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새천년관에서 열린 '제26회 열린 정신 포럼'의 발제 내용을 재정리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문화 컨텐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전통학문과 컴퓨터 공학의 만남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이날 포럼의 발제는 한신대 유동환 교수가 맡았으며, 100여 명의 교수 및 학생이 참가했다.

 본 강연은 컴퓨터 공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미 그 지점에 디지털(Digital)이라는 기술과 멀티미디어(Multimedia)라는 형식(또는 양상) 그리고 컨텐츠(Contents)라는 내용의 총화가 먼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 강연은 무한히 복제하고 융합하고 가로지르며 자기 증식하는 이 새로운 양식과 인문학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및고 있으며, 또한 이 두 영역,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혹은 인문학)가 서로의 속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컴퓨터 공학과 인문학이 이루어 내는 것의 내용을 우리는 컨텐츠라고 부를 수 있다. 본 강연의 궁극적인 주제가 내용을 이루는 문제-컨텐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문학이 디지털 멀티미디어 혹은 컴퓨터 공학기술에 기여하는 바와 더 나아가 인문학이 이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컨텐츠-내용이라는 개념이 많은 부분을 함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가장 첫 번째로 다가오는 문제는 인문학은 과연 상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학교와 기업은 어떤 관계인가?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질문 앞에서 상당히 곤혹스러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가 발전적이고 건전한 것이라면 인문학자들은 '죽여주는(Killer)'이라는 형용사를 동원하여 학교와 기업의 관계를 정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컨텐츠라는 개념이 비록 기술의 내용을 이루는 하나의 상품이나 혹은 그 형식으로서 정의 내려지고 발전되더라도 그것은 (컨텐츠가) 인문학적 요소를 배격할 때 가장 커다란 실패를 맛 볼 수밖에 없다. 컨텐츠는 이미 '누구나'가 아니라 '나만'이 누리는 경험(eXPerience)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XP를 상기하자).

 이미 인간적이며 사소한 가치가 상품으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죽여주는 이라는 말을 동원하여 컨텐츠, 더 나아가 죽여주는 컨텐츠(Killer Content)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죽여주는 컨텐츠란 무엇인가? 죽여주는 컨텐츠는 바꿔 말하자면 죽여주는 경험이다. 이것은 자극에 반응하는 '개인'적인 사건이며 '상호작용'을 통해 유도되는 것이다. 또한 남과 같이 않은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다(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리니지'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이들이 확보하는 아이템과 그 다양한 아이템에서 쏟아지는 그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이로써 우리는 막연히 디지털화 된 것, 즉 전자신호로 깜박이는 자동기계와 컨텐츠를 한 묶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다각화 된 현대의 문화적·사회적 지평 위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파편화 되고 끝없이 다양함이 구상되며 자유자제로 영역을 횡단하는 현대적 양상은 한 개인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또한 그 공간은 함부로 축소되거나 침해되거나 사용자에게 너무 쉽게 함락당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이해된다.

 컨텐츠의 기획과 구상에 내재하는 인문학적 문제들은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공학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인문학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컨텐츠 인문학적 요소 배격했을 때 '실패'


  죽여주는 컨텐츠란 '죽여주는 경험'


  전통학문의 가치 무차별적 상품화 경계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미 컨텐츠는 경험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영역이다. 이는 물론 휴대전화, PDA, 디지털카메라 등 개인 정보단말기 등의 활용을 통해 정보의 재생산을 이루고, 시공을 넘나들며 체험하고 재현해내는 기술들을 통해 더더욱 확장된다.

 이러한 다채로운 감각 정보와 개인성의 융합이 가져오는 여러 양상들에 인문학적 기여는 더더욱 절실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현대의 기술과 인문학(전통학문)은 어떠한 접점에서 만나게 되며 어떠한 시너지를 내고 있는가.

 만약 논의되는 문제가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경험의 기획과 보존 그리고 재현에 있다면 지금의 기술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즉 보편적인 것을 갈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대표하는 것으로써 문화원형을 복원하고 발굴해 내는 작업들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고 생각된다.

 실제적인 예로써 <반지의 제왕>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100여 명의 스토리텔러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지금의 컨텐츠 구상이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지는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무대예술 혹은 공연미술의 영역에 남아있었을 법한 스크랩터의 규모는 이제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분명히 기술적인 문제 밖에 있지만, 문화 원형을 찾아서 발굴하고 새롭게 조합해 내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컨텐츠 구상이라는 문제 앞에서, 바꿔 말하자면 컴퓨터공학 내지는 정보통신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각 영역의 건전한 문제의식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전통학문의 영역에서 현대의 과학과 기술에 관한 문제를 사유하지 않고 그것을 꺼리거나, 기술의 영역에서 전통학문의 가치를 무차별하게 상품화 하는 경향을 보일 때 얼마나 재앙스런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전통학문의 변화와 모색, 그리고 (본 강연에서는 꾸준히 논의의 밖에 있는 문제였겠지만) 공학 기술의 영역에서 가져야 하는 윤리적·인문학적 소양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리 : 서 덕 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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