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현대 문명의 과제
 
 오늘날 지구촌은 자연에 대한 과학기술의 지배와 소유적 경제적 사고가 빚어낸 문명적 부작용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그 고통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지구 생태계의 위기문제이다.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소유욕에 의해 작동되는 현대문명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생명을 살려내는 새로운 세계관의 정립이다. 21세기 인류가 부딪힌 최대의 난제는 바로 '생명'의 문제이다.
 우리가 처한 문명의 난제 가운데 하나인 '생태 문제'는 단순히 과학과 기술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세계관의 문제, 의식의 전환, 생활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폰 바이츠체커가 "21세기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의 전망"이 열려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듯이, 이제는 자연지배가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공동체의 이념, 즉 에코토피아(ecotopia)의 이념을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찾아야 할 때이다.
 이러한 시도 가운데 하나가 대지와 인간의 관계, 대지와 인간 몸의 관계를 생명의 '살림'('생태학적 살림')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대지와 인간의 몸은 식량이라는 고리(food chain)로 연결되어 있기에 대지 위에서의 인간의 삶의 유지와 인간의 몸의 살림은 생태학적 생명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대지 위에서 인간의 삶의 태도에는 거주 혹은 살림살이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는 대지의 살림(살이)과 몸의 살림(살이)을 염두에 둔 생명운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쿠멘 윤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만큼 지구 생태계를 인간 삶의 조건으로 인식하는 시대도 없다. 지구나 대지가 삶의 조건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이미 대지 위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갑자기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쁘고 위장의 움직임을 느낀다는 것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즉 이미 몸에 병이 발생했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지구나 대지에서의 삶을 우리가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조건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현대의 삶의 조건을 오귀스탱 베르크(Augustin Berque)는 '에쿠멘의 윤리'라 부른다. '에쿠멘(ecoumen)'은 본래 '주거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태학(ecology), 경제학(economy)과 그 뿌리가 같다. 에쿠멘은 본래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 우리의 존재 장소로서의 지구, 인간적 거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구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조건을 뜻하기도 한다. 에쿠멘은 인간과 대지의 관계에서 인간이 대지 위에서 인간적 거처를 마련하는 행위, 즉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살림살이를 뜻한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도 물질과 심신의 살림살이로서의 경제가 필요하듯이, 대지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데도 생태학적 살림살이가 필요한 것이다. '살림'이란 우리 존재의 물리적 조건을 경제학적으로 운영하는 행위이자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생명력 있게 살리는 생태학적 생명운영의 행위이다. 즉 살림이란 삶을 운영하는 살림살이이며 생명을 이어주고 살려내는 생명의 실천활동이다. 오늘날 에쿠멘의 건강한 관계와 윤리를 회복하는 것은 대지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살림살이를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지의 건강과 인간의 삶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흙과 공기, 동식물과 인간, 이 모든 것은 실상 하나의 인드라망으로 연결된다. 토양이 훼손되면 식물이 살 수 없고, 식물이 성장할 수 없으면 동물이 병들게 되고, 동식물이 병들게 되면 인간 역시 건강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몸이 병들면 또한 그의 마음의 생태계 역시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연이 생명을 잃게 되면 인간은 함께 병들어 버린다. 그런데 오늘날 생명체의 존재기반이 되는 생활환경이 오염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세포조직마저 독성으로 변질되고 있다. 인간적 삶의 터전의 윤리인 에쿠멘의 윤리는 바로 생명권 의식을 갖는 의식전환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학적 의식의 전환, 즉 생명에 대한 의식은 대지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 즉 살림살이에 대한 의식에서 시작된다. 
 
 생태학적 대지살림
 
 우리는 대지 안에서 삶을 살아간다. 이 대지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우주이다. 대지윤리를 처음으로 제시해 준 사상가는 레오폴드인데, 그는 대지를 죽은 것(무생명)으로 파악하는 기계론적 접근을 비판하며, 자연을 도구적 가치로 보는 관점에서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관점으로의 변화(생태의식)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땅을 단순히 재산으로, 노동가치가 들어간 소유물로 바라보는 로크적 근대 이후의 소유적 자연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땅은 살아있는 유기체로 건강할 수도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단순히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주의 생명회로 안에 있는 것이다. 대지는 인간이 노동을 하고 그래서 인간의 소유나 재산으로 등기되는 경제적 가치물이 아니라 생명을 낳고 순환시키는 생명의 터전인 것이다. 대지는 모든 생명체가 삶을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며 동시에 인간의 삶의 터전이다.
 대지의 살림은 우선 대지를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보는 시선의 변경에서 시작한다. 대지란 모든 생명체가 거처하며 우주적 생명을 주고받는 순환의 장소이자 인간의 육체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살림의 터전이다. 대지가 오염되면 인간의 몸도 오염되고 마음도 척박해진다. 자연을 우주적 생명체로 보지 못하고 단순히 사물화된 대상이나 경제적 가치로만 보는 인간의 영혼은 다른 인간과 자기 자신을 사물화시킨다. 자연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인간도 유용한 물건처럼, 즉 죽은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연이 오염되면 인간도 오염되며,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병들게 되면 다른 인간이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병들게 된다. 자연의 생태학적 순환과 균형을 존중하고 대지를 살리는 시선의 변경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생태학적 몸살림
 
