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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와 인간 - 요한 하우징하,『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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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4  19: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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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플라톤은 놀이가 성인 활동의 모방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놀이를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동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이의 놀이 본능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원시인들 사이에서 어떤 동물이나 사람의 특징적인 움직임을 흉내 내는 모방 춤, 특징적인 소리를 흉내 내는 모방 언어, 일정한 권위자나 관직자, 법관, 싸움을 흉내로서 표현하는 놀이 등을 볼 수 있다.

 놀이와 예술의 유사성을 강조하다 보면 동시에 양자 간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동물들도 놀이 본능은 있다. 그러나 예술 활동에서까지 이르는 본능은 아니다. 여기에 놀이와 예술에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으며ㅡ그 차이점은 예술의 종교적 동기 속에서도 표현되는데ㅡ그것은 다시 인간의 놀이 본능과 동물의 놀이 본능의 다른 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동물의 놀이와 인간 놀이의 부정할 수 없는 유사성은 놀이란 아이들에게 힘의 과잉과 관계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인이 되어 행할 행동에 대한 예행 연습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형성시킨다.

 

 1. 놀이란 간접적이며 실제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으며, 움직임의 유일한 동기가 놀이 자체의 기쁨에 있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활동이다.

 2. 놀이란 모든 참여자에 의해 인정받는 어떤 일정한 원칙과 규칙, 즉 "놀이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활동이며, 거기에는 성취와 실패,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있다.

 

 놀이 활동은 본능적인 맹목적 합목적성에서 어린이의 삶을 해방시켜 주고, 어린이로 하여금 다스리고,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준다. 이 사실 가운데에 아마도 놀이가 즐거운 원인 중의 하나가 들어 있을 것이다. 교육학의 역사에서 놀이는 의례히 부정적 비관을 받아 왔다. 왜냐하면 놀이란 자발적이며 개인적인 에너지를 변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목표가 자립적인 인간성을 추구할 때는 그 반대가 되고 놀이가 깊고 긍정적인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 인정될 것이다.

 심리학과 생물학은 동물, 아이, 어른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묘사하고, 설명한다. 이 학문들은 놀이의 본질과 의미를 결정하고 그것이 일상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부여한다.

 놀이하기의 '재미'란 어떤 것인가? 왜 어린아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가? 왜 도박사는 도박에 몰두하는가? 왜 많은 축구 관중은 축구 경기를 보면서 열광하는가? 생물학적 분석으로는 이런 놀이의 열광과 몰두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열광, 몰두, 광분 등에 놀이의 본질 혹은 원초적 특징이 깃들어 있는데 말이다. 자연은 잉여 에너지의 발산, 힘든 일 이후의 긴장 완화, 장래의 일에 대비한 훈련, 충족되지 못한 동경의 보상 등을 위해서라면 기계적 운동이나 반응 등을 그 자녀들에게 제공하고 만족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자녀들에게 긴장, 즐거움, 재미 등을 갖춘 놀이를 제공했다.

 

 ▶놀이의 특징

 무엇보다도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자발(자유)의 특징 하나만으로도 놀이는 자연의 과정과는 구분된다.

놀이는 자유로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 놀이의 두 번째 특징은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점이다. 놀이는 '실제' 생활에서 벗어나 그 나름의 성향을 가진 일시적 행위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놀이의 표현력은 모든 종류의 공동체적 이상을 충족시킨다. 그리하여 놀이는 양육, 번식, 종족 보존의 생물적 과정보다 더 우위에 있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동물의 놀이(특히 성적 과시)가 짝짓기 계절에 뚜렷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에 의해서 반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들의 노래, 구애, 날갯짓이 우리 인간의 놀이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영역 바깥에 위치한다고 말한다면 너무 어리석은 주장일까? 아무튼 인간이 하는 놀이의 가장 높은 형태는 언제나 축제와 의례의 영역, 즉 신성의 영역에 위치해 왔던 것이다.

 놀이의 그 장소와 시간에 있어서 '일상' 생활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처럼 따로 떨어져 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놀이의 세 번째 특징이다. 놀이는 시간과 공간의 특정한 한계 속에서 "놀아진다(played out)." 놀이는 그 나름의 방향과 의미를 갖고 있다.

 놀이가 경쟁의 특성을 띠게 되면 더욱 치열해진다. 그 치열함은 도박과 운동 경기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놀이 그 자체는 선과 악을 초월하지만, 놀이에 내재된 긴장의 요소는 놀이하는 사람의 심성 즉 용기, 지구력, 총명함, 정신력, 공정함 등을 시험하는 수단이 되므로 특정한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놀이의 양상

 고등 형태의 놀이에는 다음 두 가지의 기본적 양상이 있다. 첫째,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경쟁이고, 둘째, 어떤 것의 재현이다. 이 두 기능은 서로 합쳐져서 게임은 (1) 경쟁의 '재현'이고, (2) 어떤 것을 잘 재현하기 위한 경쟁이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는 문화보다 앞선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놀이는 문화보다 우월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우리는 놀이를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진지함의 수준 아래에서 노닐 수 있다. 하지만 놀이를 통하여 아름다움과 신성함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진지함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혹은 몰입 행위로서,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며,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意識)을 수반한다.  놀이는 일상 생활의 필요와 진지함에서 벗어나는 곳에서 그 자신을 드러내고 성취하는 행동이었다. 

