. 배우의 대사에 따라 무대는 요정의 장난으로 관계가 엉망진창이 된 두 쌍의 연인들이 쫓고 쫓기다 지쳐 잠드는 달빛 쏟아지는 숲도 될 수 있고, 폭풍치는 외딴 섬도 될 수 있으며,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속에서 고뇌하는 햄릿 왕자가 감옥처럼 느끼던 엘시노어 궁전도 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한 말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영어의 가능성을 가장 확장시켜주었던 작가로도 평가된다.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이 행위 하는 방식과, 인간경험의 현실(reality)을 탐색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이 복잡하므로(complex) 그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고, 개인적인 충동들과 열정들이 한 사회의 조화와 이상의 실현을 어떻게 방해하고 뒤흔드는지를 인식시켜 준다. 그는 결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의 길인가에 대해 설교하는 법이 없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떤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위 할 수 있고, 행위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다.한 편의 극이 끝날 때, 관객들은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과, 선택들과 어려움들에 대한 증대된 인식을 배우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중세세계가 현대세계로 자리를 물려주는 커다란 문화적인 전이를 맞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토지에 토대를 둔 봉건적인 경제체제가 쇠락하는 동시에, 화폐 경제체제가 부상하면서, 교역과 상업에 토대를 둔 새로운 종류의 역동적인 사회가 등장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덜 친숙하고, 보다 더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극들 전반에는 어떤 전통적인 질서가 찢겨 나가고 있음에 대한 의식이 깔려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질서와 상충하고 있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라는 새로운 정신에 대한 지각을 드러내고있다. 모두가 하느님(God)을 믿으며 세계 속에서의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그러한 기존 세계로부터, 이제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인상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로 분류되는 동시에 '초기현대(early modern) 로도'분류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이러한 전이기로서 복합성(complexity), 다양성(variety), 비일관성(inconsistency), 유동
성(fluidity)으로 요약되는 특기할 만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여러 시대를 넘어서서 전이적인 성격을 띤 채, 분기되고 구별되는 세계들을 혼합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시대는 무수한 재평가들과 전복들을 목격했다. 이 시대의 가장 애호되는 은유는, '거꾸로 뒤집혀진 세상 (the worldupside down)'이었고, 『햄릿』과 같은 핵심적인 르네상스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는 어법은 의문형이었다.

 II. 『햄릿』읽기: 만인의 모습, 햄릿

  『햄릿』(Hamlet, 1601) 은 셰익스피어의 극작 과정 4기 중 본격적인 비극기라고 할 수 있는 3기에 나왔던, 원숙한 위대한 비극인 4대 비극 중 하나다. 햄릿은 서사적이고 신비로우며 비극적인 인물로서, 서양 유산의 일부가 되어 버린 아담(Adam)이나, 파우스트(Faust)같은 인물만큼이나 잘 알려졌다. 그는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던 젊은이", "세상을 바로 잡아야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끼는 인간", "그가 수행해야하는 막중한 사명 때문에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포기하는 연인", "미친 세계와 싸워내기 위해서 미친 척 해야 하는 자",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없는 인간"의 모델이 되고 있다. 햄릿은 이 모두이며, 만인(everyman)의 모습이기도 하다.

 햄릿은 폭력적인 정치 행위의 세계 속에서의 지성인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서 나왔던 『줄리어스 씨저』(Julius Ceasar, 1599)가 그 서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극의 서두에서 최근에 죽은 햄릿의 선친의 유령이 등장해서 간음과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햄릿에게 클로디우스에게 복수하되, 어머니 거투르드는 양심과 하늘에 맡길 것을 명한다. 햄릿은 이 명을 지상과업으로 열렬히 받아들이고, 다음엔—엄청난 범위의 이 과업에 위축되며 탄식한다. "사개가 물러난 시대여! 오 기구한 팔자로다, 이것을 바로 잡도록 태어난 나는!" (1막, 5장 188-9행)

 새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을 맞이하는 활기찬 궁중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검은 상복을 입은 햄릿의 겉모습은 그의 소외와 함께 다른 궁정인들 과의 대조를 부각시키며, 그가 취하는 미친 자의 모습은 그의 소외를 더욱 부각시킨다.

