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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어떻게 읽을 것인가?『픽션들』의 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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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4  0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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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텍스트(text), 텍스츄어(texture)

현대문학의 주요 쟁점중의 하나가 리얼리티에 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주의 문학론이 추구하고 있는 객관적 리얼리티가 진정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허구적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러한 논쟁의 출발은 리얼리티와 허구의 이분법으로 대별되던 사실주의 문학론이 꿈과 현실이 도처에 혼재하는 오늘의 문학적 추구 성향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에 기인한다.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사회, 그로 인한 작가의 인식론적 불확실성은 리얼리티가 갖고 있는 객관성을 부인하도록 만들었고 결국은 리얼리티는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작가의 인식 속에서 창조 되어지는 주관적, 개인적 실체로 변해버렸다. 이제 우리는 종래의 실체와 허구,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의 이분법은 사라지고  실체와  허구가 섞여 하나가 되어 버리는, 무엇이 현실의 세계이고 무엇이 상상의 세계인지 구분이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리얼리티가 가지고 있는 허구성, 주관성, 복수성, 자의성, 불연속성은 우리에게 현재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하나의 농담, 꿈, 우연한 사고, 속임수, 무대에서의 연기로 인식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자연, 문학은 이제 언어의 각종 실험장으로 탈바꿈된다. 언어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요구된다. 문학 텍스트에 대한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닫힌 공간의 종래의 작품(Work)개념은 사라지고 열린 공간을 의미하는 텍스트(text) 혹은 텍스츄어(texture)개념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이제 작가의 임무는 과거의 객관적 실체를 그의 문학 텍스트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리얼리티의 허구성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주된 임무가 된다. 문학 텍스트의 전달 매체 기능은 사라지고 작가와 문학 텍스트의 관계가 단절된다. 독자는 이제 수용자의 입장을 떠나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텍스트는 자아 반사적 경향을 띄게 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문학 텍스트의 의미는 작가가 아닌 텍스트와 텍스트와의 결합에 의해 형성된다. 
 
미로(迷路)적 세계관
 
보르헤스는 이미 1930년대 후반부터 이와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따라서 보르헤스를 읽기 위해서는 전통적 독서방법을 '해체'해야 한다. 작품 속에서 메시지를 찾으려 하는 기존의 독서방법으로는 보르헤스 작품을 이해할 수도, 그 작품이 담고 있는 맛과 멋도 즐길 수 없다. 

보르헤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유아적 신이 만든 불완전한 창조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보르헤스가 보는 세계는 불확실하고, 혼미하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픽션들』의 단편,「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 보는 것처럼 '우연'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런 곳이다. 코스모스적 질서의 세계가 아닌 혼돈과 무질서,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과 우연으로 짜인 이 세계는 어찌 보면 출구 없는 미로와 같다. 이 미로는 신비의 연속이다. 물론 보르헤스는 이 미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는 도서관의 있는 수많은 책 가운데서 "개인적 문제나 세계 보편적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그리고 "우주의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는" 책이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서관'의 그 어디에서도 개인적 문제나 우주, 세계 보편적 문제에 명쾌한 답을 주는 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대신 끝없는 난삽한 해석으로 가득 차 있는 책들만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서관'은 혼돈과 무질서의 상징이었다. 

『픽션들』또 다른 단편,「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트리우스」에서도 보르헤스의 노력은 계속된다. 한 비밀 자선 결사단체가 관념으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혼돈과 미망과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에 질서와 필연을 제시하고자 함이었다. 이들이 만들고자한 '틀륀'은 인간의 체계성과 과학성이 상상의 세계에서 재현된 정돈과 질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틀륀'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틀륀의 제1백과사전, 제 11권』이 상상의 산물임이 밝혀지고 '틀륀'에 관한 정보 역시 허구임이 드러나자, 질서와 필연의 가능성은 산산이 부서진다. 

보르헤스는 이 작품에서 세계와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그 어떠한 기도도 허구적 허망함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 대부분은 삶의 모든 불가사의를 해결해 줄 의미의 '중심'과 자신의 '근원'에 도달하고자하는 몸부림 속에서 결국 길을 잃고 포기해버리는 '미로'의 절망적 패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르헤스의 다양한 소설기법
 
보르헤스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러한 '미로' 개념을 작품에 투사하기 위해 탐정소설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미로는 출구가 없기 때문에 과정만 존재한다. 탐정소설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소설이다. 따라서 탐정소설은 출구가 없는 삶의 '미로'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탐정소설은 비밀 찾기, 수수께끼 풀기 등의 장치들을 통해 이 '미로'를 구체화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결말보다 과정을 탐닉하는 보르헤스가 문학을 보는 관점은 상당히 독특하다. 보르헤스는 문학을 텍스트가 벌이는 일종의 유희로 본다. 보르헤스는 기본적으로 문학 텍스트를 열린 공간으로 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작가가 전능적 권한으로 텍스트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이 공간을 독자에게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주장이다. 

