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학은 현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과학 기술 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안에는 알게 모르게 전통사상이 들어와 있다. 전통사상을 돌아보려는 까닭이 여기 있다.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전통사상 가운데 특히 한국 유학이다. 여기에서는 한국 유학 사상이 현대의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성찰해보고자 한다. 한국 유학사상은 지나간 사상으로서 약점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유용한 보편적 내용도 적지 않다. 우리는 한국유학 사상 가운데 다른 나라 유학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상이 어떤 것이지 먼저 알아보고, 그 현대적 가치를 밝히고자 한다.
 
 유학의 핵심원리는 '인(仁, 사랑)'이다
 
 한국 유학을 근본적으로 유학의 범주에 들게 하는 것은 한국 유학에 깃든 보편적 원리일 것이다. 유학의 기본원리는 공자(孔子)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맹자에 이르러"인 · 의 · 예 · 지(사덕(四德))로 정리되었다.
 이후 사덕에 신(信)을 더해 오상(五常 또는 五性)이 유학을 유학이게끔 하는 원리가 되었다. 이 원리 가운데 가장 핵심적 원리는 '인(仁)'이다. 이러한 유학의 원리는 조선에서 주로 정치와 윤리의 영역에서 발현되며 발전되었다. 여기에서는 주로 이 두 영역에서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 유학은 인정(仁政)에서 출발한다
 
 인(仁)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인정(仁政)'이다. 인정이야말로 공자의 덕치 예치를 포괄한 정치형태이다. 공자는 "정치란 곧 바로잡음(정자정야(政者正也))"이라고 규정하며 이 점을 강조했고, "사람을 사랑하는(애인(愛人))" 가족윤리와 호의적 배려라는 보편적 인류애의 실현을 주장했다.
 한국 유학에서도 인정은 국민을 자신의 아이(赤子)처럼 사랑하는 애민(愛民) 정신, 즉 민본(民本) 위민(爲民) 정치로 연결된다. 인정에서 왕은 통치의 권리와 임무를 신하들과 분담했다(共治). 신권은 제왕의 전횡과 독재를 제어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민본 위민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홍문관(弘文館),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 등 삼사(三司) 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에서는 제왕의 전횡과 독재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어느 나라보다도 잘 발달했다. 이러한 제도는 관리들의 부정, 부패, 비리를 감찰하고 응징하며, 왕의 정책과 정견의 불합리와 부적합을 시정하는 간언을 하도록 했다. 이런 제도적 장치는 유학권 국가에서 오직 조선에서만 잘 발달되었던 것이다.
 이와 아울러 조선시대 민본 위민 정치 구현에는 특히 '선비(士人) 정신'이 크게 작용했다. 15-16세기의 사림정치(士林政治), 즉 선비에 의한 정치는 조광조나 이이에게서 볼 수 있듯이 언로(민의 존중이나 공론)를 강조하고, 서얼제도나 노비제 등의 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17세기 실학자들은 양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토지제, 세제 등 각종 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유형원(柳馨遠)은 노비제 폐지를 제기했고, 정약용(丁若鏞)은 농토를 공용화하는 여전제(閭田制)와 아울러 통치자의 국민에 의한 선출과 폐출까지 언급했다. 조선시대 인정의 정치이념에는 노비제 폐지와 같은 인권평등사상, 공론제와 같은 여론의 강조, 통치자 선출과 같은 민주주의의 싹이 들어 있다.
 
 한국의 유학에는 의(義)의 정신이 있다
 
 한국의 유학에는 제왕에 대한 신하의 충성(忠誠), 더 나아가 왕조(王朝) 및 왕통(王統)에 대한 충성의식이 담겨 있다.'절의행(節義行)'이라고 불리는 선비들의 의(義)의 가치 구현은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즉 임진왜란(1592-98)과 일제의 조선 강점기(1910) '의병(義兵)의 활약'으로 드러났다.
 유학자들은 외적이 침입했을 때 대부분 제왕의 보위를 중시했는데(근왕정신(勤王精神)), 그렇지 않은 의병장도 나왔다. 임란시기의 경상도 의병장 박광전(朴光前)이나 일제 강점기 장성에서 궐기한 기삼연(奇參衍)은 생민(生民)의 호위를 강조했다. 이런 겨레의식은 후일 독립운동가인 박은식(朴殷植)과 신채호(申采浩) 등에 이르러'민족주의 의식'으로 이어졌다.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형성시킨 데에는 의병장으로 목숨을 바친 선비들의 의로운 기개와 겨레 방어 의식이 스며있다. 우리의 민족주의 정신에는 민족의 자기방어와 자기보존의식이 강할 뿐, 서구 민족주의가 지닌 자기 팽창을 위한 타민족 침략의 성향은 전무하다. 의(義)의 사상에는 인류와 공생하고 공영하고자 하는 인애(仁愛)의 관념이 짝하고 있다.
 
