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랑해요 한글'에서는 표준어의 요건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표준어의 요건에 대해 검토한 이유는 ≪한글맞춤법≫의 첫 부분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한글맞춤법 총칙 제1장 제1항에는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맞춤법의 세 가지 요건을 추출할 수 있다. 

 (1) 가. 표준어를 적는다     나. 소리대로 적는다
      다. 어법에 맞도록 적는다    cf. 부가적 요건: 원칙으로 한다
 (1가)의 '표준어'에 대해서는 모두에 언급한 것처럼 지난 호에서 살펴본바, 의외로 "교양", "두루"라는 요건이 강조될 수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1나)의 "소리대로 적-"에 대해 검토해 보자. '바람', '다르고'를 쓰는 방식으로는  '발암', '달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으뜸', '노트', '어떠하다'는 '읏듬/읏뜸', '놋트', '엇더하다/엇떠하다' 등으로도 쓸 수 있다. 이를 한자어에 적용한다면 보다 명확해진다. 시월[十月, 십월×], 오뉴월[五六月, 오육월×], 유유상종[類類相從, 유류상종×], 충원률[充員率, 충원률×], 선열[先烈, 선렬×] 등을 들 수 있겠다. "소리대로 적는다"는 요건이 강조되지 않으면 '시월', '오뉴월' 등으로 적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열 십'/'여섯 륙' 字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중들의 현실 발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1다)의 "어법에 맞도록 적는다"라는 것이 앞 말과 모순처럼 읽힐 수 있다. "어법에 맞게 적는다"는 것은 말과 글의 운용 원리에 맞게 적는다는 뜻이다. 대개는 문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이', '밖이'는 소리대로 적으면 '지비', '바끼'라고 해야 하지만 명사만 떨어뜨려 생각한다거나, 또 '집도'/'지비∼집이', '밖도'/'바끼∼밖이'를 고려한다면 당연히 '집'과 '밖'이 추출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에게서 확인되는 말과 글의 운용 원리, 곧 어법이라는 것이다. "어법"을 "소리"에 우선한다면 한자어를 적는 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위에서 언급한 시월[十月, 십월×], 오뉴월[五六月, 오육월×], 유유상종[類類相從, 유류상종×] 등을 어법에 맞게 적는다면 당연히 '십월', '오육월', '유류상종'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한자음에 적용되는 어법으로 대표적인 것은 두음법칙이다. '리발소'를 '이발소'로 '녀자'을 '여자'로 적는 것을 말한다. 말의 첫머리 ㄹ, ㄴ 이외에는 옥편에 있는 음을 그대로 적어야 한다. 그러면, '십월', '오육월', '유류상종'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법보다는 일단 "소리대로"가 강조되어야 '시월', '오뉴월', '유유상종'의 현실 발음이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이상을 통해 볼 때, "소리대로 적는다"와 "어법에 맞게 적는다"는 것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도 엄청난 고민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칙으로 한다"는 부가 요건을 살펴보자. 사실 '옛일', '냇물'에서의 사이시옷 표기는 소리대로 적은 것도, 어법에 맞게 적은 것도 아니다. 'ㅅ'으로 적도록 한 것은 일종의 약속이다. 'ㄷ'으로 적어도 상관없고 북한처럼 '이음표 -'를 두어도 상관없다. 이를 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싫증/실증(×)', '옳바른(×)/올바른', '넘어지다/너머지다(×)'를 두고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게 적은 것이 아닌데'라는 의문에 봉착한다면 이 또한 "원칙으로 한다"라는 '헐거운 사슬'과 관련이 있겠다. 
 
임석규 교수(원광대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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