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일 년에 각각 한 번씩 돌아오는 '설'과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다. 풍성한 명절음식과 각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설, 추석특선 영화가 어린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더 이상 명절을 즐겁게 맞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반에서 몇 등하니?" 등 친지들의 '명절 잔소리' 때문이었다. 물론 이 잔소리가 내게 약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또래인 친척들과 나를 비교하는 어른들이 미웠다. 가족 간의 정을 쌓는 명절 본래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 불편했다. 그 때문인지 명절에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 내겐 무척이나 어려웠다. 

사실 성인이 된 지금도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친지들의 충고 아닌 충고(?)덕에 어렸을 적 가시방석은 그대로이다. 이처럼 나에게 명절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날이 되어버렸다. 불행하게도 이는 나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명절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대학생들은 의외로 많았다. 

작년 1월,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경향신문이 대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설 귀향계획에 대한 설문'에 따르면 '친척집을 방문하는 등 귀향 계획이 전혀 없다'는 응답이 27.4%에 달했다. 또한 '귀향 또는 역귀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대학생들은 그 이유로 '친척 어른들을 뵙는 게 부담스럽다'(27.3%)고 답했기 때문이다.

졸업예정자 즉 구직자들에겐 명절이 더욱 두렵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이 20~30대 구직자 3천 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 친지들에게 듣는 말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87.5%가 '구직자로서 명절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답한 것이다. 20대 구직자가 친지들에게 듣기 싫은 말 1위(23.9%)는 '누구는 취직 했다더라'라고 한다. 이어 '아직도 취직 못했니?'(20.2%) 등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명절을 마냥 웃으며 맞이하는 대학생이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이러한 불편함 때문인지 명절연휴를 자기발전 시간으로 보내는 학생들도 있다. 마음 불편한 연휴를 보내느니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는 것이다. 또 내년 명절을 맘 편히 맞이할 수 있도록 학원이나 독서실로 가는 학생도 있다. 가장 풍요로워야 할 명절이 피하고 싶은 날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며칠 뒤면 추석이다. 이번 추석엔 일방적인 충고보다 서로의 이야기와 고민을 들어주는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을 함께 헤아려보고, 그 고민에 대한 혜안을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도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깃든 말씀을 경청한다면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는 뜻 깊은 명절이 될 것이다.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있다면 명절은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불편한 자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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