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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에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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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09  20: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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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루소의 삶과 『에밀』
   
 

 『에밀』을 읽으려는 독자들은 우선 저자가 5명의 자식들을 모두 고아원에 버렸다는 사실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어떻게 자신의 아이들을 직접 키우기를 거부한 사람이 교육에 대해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계몽주의 시대를 이끌어가던 거장 볼테르는 루소의 삶과 글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들어 그를 지적 사기꾼이라고 격렬히 비난한 바 있는데, 정말 루소는 도덕적으로 볼 때 추잡한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루소는 이러한 의심에 대해 '나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내 작품을 읽으시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대로 그의 진면목을 알려면 속는 셈 치고서라도 그의 작품을 읽어 볼 일이다.

 교육은 자연적 본성의 개발

 『에밀』은 여러 측면에서 혁명적인 작품인데, 우선 교육의 대상과 목적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원죄를 강조하는 기독교에서 교육이란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억압하고 그리스도의 모방을 통해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한편 계몽주의 교육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제대로 발현시켜 사회적인 의무와 개인의 행복을 일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루소는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완전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고 말하면서, 당시 사상적 주도권을 다투던 두 개의 이데올로기인 기독교와 계몽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인간이 사악한 것은 원래의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의 탓이며, 사회적 차원에서 정치 및 윤리의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개인의 사회성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미덕과 개인적인 행복은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고대 시민국가처럼 시민이 "자신을 단일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단일한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며 전체 속에서만 자신을 느끼는"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공동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위에 두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인가? 루소는 일단 자연 상태를 벗어나 사회 상태로 들어온 인간은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연으로의 복귀는 바람직한 것도 아닌데,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로부터 형성되는 애정이나 우정 혹은 인류애를 통해 자아를 확장할 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있으며 단순한 자연적 욕구가 아니라 보편적 이성을 통해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된 법에 따라 행동하면서 도덕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능한 교육은 현재의 타락한 사회에 살면서도 자연의 선량함을 최대한 간직하고 자율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다. 즉 교육이란 인간의 잘못된 본성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본성을 개발하는 것이며,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에밀』의 교육 방법

 예전의 교육자들은 어린이를 미성숙한 어른 정도로 파악했지만, 루소는 어린이를 그 자체의 고유한 활동이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유년시절을 포함하여 인생의 각 단계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교육은 각 단계가 갖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에밀』은 단순한 교육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연속적인 형성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보편적 인간의 성장소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자연적인 충동에서 나오는 감성에 합리적인 통제력을 부과함에 따라 완벽한 인간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본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도덕적 의지에 통합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규범적 통제 아래서 매우 느리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에밀은 자신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인간의 조건을 완전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인간의 발달 과정에 맞추어 교육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연에 의한 교육으로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능력과 기관을 자연의 원래 의도에 따라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절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 단계에서는 오직 자연의 순조로운 발달을 위해 그 발달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소극적 교육'이 주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인 사물에 의한 교육은 사람이 외부 세계의 사물과 접촉해 얻는 체험 또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지식 획득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이 생활의 유용성과 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세상에서 고립되어 사물들의 세계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을 그린 『로빈슨 크루소』이다. 오직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관계를 맺는 고립된 인간은 그 관계를 사회적 편견이 아니라 오직 유용성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인 인간에 의한 교육은 교육자의 재량이 가장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교육으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도덕적 자질을 함양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시작된다.

 상상력의 교육

 루소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사회로 넘어가면서 가장 활성화되는 능력을 상상력으로 보고 있다.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게 공통된 인격을 상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를 타인과는 다른 개별적 존재로 인식한다. 즉 상상력을 통한 동일시 현상으로 진정한 의미의 주체(sujet)들이 등장하고, 주체들 사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형성되는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내면과 접촉하면서 자아를 확대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타자와 맺는 관계 양상에서 가장 강렬한 형태인 사랑을 예로 들어보자. 자연인은 비교에 근거를 둔 선택이자 정신적 감정으로서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성이란 단지 생식에 관계한 본능이기 때문에 대상을 가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은 상상력이 개입함에 따라 개인적 선호에 근거를 둔 정신적 욕망으로 변화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상력을 통해 완벽한 아름다움과 미덕의 영상을 사랑의 대상에 투사하고 그 대상과 하나가 되려는 욕망을 품는다. 이 영상은 실재 사랑의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각의 산물이지만 그 때문에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거쳐 자신을 고양하면서 순수한 가치의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 자신의 본질을 의존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사랑의 노예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렇게 주체성을 상실한 인간은 사랑이 잘못되면 자신과 남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도취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잃지 않아야 하고 사랑의 욕망은 도덕적 의지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밀의 교사는 사랑의 정점에 도달한 에밀과 그의 연인 소피를 잠정적으로 갈라놓으면서 사랑의 정념을 미덕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별을 통해 사랑의 정념을 극복하는 동시에 사랑의 환상을 연장시키는 법을 배울 것이다. 상상력을 위한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사랑이 일상적인 삶의 산문성에 함몰되지 않기 때문이다. 에밀의 교사는 가족을 재생산하고 연인들을 주변의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랑의 욕망을 일상생활의 상호신뢰에서 생겨나는 '감미로운 습관'으로 전환시키면서 사랑의 몽상과 현실 세계 사이의 균형을 유지시키고자 한다.
 상상력의 교육에서 남녀 간의 사랑 이외에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것은 종교 교육이다. 우주가 보여주는 조화로운 질서는 상상력을 유발시켜 우주를 창조한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현실에서 미덕이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라면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미덕이란 "나의 의지를 신의 의지에 일치시켜 나의 자유를 선량하게 이용함으로써" 신이 만든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다. 인간이 미덕을 실천할 때 그는 자신이 감수한 물질적 결핍이나 물리적 고통을 정신적 즐거움으로 승화시키지만, 이러한 정신적 행복이 미덕의 실천이 요구하는 희생과 고통을 완전히 보상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루소는 신이 지상에서 희생한 행복을 보상해 줄 사후의 세계를 요청한다. 유덕한 인간에게 전적인 행복은 죽음 이후에 가능한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덕한 인간은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감내할 수 있다. 자연적인 선성을 도덕성으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교육은 최고도로 고양된 상상력 즉 신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사랑의 행복은 이 사후의 행복에 대한 일종의 맛보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감각적 세계를 넘어 존재하는 가치의 세계에 대해 현실보다 더욱 강렬한 현실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는 사랑의 환상이 깨어지면서부터 생겨나는 공허감을 신에 대한 믿음으로 채우면서 그 환멸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유덕한 인간에게는 미리 맛본 사랑의 행복과 죽음 이후 맛볼 내세의 행복 사이에서 미덕을 실천하는 일만이 남는다. 
 『에밀』을 읽고 루소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우리는 한 나약한 영혼의 회한에서 나온 『에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 본성과 그 전개과정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이용철 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루소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상상적 자아』(1995)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재직
 ·저서로 『루소 : 분열된 영혼』(태학사, 2006), 역서로『에밀』(한길사, 2007), 『고백록』(나남출판사, 2012),  『루소,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교양인, 2011)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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