이제 문학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보르헤스는 작품대신 열린 공간을 뜻하는, 날줄과 씨줄로 짜여 가는 텍스트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텍스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텍스트 외적 요인과 전(前) 텍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즉 텍스트의 의미 형성에 텍스트 외적 요인과 전 텍스트가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텍스트 의미의 불확정성 때문에 보르헤스 독서는 전통적 독서와 각도를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dad)'으로 일컬어지는 텍스트간의 관계 형성은 문학작품을 작가의 손에서 떼어내는 역할을 한다.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 롤랑 바르트의 후기 구조주의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 행위가 아니라 그가  읽었던 수많은 다른 텍스트로 구성된 문서보관소에서 적절한 문장을 뽑아내는 행위이다. 동시에 작가가 처해 있는 문화적 환경도 글쓰기에 작용을 한다. 따라서 글쓰기는 문서보관소에 있는 텍스트들을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작가의 텍스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전 텍스트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전 텍스트들이 현 텍스트의 영향을 미쳐 현 텍스트의 의미가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텍스트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 이러한 연유로 텍스트의 의미는 한껏 개방되어 있다. 텍스트를 읽는 자마다 각각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의미를 만들어내되 더 풍부하고 생생하게 만들어낸다.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작용한 탓이다. 이렇게 수많은 의미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보르헤스의 텍스트이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는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다. 의미는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고 이야기는 무수한 가지를 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흔히 보르헤스의 작품에 나타난 문학적 현상을 '환상적 사실주의'로 일컫는다. 여기서 '환상'은 일반적 현실을 넘어선, 보르헤스의 사고가 기초한 또 다른 현실을 말한다. 혼돈과 무질서, 미로에 기반을 둔 보르헤스 인식이 창출한 새로운 현실이 바로 이 '환상'이었다. 보르헤스는 '환상'의 토대 위에서 기존 인류의 사고방식인 철학적,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신비스럽게 표현된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사실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관념을 구상화(具象化) 한 것이다. 이 관념의 구상화 작업이 바로 '환상적 사실주의 realismo fantastico', '거짓 사실주의 pseudo-realismo 이다. 

환상을 사실처럼 보이기 위한 이 작업에 보르헤스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가짜 참고문헌과 각주를 제시하고. 가짜 전기(傳記)를 사용한다. 보르헤스가 제시하는 여러 문헌들 중에는 가짜가 많다. 「틀륀,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틀륀'이라는 혹성의 존재를 유일하게 증거 하는 『틀륀의 제1백과사전, 제11권』은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100% 상상력의 산물이다. 각주 역시 거짓이 많다. 각주행위는 글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거짓 각주는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사실성을 보증하는 또 다른 재료인 전기(傳記) 역시 거짓이 많다.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의 삐에르 메나르, 「알모따심에로의 접근」의 바하두르 알리, 그리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의 정원」에 나오는 유춘, 모두 실제 존재했던 사람들처럼 그들의 전기(傳記)가 나오지만 전부 가상의 인물들이다. 이러한 '환상적 사실주의' 혹은 '거짓 사실주의'의 배경에 보르헤스의 유희(遊戱)의 시학이 짙게 깔려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보르헤스는 모름지기 소설은 재미있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소설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보르헤스의 글쓰기가 전통적 글쓰기와 선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관한 문학적 쟁점을 소설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일반적으로 '메타 픽션'으로 알려져 있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전통적 독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 

텍스트와 텍스트, 텍스트와 텍스트 외적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문학적 유희를 보고 즐겨야 한다. '창조'보다 '생산'을 강조하는 보르헤스 문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텍스트 속에서 다른 텍스트를 발견하는 안목을 기르고 미로와 미궁을 헤매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것들을 갖추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바르트, 데리다, 푸코 등의 후기 구조주의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최낙원 (전북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필자 소개>
 ·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및 동 대학원 스페인어문학과 졸업. 
 ·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 문학박사(학위논문 「스페인 16세기 가르실라소 시의 종교적 승화 과정 연구」).
 · 현재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 주요 논문으로 「가르실라소와 세르반테스」, 「세르반테스와 보르헤스」, 「스페인 망명시 연구」등과, 저역서로 『가르실라소 시선』과 『춘향전』등이 있으며,『카탈루냐어-한국어 사전』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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