 생태학적 살림살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몸살림의 문제이다. 근대문명은 물질의 풍요를 이루어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먹을거리의 풍요로움이다. 농경에서 대규모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고 화학비료나 농약이 대량으로 사용되면서 농산물의 생산도 대량생산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농산물은 넘치는 자본주의적 상품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소비하고 있는 농산물은 대량생산을 위한 촉진제, 즉 농약이나 화학물질의 과도한 사용에 노출되어 있고, 식품의 오염은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인류는 현재 새로운 문명의 질병을 앓고 있다. 한편으로는 풍요가, 다른 한편으로는 반자연적 질서가 만드는 길항적 갈등에서 생겨나는 질병이 그것이다. 비만, 아토피, 암, 2형 당뇨병, 유전자 조작 식품(GMO), 인간의 생체리듬의 파괴, 산업재해, 불임 증가, 도시 공해물질의 증가, 화학비료를 준 농산물, 동물농장, 신경장애, 환한 조명과 생체리듬의 자연성을 파괴하는 도시적 삶, 원자력발전소 사고 및 오염 등은 모두 자연적 질서에 반하는 현대문명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이다. 현대문명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숙주가 바로 인간의 몸이다. 몸의 질병은 현대문명의 질병이기도 하며 이는 생태학적 지구살림살이가 오염되고 훼손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문명은 구조적으로 인간의 몸에 질병문제를 야기한다. 일상에서 먹는 음식물에 화학물질이 묻어 있고, 화학조미료의 세례를 받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몸에 질병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는 인체의 면역체계와 자기치유기능을 약화시키며, 우리에게는 비만, 아토피, 생체리듬의 혼조, 신경장애 등 많은 문명병이 찾아온다. 대지가 죽으면 인간의 삶도 죽는다. 생명체가 질병이나 인간의 인위적 조작의 세계에 의해 훼손되면 인간의 몸도 또한 손상된다. 인간의 몸이 손상되고 생명을 품을 수 없는 불모의 터로 변하면 건강한 다음 세대의 고리는 끊어지고 인류의 미래 존속은 어두워지고 만다.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몸의 생명성을 회복하는 일이자 인류가 미래에도 존속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살림의 실천운동을 해야 할 때다
 
 우리는 21세에 대지에서 삶을 지속해야 한다.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인류가 미래에도 건강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미래적 생존문제이다. 대지에서의 우리의 삶의 지상명령은 다음 세대를 이어 인류의 삶이 지속되도록 행위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생태학적 녹색교육과 생명자각의 운동을 통해 살림의 문명을 만들어 갈 때, 인류는 대지와 몸이 생태학적 건강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에코토피아의 미래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 미래의 시작은 대지살림과 몸의 살림에서 시작된다. 대지는 생명의 터전이자 우리의 에쿠멘적 거주처이며, 몸은 대지적 생명이 순환하는 우주적 회로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대지의 생태학적 건강은 인간의 몸의 건강을 보존해 주며, 몸의 건강은 우리를 미래세대로 연결해 주는 교량에 해당한다. 대지와 몸의 생태계는 하나로 연결된 우주적 생명의 쌍방향적 뫼비우스적 접속체이다. 대지와 몸은 뫼비우스처럼 안과 밖이 서로 연결된 생명의 회로이기에 대지를 살리는 일은 인간의 몸을 살리는 일이며, 인간의 몸을 살리는 일은 인간의 삶을 영속적으로 미래에 연결하는 일이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이 양자의 생태계를 함께 살릴 수 있는 생태학적 생명문화운동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제 살림의 실천운동, 생명문화운동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시작할 때이다. 생명에 대한 교육과 자각, 의식적 실천은 살림의 운동을 만들 수 있고, 살림의 운동은 대지와 몸의 생태계를 살려내는 생명문화를 만들며 인류를 미래세대로 건강하게 연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정현 교수 (원광대 철학과)
 
 <필자소개>
 ·고려대 철학과와 대학원 철학과 졸업,
 ·독일 뷔르츠부르크(Wurzburg)대학교 철학박사.
 ·현재 원광대 철학과 교수, 한국니체학회 회장.
 ·세계표준판 니체전집(21권, 책세상) 편집위원 역임.
 ·역저로 『니체의 몸 철학』,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철학과 마음의 치유』,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이상 니체),『기술시대의 의사』(야스퍼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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