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성과사회와 피로사회
 현대는 삶의 가속화와 과잉활동, 성과추구와 존재의 피로감, 물질적 풍요와 삶의 불안 등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성과사회와 피로사회/불안사회가 이중적으로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능력과 스팩, 몸값과 욕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극대화하며 부산하게 노동하고 자신을 성과주체로 경영해야만 하는 현대인은 한편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분배받는 성과사회의 구성원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소진증후군을 앓고 있다. 즉 21세기의 병리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 신경증 질환들은 이를 대변한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과잉활동과 정신적 탈진, 사색 능력의 상실은 인간의 내적 공간을 불안과 고립, 무력감과 긴장으로 만들게 된다. 삶이 생동감을 잃고 경직된 자기 몰두에 빠지게 되면 될수록 현대인은 불안감으로 인해 부(돈)나 소유물을 통해 자기 삶의 안정과 존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성과사회와 피로사회의 신경증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존재의 불안증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원자적 부유감(浮遊感), 만성적 존재 피로감 속에서 느끼는 자아 불안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삶의 과정에서 낯선 손님처럼 다가오는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이라는 질병
 성과사회와 피로사회/불안사회의 이중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현대사회가 가져오는 현대인의 존재성격 가운데 하나가 '불안'이다. 20세기 후반 이후에 냉전의 붕괴, 소련의 붕괴와 세계의 재편, 체르노빌과 후쿠야마 원전사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 및 전자 아고라의 동시적 편재(스마트폰의 보급, SNS의 확산), 9.11 사태와 아프카니스탄 전쟁 및 이라크 전쟁, 신자유주의의 세계 확산과 IMF사태 및 글로벌금융의 위기, 세계화와 탐욕적 자본주의의 한계 노출 등 지구촌 차원에서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며 사회, 정치, 경제적 변화가 생겨났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된 세계화를 사회학자 바우만(Zygmunt Bauman)은 '부정적 세계화'라 명명하며, 오늘날 전(全)지구적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문명의 급격한 변화와 세계의 정치, 경제, 환경적 위기의 확산, 삶의 불안이 겹치면서 오늘날 우리는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등과 같이 삶의 좌표를 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신자유주의가 휩쓸면서 글로벌 시장경제는 더욱 강화되고 성과와 평가, 효율성과 지표의 계산 속에서 사회는 더욱 분주해졌다. 21세기 현대사회는 인간을 '분주함(바쁨, 조급, Eiligkeit)'과 '부산함(안정의 상실, Ruhelosigkeit)' 속에 몰아넣고 성과주의로 몰아세운다. 지표, 평가, 효율성, 순위, 생존, 구조조정 등의 용어는 국가나 사회, 회사나 대학의 존립을 좌우하는 언어가 되었다.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자면 '닦달(몰아세움, Ge-stell 혹은 Forttreiben)'과 성과에의 강박은 경쟁의 격화와 자기생산성의 과열을 가져오고 인간은 성과적 자동인간으로 자신을 태우며 피로와 존재의 에너지 소진을 경험하게 된다. 탈진, 피로, 불안, 우울증, 분노, 무기력 등과 같이 현대인이 겪고 있는 심리적 정신적 고통은 시대적 닦달의 결실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분주하지만 활기 없고 조급해하고 허둥대며 불안 속에서 떠 있는 부유물처럼 삶을 살아간다.

