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첫째 동아시아(East Turning)'바람입니다. 이 자리에 일본어로 된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난 2011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저를 초청해 준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가 2011년 6월에 낸 책입니다. 책 제목이 『창조하는 동아시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창조하는 동아시아! 얼마나 참신(斬新)하고, 멋있고, 아름다운 제목입니까?

 『창조하는 동아시아』의 핵심 내용은 21세기 인류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새로운 차원의 문명, 새로운 차원의 역사, 새로운 차원의 문화-대종사님 말씀을 빌리자면 참 문명세계-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세 나라, 즉 한국, 중국, 일본이 주체가 되어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오구라 교수와 그 제자들은 지난 3월 19일에 저희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초청으로 우리 대학을 방문하여 1주일 정도 머물면서 원불교 중앙총부 방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학술문화 교류를 하였습니다. 3월 20일 오후 3시에는 이 <글로벌 인문학강좌>에서 '창조하는 동아시아,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습니다. 

 한중일 3국이 주축이 되어 있는 동아시아에 대하여 세계 모든 나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기대가 오늘날처럼 커진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10여 년 전부터 미국 월가(금융가) CEO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아메리카를 팔아 아시아를 사라"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세계 시장, 특히 아메리카 시장의 화살표 방향은 분명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로 향해 있다는 것이 미국 CEO들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의 국가안전기획부처럼 음지에서 일하는 CIA(중앙정보국)라는 비밀정보기구가 있습니다. 따라서 CIA의 활동은 거의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정보기구인 CIA와는 달리 미국 정부의 공식 조직의 하나로 '국가정보위원회'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그 위원회에서 나온 한 보고서는 "현대세계의 특징적 흐름은 세계 권력(權力)과 자본(資本)의 중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명백히 이동한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전 세계는 각기 자기 자신의 위상을 유지하는 다극체제(多極體制)로 발전하고 있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한중일 3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로 세계 모든 권력과 자본이 이미 이동하고 있고, 이미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파산 쇼크로 인한 세계적 경제위기) 당시에 "서방에 공포가 있다면 동방에는 희망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으며, 그 외 유럽 여러 나라 신문들은 한결같이 "오늘날의 지구는 대혼돈이다. 그 처방은 탁월한 통합적 과학뿐이다. 이러한 과학의 촉발자는 새로운 인문학적 패러다임인데, 유럽 주류사상사에는 그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들은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동아시아 바람이 크게 불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동아시아 바람을 서양 지식인들은 'EAST TURNING(東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동풍' 바람, 즉 동아시아 바람 속에서 저명한 서양 학자들치고 'EAST STUDIES(동아시아학)'에 관심 없는 학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둘째는'불교'바람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1916년에 원불교를 개창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원불교 개교 당시에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라"(대종경 서품 15장)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불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過去)의 낡은 불교가 아니라, 시대화(時代化)되고 대중화(大衆化)되며 생활화(生活化)된 새 시대의 새 불교, 즉 혁신불교를 뜻했습니다. 그런 대종사님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 들어와 하나하나 증명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1960년대 초반에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6대 종교간 대화'를 앞장서 추진하신 바 있으시고, 원불교 교단이 1960년대 후반부터 거교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던 종교연합운동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준 바 있는 고 여해(如海) 강원룡(姜元龍)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개신교 큰 일 났어요. 신도가 엄청나게 줄어들어요. 몽땅 불교로 넘어가고 있어요. 서양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아요." 강 목사님 말씀처럼 지금 유럽이나 미국의 교회, 성당은 텅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대신에 그 빈 교회나 성당에서 불교의 참선이나 명상 수련 프로그램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유럽과 미국을 다녀오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현재 유럽의 불교 신자가 천주교 쪽보다도 더 많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한국불교를 널리 알린 숭산(崇山) 스님 계통 불교 신자가 150만 정도 되고,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계통의 불교 신자를 합하면 3백만에 달하며, 새벽에 일어나 10-20분 정도 참선이나 명상선을 하는 사람만도 3-4백만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불교 바람 이야기를 하나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에 가면 환경문제와 평화 문제를 대단히 중시하는 녹색당이라는 유명한 진보적 정당이 있습니다. 이 독일의 녹색당은 독일 정부의 환경정책을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혁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정당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녹색당 제 2인자이자 세계적 사상가로 불리는 미카엘 데이비스는 2006년 한국의 한 지식인과 나눈 대담을 통해서 "녹색당과 생태학 모두 다 끝났다"고 선언하고, 유럽의 지식인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의 제목은 '절망'이고, 유럽 지식인들 사이를 떠도는 담론의 이름은 '허무'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마디로 '영성 고갈'이라고 대답하면서, 유럽에 대유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불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데이비스는 녹색당과 생태학을 대신하여 유럽인들의 영성 고갈을 해결해 줄 대안으로 불교의 선(禪)을 주목한다고 말하고, 새로운 선(禪) 사상과 그 운동이 가능한 곳으로써 "우리는 동아시아를 지켜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그것이 가능한 곳은 동아시아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셋째,'한류'와 '한국학 바람'입니다.  2012년 12월 6일 저녁뉴스는 12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 7차 세계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 아리랑이 인류무형우산(세계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음을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비통했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민족의 온갖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으니, 아마도 아리랑은 머지않아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품을 떠나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애창하는 세계의 노래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마치 우리 김치가 전 세계인이 즐기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아리랑 외에도 우리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는 판소리를 비롯하여, 합천 해인사의 장경각(藏經閣)과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 우리나라의 대표적 한의학 서적인 동의보감, 그리고 세계에서 우리나라 남부지방 일대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고인돌, 우리 국악 가운데 정악(正樂)을 대표하는 종묘 제례악 등이 있습니다. 이들 문화재는 벌써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지구촌 사람들의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우리말 '한글'을 배우는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강남 스타일' 열풍을 비롯한 케이 팝(k-pop), 드라마, 영화 등 한국의 대중문화도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지요. 

