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랑해요 한글" 편에서는 '컴'은 믿을 수가 없다는 취지의 글을 쓴 바 있다. 그러면서 '씌어진', '쓰여진'은 틀린 말이고 '쓰인'이 옳은 말이라고 하였다.
 
(1) 가. (글씨가 잘) 씌어지네, 씌어지니까, 씌어져서   나. (글씨가 잘) 쓰여지네, 쓰여지니까, 쓰여져서
   다. (글씨가 잘) 쓰이네, 쓰이니까, 쓰여서
 
 (1가), (1나), (1다)에서 의미차가 인식되지 않는다면 셋 중에 하나만 맞는 것으로 하자. 가장 간결한 (1다)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쓰이어지다'에서 '쓰이'가 줄면 '씌'가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말이 '씌어지다'이다. 또 '쓰이어지다'에서 '이어'가 줄면 '여'가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말이 '쓰여지다'이다. 그런데 문제는 (2)에서와 같이 '쓰이다' 또는 '써지다'로 의미 전달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2) 가.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쓰이네. O
    나.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써지네. O
    다.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씌어지네. X
    라. 오늘은 칠판에 글씨가 잘 쓰여지네. X
 
 굳이 '쓰이다'와 '써지다'가 중복된 '쓰이어지다/씌어지다/쓰여지다'를 옳다고 할 필요는 없다.
 '중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에서와 같이 '-어지다/아지다' 또는 '-이-'가 쓰인 예들을 살펴보면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적으로 어떻게 되다'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다. 소위 피동이라는 것인데 영어의 수동태와 상응한다고 보면 된다.  
(3) 가. (양이) 적어지다, 싫어지다, 작아지다, 많아지다, 커지다 
   나. (길이) 놓이다, (책이) 쌓이다, (글자가) 잘 보이다
 
 그래서 '-어지다'와 '-이-'를 중복해서 쓰면 이중 피동이 되는 셈이다. '역전 앞'과 같은 표현처럼 의미가 중복되어 있다는 뜻이다. 특히 (3나)에 '-어지다'를 결합한 표현이 한국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4)에 제시된 예들 모두 의미가 중복된 잘못된 표현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4) 길이 놓여지고, 길이 놓여졌다, 길이 놓여집니다.
    책이 쌓여지고, 책이 쌓여졌다, 책이 쌓여집니다.
    글자가 잘 보여지고, 글자가 잘 보여졌다, 글자가 잘 보여집니다.
 
(4)와 (5)를 대비하면서 깊이 들어가 보자. 
 
(5) 가. 의견을 받아들이다, 이유를 밝히다 
   나. 의견이 받아들여지다, 이유가 밝혀지다
 
(5가)에 '-어지다'가 결합된 (5나)는 문법적으로 맞는 말이다. (5가)는 '자연적으로 어떻게 됨'을 뜻하는, 이른바 피동이 아니다. 반면 (5나)는 피동 표현이다. '-어지다'가 붙었다고 무조건 이중 피동으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피동 표현에 '-어지다'가 붙은 것만 틀렸다고 보면 된다.
 
 임석규(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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