 현대의 자아신경증
 현대인은 자신의 삶의 의미나 자기 존중감, 자기 존재의식 등에서 자아정체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자신과 정신적으로 관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인간적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나가는 능력의 약화는 현대인에게서 잘 보인다. 현대인은 분주함과 부산함, 자아몰입과 무정신성, 자아의 약화와 관계의 불통 속에서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현대인의 문제를 '자기관계성'의 위기라 규정하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이를 '나는-누구인가-신경증(Wer-bin-ich-Neurose)'라 부른다. 일종의 자아정체성의 신경증이라 할 수 있는 자기관계성의 위기는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의 부재와 연관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부산하고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성찰적 자아의식이 없는 자기몰입의 활동(무정신성)을 하고 있다. 성과사회에 사는 현대인은 과잉활동을 닦달 당하듯 요구받으며 생존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 탈진,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수동적 방법으로 스마트폰이나 게임과 같은 현대의 전자매체적 이기(利器)에 빠져들어 가거나 정신없이 바쁜 일상으로 도피하고 있지만 이는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비생산적 자기표현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스마트폰 등으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접속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부산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며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삶을 살아간다. '나는-누구인가-신경증'을 치유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으며 존재를 충일하게 하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고독과 자기 찾기
 프로이트는 행성이 자전하면서 동시에 공전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독자적인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발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삶의 과정 역시 자신의 내면과 만나 삶의 진정한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자전과 사회적 삶에 참여하며 의미 있게 살아가는 공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키에르케고어, 니체와 같은 철학자는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자기를 찾는 조건을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 즉 고독에서 찾는다. 고독이란 홀로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즉 홀로 자기몰입 속에 있는 비생산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고독은 자신의 삶의 텍스트와 만나는 존재의 생산적 용기이다. 고독은 자신의 과거, 삶의 고통, 열등감, 삶의 분노와 고통, 복수심과 상처와 만나는 고요한 용서와 화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히 홀로 있음으로 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홀로 자신과 만나며 진실하게 존재하는 용기 속에 있음으로 해서 고독은 생산과 치유의 공간이 된다. 고독은 진실한 자신과 만나는 정신적 치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우리가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생산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진실한 자기 대화나 자기만남은 자기를 존중하고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있는 고유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는 길을 제공한다. 이는 삶의 집착과 타인에 대한 의존성에서 자유로워지는 정신적 성찰공간을 제공한다. 고독이란 자신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가치, 즉 우리가 인갑답게 살아가고자 성숙한 휴머니즘이 발효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화와 사회적 자아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 못지않게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은 사회 속에서 인간과의 관계, 즉 대화와 소통의 능력이다. 대화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며 나누는 내적인 소통뿐만 아니라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나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적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사회철학자 미드(G.H. Mead)는 인간이란 의미 있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 대화의 과정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이다. 자기 관계에만 빠져있는 독백적 대화는 현실을 상실하는 독단을 가져오기 쉽고, 자기 성찰 없이 타자에만 의존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대화는 자기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현실상실이나 자아상실, 독단과 무정신성이 아닌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 양자의 변증법적 관계, 즉 상호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만남과 소통의 미학
 자아의 소통은 나를 고집하거나 내 생각에만 집착하지 않고 세계와 타자를 향해 나를 열어놓는 지향성에서 성립된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고 관철하고자 하는 의지는 독선과 불통을 야기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진정한 대화나 소통은 불가능하다. 대화란 나와 너의 '열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대화나 만남은 자신을 내려놓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뜻을 표현하며 상대와 생각을 조율해 가는 이중적 과정이다. 고정된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고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 상황의 시선을 수용하고 이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균형 있는 태도는 열린 정신을 가능하게 만든다. 열린 정신은 인간의 삶을 결코 피상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는 삶에 굴곡이 있고 시련이 있으며 아픔과 고통이 서려 있다는 것을 깊게 자각하는 깨어있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열린 정신은 상대를 함께 살아가는 어울림의 대상으로 여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에서 인간과 인간의 참된 관계는 사물화된 가치의 종합이나 비교가 아니라 '서로 마주하는 어울림'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서로 마주한다는 것, 서로 어울린다는 것은 존재의 책임을 필요로 한다. 책임이란 숨김없는 얼굴, 정직한 얼굴을 드러내며 관계에 응답하는 진실성이다. 소통이란 책임의 언어로 교류되는 진실한 인간적 어울림이다. 
 분주함, 부산함, 닦달, 성과, 불안, 집착, 의존성, 소진증후와 반사회적 성격장애, 학교폭력과 소통의 부전 등 우리 시대와 사회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것과 비판적 거리를 두는 건강한 사유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는 시대와 문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불안증에 대처하며 소진되는 자아의 능력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자기 긍정감을 찾고 열린 정신으로 자기 자신 및 타인과 생산적 만남 및 소통의 능력을 갖추는 것은 불안의 시대에 자아의 항체를 찾는 노력일 것이다. 
 김정현 교수(철학과)
 
  <필자소개>
 · 고려대 철학과와 대학원 철학과 졸업,
 · 독일 뷔르츠부르크(Wurzburg)대학교 철학박사.
 · 현재 원광대 철학과 교수, 한국니체학회 회장.
 · 세계표준판 니체전집(21권, 책세상) 편집위원 역임.
 · 주요저서: 『니체의 몸 철학』,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철학과 마음의 치유』,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이상 니체),『기술시대의 의사』(야스퍼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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