 드라마, 영화, 대중가가 등 한국의 대중문화나 한국의 음식인 한식(韓食)과 김치 등에서 시작된 세계적 바람을 일러 한류(韓流)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한류 붐이 이제는 서서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 철학과 종교 등 정신문화 쪽으로 세계인의 관심이 바뀌고 있습니다. 즉 대중문화 중심으로 불던 한류 바람이 한 차원 높아진 '한국학(韓國學)' 바람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직접 목도(目睹)했던 '한국학' 바람의 실지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2012년 4월 14일에 일본 교토시에서는 교토시에 자리하고 있는 4개의 유명 대학인 교토(京都)대학교, 토시샤(同志社)대학교,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교, 붓쿄(佛敎)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와 연구자, 석박사과정 학생 등 150여명이 '교토로부터 새로운 한국학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4개 대학이 연합한 '한국학 연구 콘소시움'을 결성하고, 그 결성을 자축하는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습니다. 

 교토대학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생략하고, 토시샤대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토시샤대학은 기독교계 사립대학으로 일제시대에 윤동주 시인이 유학한 대학으로 유명합니다. 리츠메이칸대학은 맹자의 '입명(立命)'에서 유래한 교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연구의 메카로써 일본의 진보적 학자들이 모여 있는 대학입니다. 또한 리츠메이칸대학에는 '코리아연구센터'라는 한국학연구소가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이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끝으로 붓쿄대학은 작년(2012)에 개교 1백주년을 맞은 대학으로써 저희 원광대학교와 자매대학으로 유명합니다. 이들 4개 대학이 연합한 '한국학 연구 콘소시움' 발족 기념 심포지움에는 멀리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하와이대학, 캐나다의 토론토대학 등에서 발족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연세대와 고려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시 박원순 시장님 등으로부터 축하메시지가 보내올 정도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한국학 연구의 한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저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문제는 밖에서 불어오는 순풍(順風)을 잘 활용할 수 역량을  우리 안에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갖추어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풍운대수(風雲大手)는 수기기국(隨其器局)(『동경대전(東經大全)』,「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이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시대의 풍운을 타고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람됨과 역량에 달려 있는 법이다"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바꿔 말하면 밖으로 아무리 좋은 상황이 전개될 지라도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할 주체가 안으로 활용할 만한 사전 준비나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만사가 허사(虛事)요 화중지병(畵中之餠)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박맹수 교수(원불교학과)

 

 <필자소개>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 역사학과 박사과정, 일본 북해도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졸업.

 ·한국사상사학회 부회장, 동학학회 편집위원, 사단법인 한살림 모심과 살림연구소 운영위원장 등 역임.

 ·현재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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