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상인들의 금고에 모아둔 황금은 또 다른 황금을 낳기 때문에, 상인들은 대가 없는 돈을 함부로 쓰는 계층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1300년대 초반-1500년대 중반)에 부유한 도시 상인들도 역시 투자의 대상도 아니었고, 사고 팔 수 있는 상품도 아닌 고가의 예술 작품을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주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목적에서 르네상스라는 꽃망울을 가장 먼저 터트린 피렌체라는 도시를 치장하는 데 엄청난 황금을 사용하게 되는 것일까? 예술사가들은 후한 후원자라는 이름으로 상인들을 점잖게 관심 밖으로 돌려놓고 예술가들의 재능을 칭찬하는 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을 전공한 필자로서 이 대목은 동의 할 수가 없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상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과는 전혀 다른 르네상스 이야기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재탄생 혹은 부활의 시기"로 일컫는 르네상스 시대에 종교적으로 금지하던 고리대금업(당시에는 이자를 받는 행위는 모두 고리대금업이었다)과 위험을 무릅쓰고 무역업으로 어렵게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도시 상인들이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주문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목적을 알아야, 작품의 용도를 알 수 있고, 용도를 알게 되면, 예술 후원자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는 예술작품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똑같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몇 배의 즐거움과 감동을 더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시대와는 달리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예술과 경제의 융합이 필요한 영역인 것이다. 
 
 ▶교황, 르네상스 예술 탄생의 주인공이 되다.
 교황은 이탈리아에 교회가 세속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기독교 국가를 재건하려고, 주인이 없었던 피렌체에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프란체스코 수도사와 도미니크 수도사들을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빈손으로 도시로 이주한 가난한 수도사들은 구걸(탁발)에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교황은 이들 탁발수도사들에게 수도원 성당 지하에 평신도들의 시신을 안장할 수 있다는 칙령을 내리게 된다(1244년). 부유한 상인들은 앞 다투어 황금을 손에 들고 사후에 천국에 갈 희망으로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래야 최후의 심판장에서 수도사나 성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도원 측은 이들 부유한 상인들에게 시신을 수도원 지하에 안장하고, 수도원 성당에 성인들을 봉헌할 기도실을 분양해 주게 된다.이 분양권은 학술용어로 Jus Patronatus(라틴어),  Right of Patronage(영어), 우리말로 '기도실 후원 권한' 정도로 번역 해두자. 
 
 그러나 수도원 측은 기도실을 분양받은 부유한 상인들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특혜와 더불어 의무도 부과했다. 이는 다름 아닌 기도실을 장식하는 책임이었다. 이때부터 기도실을 소유한 부유한 상인들의 후원(?)으로 어두웠던 수도원 성당의 벽면과 천정이 회화와 조각들로 화려하게 장식되기 시작한다. 수도원 측은 이 기도실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수도회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일종의 수도회 홍보매체였던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연 화가로 칭송받는 '조토'가 성인 프란체스코의 신성함을 알리는 <성흔>과 같은 작품을, 제자인 '안드레아 오르카냐' 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성인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상을 그린 <스트로치 제단화>와 같은 작품들을 주문받게 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의 탄생은 이와 같이 부유한 상인들의 사후세계의 천국에 대한 희망에서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 탄생-국가는 더 이상 성직자의 주기도문으로 통치되지 않는다.
 가까스로 부유한 소수의 상인들에 의해 유지되던 도시국가 피렌체는 이웃 밀라노 공국의 침입으로 존립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1402-1428). 이들 상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지켜 줄 용병들을 고용하기 위해 성직자들에게 25만 플로린(당시 유통되던 피렌체 금화로서, 우리 돈으로 약 2천억 원에 달한다). 교황 마르티누스 5세는 피렌체 성직자들에게 성무를 금지시키고, 파문을 내렸지만 피렌체 상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성직자들을 투옥시키기까지 했다(협상 끝에 1만 플로린으로 감액 되었다). 
 당대 유명 화가인 '마사초'가 "카이사르(황제)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리스도의 것은 그리스도에게 돌리라!" 는 성경 구절을 회화로 표현한 <성전세>라는 작품이 탄생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당시 시의회 서기였던 '레오나르도 브루니'는 피렌체 시민들의 역량을 활용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를 중시하는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을 주장하였다.
 피렌체에서는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성직자와 인문학자, 그리고 부유한 상인들이 서로 만나 종교보다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공간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지도자들 사이에 융합이 가능해 진 것이다. 융합은 상상력을 낳고, 결국 창조로 이어지게 된다. 이 공간에서는 교회의 종소리와 성직자의 주기도문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필자는 이 공간을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이 확대 되면서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제 세속권력의 이상을 찾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이상향을 찬란했던 자신들의 과거 로마제국에서 찾기 시작했다(Primitivism).  
 그래서 새로운 세속권력의 지도자들은 성경책보다는 고대 그리스 로마문헌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진정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 시기에 메디치 가문의 수장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1389년-1464년)가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메디치 가문의 등장-결국 왕조를 꿈꾸다
 코시모는 150년 동안 피렌체 권력을 장악해 오던 피렌체 출신 귀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정부의 수장(gonfaloniere)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민자 출신으로 무시당했던 코시모는 귀족들과 신앙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산-마르코 수도원을 신축했다(320억 원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축제였던 '동방박사 경배' 축제(오늘날 크리스마스 축제)를 부활시키는 등, 문화정책으로 분열 되었던 시민들을 통합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시민을 중시하는 정책이 펼쳐지면서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이 제대로 작동되는 듯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정권이 불안해지자 친위 쿠테타를 일으켜 독재 정치로 회귀하고 만다(1458년). 가족력인 통풍으로 거동이 불편했고, 쿠테타 이후 반대파에 의한 암살이 두려웠던 코시모는 외부로 나가질 않았다. 대신 자신의 저택 기도실을 집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제 기도실을 화가 '베노초 고촐리'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방박사의 행렬>이란 작품으로 치장하도록 주문한다(05.동방박사의 행렬). 기도실을 아기예수 탄생이란 종교적 주제로 장식하는 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10살 밖에 안 된 손자 로렌초(Lorenzo de'Medici, 1449-1492)가 하얀 말을 타고, 머리에 월계수로 치장된 화관을 쓰고 있는 형상이 유난히 크게 그려져 있다.월계수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지도자를 상징했다. 그리고 말의 가죽 벨트에는 "새로운 시대는 곧 돌아온다!(Le Temps Revient)"라는 모토가 새겨져 있다. 통풍으로 오래 살지 못 할 것으로 예상했던 코시모는 손자 로렌초를 피렌체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줄 지도자 지도자로 선택한 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렬에 메디치 가족들뿐만 아니라, 쿠테타에 참가했던 측근들이 형상이 다 묘사해 놓았다. 측근들과 함께 인증 사진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시모는 사망했다. 시 의회는 '국부(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주었다. 
 