 

 ▶문화는 놀이 형태로 발생했다.

 문화는 아주 태초부터 놀이되었다. 생활의 필수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들, 가령 사냥도 원시 사회에서는 놀이 형태를 취했다. 사회 생활에는 생물학적 형태를 벗어나는 놀이 형태가 스며들어가 있었고, 이것이 사회의 가치를 높였다. 사회는 놀이하기를 통하여 생활과 세상을 해석했다. 

 우리의 생각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이러하다. 먼저 어린아이 같은 놀이-의식(意識)이 다양한 놀이 형태 속에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표출되었을 것이다. 그 놀이는 의례에 뿌리를 박고 있었고, 리듬, 조화, 변화, 교대, 대조, 클라이맥스 등을 바라는 인간의 생래적 요구가 충분히 개화(開花)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문화를 생산했다. 이런 놀이-의식에 명예, 우월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이 결부되었다. 주술과 신비 의례, 영웅적 동경, 음악·조각·논리의 예시(豫示)는 고상한 놀이 속에서 형태와 표현을 얻으려 했다.

 놀이는 처음부터 문명의 대립적·아곤적 기반을 그 안에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놀이는 문명보다 더 오래되었고 더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경기는 곧 놀이를 의미한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떤 경기가 되었든 거기에 놀이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놀이적이고 아곤적인 것이, 사회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법률 분야에서는 신성한 진지함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또한 모든 시는 놀이에서 태어난다. 숭배의 성스러운 놀이, 구애의 축제적 놀이, 경쟁의 호전적인 놀이, 허풍, 조롱 그리고 비난의 논쟁적인 놀이, 기지와 신속함의 민첩한 놀이 등이 시의 모태가 된다. 학교(school)'라는 단어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원래 이 단어는 "여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사실 말로 승리하는 기술을 순수하고 합법적인 기술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 기술 자체의 놀이 특성 때문이다. 소피스트가 자신의 화려한 말로써 비도덕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에만. 그는 지혜를 왜곡하는 자가 된다.

 소피스트와 수사학자의 일상적인 행동에서 주된 목표는, 진실이나 욕망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순전히 자신이 옳다는 개인적인 만족을 성취하는 데 있다. 그들은 경쟁의 원시적인 본능, 영광을 위한 투쟁에 의해 움직인다.

 종교적인 기능과는 별개로 음악은 교육적인 오락, 즐거운 기술, 또는 단순히 쾌활한 여흥으로 칭송되었다. 음악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공개적으로 고도의 개인적인 체험, 마음 깊은 곳의 감성적인 경험의 원천, 그리고 인생의 가장 훌륭한 축복 중 하나로 인지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음악의 기능은 순전히 사교적이고 놀이적인 것이었으며 비록 연주자의 기술적인 능력은 굉장히 찬사를 받았으나 정작 음악가 자신은 경멸당했고 음악은 비천한 일로 분류되었다.

 춤은 음악적인 동시에 조형적인 까닭이다. 리듬과 움직임이 주요 요소라는 점에서는 음악적인가 하면, 물질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조형적이다. 춤의 실행은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신체에 의존하고 그 아름다움은 움직이는 신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춤은 조각과 마찬가지로 조형적 창조이지만 어느 한 순간의 창조이다. 춤을 수반하는 필수적 조건인 음악과 마찬가지로 춤은 반복 능력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의례는 성스러운 놀이에서 성장했고 시는 놀이에서 태어났고 길러졌다. 음악과 춤은 순수한 놀이이다. 지혜와 철학은 종교적 경기에서 유래한 말과 형태로 표현된다. 전쟁의 규칙, 고상한 삶의 관례는 놀이 양식 위에서 세워졌다. 따라서 문명은 초기 단계에서 놀이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물론 문명이 자궁에서 아이가 나오는 것처럼 놀이에서 나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명은 놀이의 정신 속에서 놀이의 양태(樣態)로 생겨나며 결코 놀이를 떠나지 않는다.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호이징하는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 요소가 발견되고, 인간의 공동 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 시, 예술 등에도 놀이의 성격이 있다고 본다. 생로병사와 관련된 모든 삶의 통과 의례였던 고대인들의 제의는 음악과 춤과 놀이로 이루어졌는데, 인간의 몸과 영혼을 동원해서 사물을 표현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발생한 놀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고 호이징하는 진단한다.

 

 ▶놀이정신의 복원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가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키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우징하는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며 고대의 신성하고 삶이 충만한 '놀이 정신'의 회복을 바란다. 호이징하에 의하면 놀이에 따르고, 놀이에 승복하며,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문명을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신종섭 교수(철학과)

 <필자소개>

· 동국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 Syoleny대학에서 수학.

· 범한철학회장, 군산시 시정자문위원,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역임.

· 현재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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