 과연 유령의 정체는 무엇인가? 햄릿의 영혼의 파멸을 부추기려고 하는 악마인가? 햄릿은 자신의 자살을 막는 것도, 저 위대한 과업들의 수행을 막는 것도 양심 이라고 뇌까린다. 햄릿은 국왕살해를 내용으로 한 무언극 <곤자고의 살인>을 연출하고, 연극을 본 클로디우스의 반응을 통해 유령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한다. 햄릿이 유령의 말의 진실성을 확신한 후 잇달아 나타난 행위는 이 극의 핵심적인 아이러니를 부각시킨다. 햄릿은 홀로 기도하고 있는 왕을 발견할 때, 그를 살려 두고는 왕비의 방 방장 뒤에서 자신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고 생각한 재상 폴로니우스를 가차 없이 칼로 찔러 죽인다. 햄릿이 자신이 저지른 이 우연한 살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는 비정상적이라 할 만하다. 그는 발치에 죽은 시체를 놔둔 채, 어머니를 질책하고 비난하기를 계속한다. 이 격렬한 질책은 복수에 대한 햄릿의 열정을 고갈시키는 듯이 보이며, 그는 왕이 자신을 영국으로 보내는 행위를 실행하도록 허용한다.

 그 후 햄릿은 신의 손길의 개입이라고 믿는 일련의 기이한 사건들에 의해서 덴마크로 돌아오게 된다. 이제 그는 클로디우스를 벌하여 사회의 정화를 실현하라는 임무가 주어졌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사건들을 조직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몫이 아니라, 하늘의 인도임을 깨닫고, 이를 받아들인다. 햄릿은 묻는다. "이 팔로 그를 제거하는 것이 온전한 양심인가? 또한 우리 인간을 갉아 먹는 벌레를 방치하여 더한 악을 초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정죄 받을 일이 아니란 말인가?" (5막 2장 67-9행) 과연 햄릿은 어떻게 하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으로 복수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그러나 폴로니우스의 아들이자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는 햄릿의 경우보다 더 신속한 복수자로서, 햄릿이 클로디우스를 죽이기 전에 햄릿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가한다. 외국인인 포틴브라스가, 햄릿이 찬탈자로부터 정화하려고 그리도 애썼던 왕국을 물려받는다. 이 왕국의 상실은 오필리아의 광기와 죽음과 함께, 햄릿의 행위와 동시에 비행위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소로서 오고 있는 듯이 보인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사대비극을 포함한 정전들 가운데 가장 수수께끼와 같은 극으로서, 거의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어떤 연구도 그 신비의 핵심에 도달하고 있지않다. "왜 햄릿은 지체하는가?"라는 전통적인 물음은 여전히 대답을 요구하고 있으며, 금세기는 "과연 햄릿은 복수를 했어야 하는가"라는 부가된 물음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질문들은 서로 연관된 것이고, 이 질문들은 "복수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제 3의 질문을 촉진한다.

 엘리자베스왕조의 복수비극의 전통은 인간적이고 신적인 정의—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에 관한 심오하고도 어려운 질문들을 부과하는 방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햄릿의 복수 결단은 의심과 불확실성에 의해 휩싸여 있으며 바로 이 점이 그가 지체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햄릿에서 '복수'는 정의와, 올바른 상속과, 도덕적인 분별, 악의 처벌, 사회와 신의 의지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 되고 있다. 햄릿이 재빨리 단호하게 행동했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경시하는 것이 된다. 또한 그가 행위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극이 불투명하게나마 악이라고 진술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된다. 햄릿이 유령에게 던지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결코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물음인 것이다.

김한 교수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필자소개>
·이화여대 영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미국 University of La Verne 대학원 영문과 졸업.
·Cambridge University, London University와 Kings College 객원 교수 역임, Birmingham University의 Shakespeare Institute 방문 교수 역임.
현재 Folger Shakespeare Library(미국 Washington D.C. 소재) 연구교수 이며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로 재직
·주요 저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인간과 세상 이야기』외『영미극작가론』, 『셰익스피어
작품해설 II』, 『영국 르네상드라마의 세계 II , 『그리스로마극의 세계 I』과,『대성당의 살인 』,『셰익스피어 비평연구』, 『샬롯테의 거미줄』등의 역서, 그리고 창작동화 『새로 쓴 개미와 베짱이』등 다수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