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 왜 추(醜)를 논하는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소변으로 만든 그림을 왜 많은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길에 버려진 쓰레기와 폐품으로 만든 작품들에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는가?
 카를 로젠크란츠(Johann Karl Friedrich Rosenkranz, 1805-1879)는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이 같은 유의 질문을 일찍이 19세기 중엽에 그의 1853년 저술, 『추의 미학 Aesthetik des Hasslichen, Aesthetic of Ugliness』에서 제기했다. 당시까지 '추(醜)'는 철학의 영역에서 종종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미학과 예술학에서 흔히 '악'과 결부되는 개념이었고, 드러내놓고 학문의 명제로 삼는 것이 거의 금기시되던 시기였다.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에서 아름다운 것만이 진과 선과의 관계 안에서 논해지는 전통적 사고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추를 미와의 변증법적 논리 속에서 파악하면서 부정적인 미로서의 추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미학에 정립시켰다. 그는 미학, 철학 뿐 아니라, 신학, 교육학, 심리학, 문학, 그리고 정치사회 영역과 회화, 음악, 건축 등 문화예술 영역을 폭넓게 아우르며 '자연의 추', '정신의 추', '예술의 추'를 논했고, '미'와 '추'의 불가분한 관계를 역설했다.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250편의 논문과 65개의 저서를 남긴 로젠크란츠의 대표적 저술인 『추의 미학』은 19세기 중반에 도시화, 산업화, 대중화, 부유층과 무산계급의 양극화로 급변하던 유럽사회에서 표면화된 온갖 '추하고 악한' 것으로 간주된 현상들에 상응하는 논조를 펼친다. 또한 이러한 현상들을 여러 '비전통적·비주류적' 방법론들, 곧 '부정확, 부조화, 천박, 비속, 졸렬, 혐오' 등 방식으로 표출한 다양한 문화예술과 맥락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오늘도 계속되는 '추한' 사회적·정치적 양상, 그리고 이를 온갖 형태로 표출해 내는 전지구적 문화적·예술적 '추'의 양상에 직면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을 제기한다.
 
 ◆ 『추의 미학』의 배경
 
 헤겔학파로 불리는 로젠크란츠는 1826년부터 할레대학에서 헤겔철학을 계승하고 1831년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1834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철학 정교수로 초빙된 후 1879년까지 40년 이상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퍼진 사회적·정치적 혁명과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헤겔철학을 재해석하고 자신의 사상을 정립했다. 헤겔학파 소장학자들은 시대적 상황 및 낭만주의 사조와 보조를 맞추어 부조화, 불균형, 부조리, 우연성, 추와 같은 제 양상들을 논제에 수용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추의 미학』은 출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긍정적 평가와 아울러서 부정적인 비판을 양산해내고 있다.
 로젠크란츠는 기존에 미(美)를 논하는 분야로 인지되었던 미학에서 추(醜)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자신의 시도에 대한 비판, 그리고 '추(醜)의 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모순을 내포한다는 비난에 대해 이렇게 대응했다. "추(醜)의 미학이라고? 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  미의 이념을 분석하게 되면 그것과 추에 대한 연구는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부정적 미로서 추라는 개념은 미학의 일부를 이룬다.…… 그러므로 추의 미학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옳다."(pp.9-10, 이하 본문 인용은 조경식 역, 『추의 미학』, 나남출판사, 2010을 기준으로 함) 『추의 미학』이 추의 방대한 개념을 학문적으로 분석·정립한 최초의 저술로서 평가되지만, 로젠크란츠 이전에도 추에 대한 산발적인 논의들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보나벤투라의 『명제집 주해』, 칸트의 『판단력 비판』, 졸거의 『에르빈』, 바이쎄의 『미의 이념의 학으로서의 미학의 체계』 등 저술에서 추의 개념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언급되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의 역사』와 아울러서 출간된 『추의 역사』(2007)에서 '추하다'고 간주되는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적·언어적 기록과 자료를 집대성하여 추가 유서 깊은 역사를 지녔음을 논증했다.
 역사적으로 추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시도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추를 미의 부재 혹은 결핍으로 정의한다.
 둘째, 추와 미는 동등한 미학적 가치를 지니는 저울의 두 추와 같다.
 셋째, 추는 완전한 미의 실현을 위한 변증법적 과정의 단계로서, 미의 부정적 측면이다.
 넷째, 추와 미는 서로 독립적인 개념이지만 어떤 콘텍스트에서는 피차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로젠크란츠는 세 번째 견해를 대변하는 인물로 분류된다. 미의 개념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추에 대한 탐구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한 그는 자연, 삶, 정신, 예술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범위에서 수많은 예시들을 이용하여 논조를 펼쳤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추의 개념을 미의 개념과 코믹(골계 (滑稽), Das Komische)의 개념 사이 한가운데에 위치시키는 흥미로운 입장을 취한다. 현대적 시각에서는 의아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19세기 중엽 사회 전반에 범람하는 온갖 '추'한 현상들을 목도한 그는 추를 동시대적 현상으로 파악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라파엘로 같은 작가의 작품이 전통적으로 완벽한 미의 구현으로 간주된 것에 대해, 그는 동시대에 유행하던 코믹한 사회적·정치적 풍자화와 캐리커처를 그 정반대 극으로 보았다. "어떻게 추가 미를 실제로 전제하고 있으며, 미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과정을 논하면서, 그는 미와 추의 대립적인 속성으로서 '숭고함 vs. 비열함', '만족(호감) vs. 역겨움', '이상 vs. 풍자'와 같은 이분법적 논지를 제시한다.