 한국 유학에서는 예치가 실현되었다

 조선조는 건국 초기부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오륜도(五倫圖)〉의 보급과 아울러,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통해 국가례를 확정, 시행했다. 조선시대에 예를 강조하는 『소학(小學)』은 공무원의 자격을 결정지었다. 양반 지배층에서 예는 생계와 출세를 결정짓는 요건이었고, 그런 만큼 예에 대한 지식과 실천은 철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회 환경은 17세기를'예학시대(禮學時代)'로 만들었다. 성리학자들은 예를 총정리하고 세목화했고, 더 나아가 예를 교조적으로 신봉하고 절대시했다. 인간 개인을 평가(小人 大人)하는 기준이 예였고, 당쟁까지도 예를 가지고 했다. 두 차례(현종1년 1660, 현종15년 1674)에 걸친 복상론쟁(服喪論爭)인 '예송(禮訟)'이 바로 그것이다. 이토록 예를 중요시한 나머지 정치에 철저히 이용한 사례는 동아시아 유학권의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예송은 한국유학에서만 찾아지는 예치의 극점에 해당한다. 일본이 사무라이정치(무단정치)를 하고, 중국은 명말 환관정치를 했던 반면, 조선의 유학자들은 명분론과 예치를 통해 정치를 했던 것이다. 비록 예치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예는 사회에 질서를 가져오고 인간의 품격을 높여주는 고급문화를 지향하고자 한 요소였다.
 
 한국 유학에는 권선징악의 성리학적 응보설이 담겨있다
 
 한국 유학에는 유학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윤리사상이 있다. 정도전(鄭道傳)의 '성리학적 응보설'이 그것이다.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한 역성혁명의 주역이자 불교시대를 성리학시대로 전환시킨 사상가였다. 그는 고려의 국교인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으로 조선의 통치원리를 삼았다.
 그의 불교 비판은 극락(極樂)에 대한 신앙, 가환(假幻)·공무(空無)의 세계관, 윤회설(輪廻說), 연기설(緣起說), 인과설(因果說) 등 무려 19개 항목에 걸친다. 그러나 그는'응보설(應報說)'에 대해서는 명시적 비판을 하지 않았다. 유학에도'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사상 등 응보의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응보의 원리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난제에 부딪히긴 했어도 그는 이기(理氣)의 개념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타력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자력 또는 자율(自律)로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 유학의 윤리이론으로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이 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이에 18년간 지속되었던 이 철학적 논쟁은 한국유학의 윤리이론에 관한 담론으로, 19세기까지 이어지며 200여 년간 지속된 철학적 논쟁이다. 
 사단(四端)이란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또는 恭敬), 시비(是非)라는 4가지 마음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드러나는 단서이다. 칠정(七情)은 희노애구애오욕(喜怒愛懼哀惡欲)을 가리킨다.
 사단에 주목하는 태도는 인간의 행위에서 선한 본성, 곧 덕성(德性)의 자연적 발현에 근거하는 덕성윤리설(德性倫理說)의 계통이며, 칠정에 주목하는 사고는 정(情)을 조정하거나 제어해야 한다는 의무윤리설(義務倫理說)의 계통이다.
 이 두 윤리설에 대한 철학적 논변과 심성에 관한 연구는 중국학계의 연구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한국 성리학의 독특한 이론을 보여주었다.  
 
 인성물성 동이(同異)에 대한 논변
 18세기에 발흥된 '인성물성의 동이에 대한 연구' 또한 한국 성리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18세기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에서 5년 이상의 논변을 거치고, 호서지방을 중심으로 학계에 파급되어 19세기 말까지 1세기 반 이상을 탐구한 주제이다. 이 문제는 인간과 금수가 지닌 본성이 서로 같으냐 다르냐를 따지는 것이었다.
 오상(五常,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본성의 관계, 마음의 본성, 그리고 인간과 타물의 구분 등의 논의는 인간의 본성개념에 대한 깊은 철학적 논의를 야기한 것이다. 이는 또한 덕성윤리의 문제를 깊게 파고들어간 것이기도 하다.
 
 한국 유학에는 성리학적 심즉리설이 있다
 
 한국유학에 깃든 독특한 이론으로 18세기 기정진(奇正鎭)의 리 일원론적 우주관과 19세기 이진상(李震相)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이 있다. 심과 리의 주재를 전제로 이진상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은 한국 성리학이 중국 양명학(陽明學)과 대응하는 점에서 동아시아 전체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크다. 이진상은 도덕적 행위란 배우고 힘써야 제대로 행할 수 있지 저절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본 이황의 계통에 속하는 학자로 사욕을 절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심과 리의 주재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 유학자들은 중국 유학의 수준을 넘어서는 연구 업적을 많이 냈다. 그들의 사변력, 통찰력, 변별력, 창의력은 어느 나라 학자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들의 업적들에서 우리는 현대에 유용한 많은 지혜를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윤사순 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소개>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와세다대학 연구교수 역임
 ·한국공자학회 회장, 한국동양철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등 역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명예교수, 곡부(曲阜) 사범대학 객원교수, 국제유학연합회(중국) 상임이사로 활동
 ·주요 저서로 『퇴계철학의 연구』(한·영), 『한국유학논구』(한·중), 『한국의 성리학과 실학』, 『동양사상과 한국사상』, 『신실학 사상론』, 『조선시대 성리학의 연구』, 『퇴계선집』, 『경연일기』, 『사단칠정론』,『인성물성론』, 『공자사상의 발견』, 『신실학의 탐구』, 『조선유학의 자연철학』, 『실학의 철학』, 『도설로 본 조선유학』, 『자료와 해설 : 한국의 철학사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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