 ▶스무 살의 로렌초,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염원하다 
 아버지 '피에로(Piero de'Medici, 1416-1469)가 5년 만에 사망하자, 할아버지 코시모의 예상대로 메디치 가문의 측근들이 로렌초를 찾아와 피렌체 정부의 수장의 자리에 오를 것을 부탁한다. 당시 기록을 잠깐 보도록 하자.
 "아버지의 사망 후 이틀째 되는 날, 스무 살이 된 나 로렌초는 매우 어렸다. 피렌체 시의 중요한 사람들이 찾아와, <중략> 국가와 도시를 책임져 줄 것을 부탁했다. <중략> 마지못해 나의 친구들과 우리 가문의 재산의 안전을 위해 그리 하였다. 피렌체에서는 정부 권력을 갖지 않고서, 부자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무 살의 로렌초가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되었고, 행정부의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암살을 당할 뻔도 했고, 동생도 반대파의 암살에 잃고 말았다. 이러한 정치적 역경 속에서 자신의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학자들이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로마제국 시대의 문헌들을 수집하고, 그리스 문헌(일리아드, 오딧세이아 등)들을 번역하던 '마르실리오 피치노', '폴리치아노', '도메트리오', 그리고 '폰치오'와 같은 인문학자들이다.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가 활발하게 부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른 살의 로렌초는 "새로운 시대는 곧 돌아온다!(Le Temps Revient)"라는 모토를 잊지 않았다. 자신의 권력을 사상적으로 뒷받침 하던 인문학자들도 로렌초에 의해 펼쳐질 새로운 시대에 기독교의 신이 아닌, 고대 그리스 신의 은총을 기원했다. 이러한 기원이 담긴 대표적인 작품이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에 의해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이란 작품이다. 
 
 이 그림은 65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화가의 재능을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좀 더 그림을 자세히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의 왼 쪽에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반항하는 요정 '클로리스'를 안고 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중해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에서는 서풍이 불면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 때문에, 봄을 노래한 작품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의 주제는 로마제국 시대의 작가인 '오비디우스(Ovidius, BC 43~AD 17)'의 작품 『변신이야기』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그리스 신들의 변신에 관한 대-서사시인데, 이 작품에 의하면,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자신을 싫어하는 요정 '클로리스'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자 요정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게 된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이기 때문에 꽃의 여신 '플로라'는 피렌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의 한 가운데에 풍요의 여신 비너스를 그려 넣었다. 화가가 비너스를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로마제국 시대의 또 다른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 BC 70~19)가 쓴 『아이네이스』라는 대-사사시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로마제국의 창시자 로물루스 형제를 신격화시키기 위해서, 형제의 모계가 비너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 의해 비너스가 꽃의 도시 피렌체(플로라로 묘사)로 가고 있는 형상들을 한 폭의 작품에 담아낸 의미는, 피렌체에 로마제국처럼 여신 비너스의 신성한 힘으로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로렌초 측근들의 기원을 담아낸 것이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신전을 짓고, 신의 형상을 조각하여 신을 봉헌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림으로 신을 묶어두고, 축복을 기원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으로 자주 언급되는 종교로부터 해방되는 개인, 인문주의의 탄생, 그리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작품의 부활 등의 현상 이면에는, 이렇게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려는 상인들의 욕망이 깊숙이 숨겨져 있다. 예술가들과 인문학자들은 이들의 욕망을 그림과 글로 남긴 기록자가 아닐까?  
성제환 교수(경제학부)
 
<필자소개>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 미국 코넬대학교 경제학박사.
·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산업개발원 원장, 21세기  문화정책 위원, 원광디지털대학교 총장 역임.
· 현재 원광대학교 경영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
· 주요저서: 『한국의 고용정책』(공저), 『문화의 창조성과 지적재산 보호』,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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