 로젠크란츠의 추의 개념은 현대적인 추의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오늘날 추는 일반적으로 추 자체로서 미학적 가치를 지니는 독자적·자율적인 개념으로 파악되지만, 당시대적 제한 안에 있던 로젠크란츠에게 추는 미와 분리될 수 없는 미의 종속 개념, 미의 부정적 개념이었다. 곧 헤겔식의 변증법적 사고의 총체적이고 완벽한 미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미의 부정으로서만 존재하는 개념이었다. 미가 존재하지 않으면 추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 『추의 미학』의 내용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에서 "추의 개념을 그 최초의 시작단계로부터 사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완벽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전개시켰다"(p.10)고 주장하고, 자신의 글에 대해 괴테의 말을 빌려서, "이리 와라. 나를 따라 저 어둠의 제국으로 내려가자"(p.19)고 제시한다. 그는 단테나 미켈란젤로 같은 작가들이 "전율이 일어나는 악의 심연으로 내려가서 자신들이 조우하는 무시무시한 형상들"을 문학과 미술을 통해 표현했듯이, "지옥은 종교적·윤리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미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추(醜)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선언한다. 이 추의 복합성과 다양성은 "기형, 괴상한 형태, 비열함과 혐오의 공포" 같은 초기단계부터, "지옥의 사악함이 이빨을 내보이며 우리에게 미소 짓는 저 거대한 기괴함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형태"로 나타난다. 그가 함께 내려가기를 제시하는 "미의 지옥"은 "악의 지옥, 현실의 지옥"으로 내려가지 않고는 보기 불가능한, 서로 긴밀하게 결부된 세계이다. 곧 그에게 있어서 예술이 표현하는 추는 우리 현실 세계의 추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몫"의 "지옥의 고통"을 갖고 있고, 우리의 감정, 눈, 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지옥과 만난다. 특히 "교양을 쌓은 사람"은 이 '미의 지옥, 악의 지옥, 현실의 지옥'으로 인해 종종 "말로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는 "기괴한 형상과 추한 형상"이 수천가지 모양새로 "보다 고귀한 감각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 때문"이다.(p.19-20)
 로젠크란츠는 추의 다양한 모양새를 먼저 자연의 추, 정신의 추, 예술의 추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온갖 종류의 불완전한 것, 부정적인 것, 악한 것, 악마적인 것, 보기 흉한 것, 끔찍한 것, 비속한 것, 조야한 것 같은 추의 양상들이 예증들을 통해 논해진다. 숭고, 장엄, 호감으로 표현되는 '절대 미'를 해체함으로써 캐리캐처에까지 이르게 하는, 즉 미의 부정적 개념인 추의 속성에 대해 그는 크게 다음 세 영역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이 부분이 『추의 미학』 전체의 약 80%(번역본의 약 360페이지 분량)에 해당될 정도로 상세한 설명과 예증을 포함한다. 추상적 개념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예술작품의 실례를 통해 구체적인 속성으로 파악될 수 있는 부분이다.
 첫째, 몰형식성(沒形式性, 형태 없음)이다. 비통일성과 비규정성을 드러내는 몰형식성은 1. 무정형(무형태), 2. 비대칭(불균형), 3. 부조화로 구분된다.
 둘째, 부정확성(不正確性)이다. 이는 코믹(골계)의 원천이 되며 1. 보편적 의미에서 2. 특수한 양식에서 3. 개별 예술에서의 부정확성으로 세분된다.
 셋째, 기형 (왜곡 (歪曲), 혹은 변형)이다. '진정한 미를 생산하는 자유'의 결핍, 곧 부자유로부터 나오는 기형은 1. 천박함(비속), 2. 역겨움(혐오), 3. 캐리커처로 논의된다.
 로젠크란츠의 이론은 오늘날 현대 예술의 제 영역에서 반론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당시 미학·예술학계에서 뒷전에 머물던 추의 위치를 표면화하여 확고하게 굳힌 역할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노력은 이후 보들레르의 『악의 꽃』(1857) 같은 저술과 모더니즘을 통해 뿌리를 내렸고, 우리로 하여금 선입견과 편견 없이 '추'라고 흔히 간주되는 것들의 복합성과 다양성,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할 수 있다.
  조은영 교수(미술과)
 <필자 소개>
 · 미국 델라웨어 대학(University of Delaware) 미술사학 석사·박사.
 ·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평생교육원 원장.
 · 미국 국립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연구원/국제학술자문위원,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미국 하버드대학 미국문화·문학특강시리즈 강사 역임.
 · 현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미국미술 자문위원, 익산시여성회관 관장.
 · 저서로 『East West Interchanges in American Art: A Long and Tumultuous Relationship』(공저)과 논문으로 「미국 시각문화 속의 서태후: 후기식민주의 시각으로 본 재현의 정치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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